
스마트폰이 있는 세상에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열심히 할 일을 하면서도 음악이 없으면 허전하고, 마치 라디오처럼 틀어놓을 영상이 필요하기도 하다. 회사에서 나만 그런가 싶어 주위를 돌아보면,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한 가지 일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어쨌든 지금의 우리는, 한 번에 하나의 자극만으로는 부족해진 듯하다.
그래서 나처럼 집중력이 약한 사람들은 한 번쯤 체크리스트를 써봤을 것이다. 나는 책상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날이면, 커다란 덩어리의 일을 잘게 쪼개 체크리스트를 만든다. 그러면 그걸 체크하는 재미로, 생산성 있게 일하는 느낌이 든다. ‘느낌이 든다’라고 한 건, 정확히 시간을 재본 적은 없어서다. 하지만 주변에서도 많이들 쓰는 방법이니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러던 중 최근 ‘생산성 게임’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설치했다가 깊이 빠져들어 이후로 쭉 쓰고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생산성 게임’이 주는 신기한 힘에 관한 것이다.
생산성 게임은 일종의 방치형 게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둘의 목적은 전혀 다르다. 생산성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목적’이 없다. 그저 지루하지 않도록 몇 가지 인터랙션과 배경음악, 그리고 체크리스트가 주어질 뿐이다. 물론 게임인 만큼 미션이 있고 완수할 때마다 보상도 얻을 수 있지만, 퀘스트를 적극적으로 수행한다기보다는 그냥 게임 안에 머무는 것 자체가 미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이 게임은 유저가 ‘그냥 있도록’ 놔둔다.
최근에 한 생산성 게임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스팀의 ‘Chill Corner’다. Chill Corner는 스터디윗미처럼 책상에 앉아 있는 캐릭터가 나온다. 방을 거실로 변경할 수도 있다. 그러면 캐릭터는 소파에 앉아 맥북으로 작업을 한다. 또 아쿠아리움도 있는데,미션 완수 보상으로 주는 크레딧으로 어항을 꾸밀 수 있다. 물고기들이 꽤나 귀여워서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럼 이제 이걸 어떻게 쓰냐 하면, 화면 한쪽에 생산성 게임을 띄워두고 작업하는 것이다. 내 경험상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더 빠르고,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었다. 규칙적으로 단조롭게 움직이는 애니메이션과 음악이 안정감을 주고, 설정한 타이머에 맞추어 울려주는 알람 덕분에 몰입과 쉼을 잘 분배할 수 있었다.
특히 게임 내에 알람 시스템이 있어, 스마트폰을 아예 멀리 둘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할 일 목록을 같이 볼 수 있는 점도 편리했다. 아마 평소였다면 모바일 체크리스트 앱을 열다 말고, 카톡이나 유튜브, 인스타그램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즉, 생산성 게임은 스마트폰을 멀리 두고 일할 수 있게 도와주고, 또 규칙적으로 소량의 도파민을 제공해 준다는 매력을 가졌다.
나는 올해 초부터 출근 전 시간을 활용해 보려고 기상 시간을 앞당겼다. 그러나 아침에 독서하다 보면, 금방 졸음이 쏟아졌다. 그 문제도 이 게임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생산성 게임을 같이 틀어두니, 가만히 책만 바라보는 적막한 환경에 비해 잠이 쏟아지지 않았다. 또 타이머를 맞춰놓고 휴식 시간마다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됐다.
글쓰기에 있어서는 더 큰 도움을 받았다. 내가 쓰는 글은 주로 논픽션이지만, 나는 장르를 불문하고 글을 쓸 때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상은 내 안의 세계이고, 그 안을 골고루 잘 들여다봐야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는 다른 작업보다 몰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게임 속에 펼쳐진 세상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좀 더 금방 몰입할 수 있었다. 만화처럼 움직이는 아기자기한 이미지가 나를 현실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느낌이랄까.
이 외에도 찾아보니, 정말 다양한 컨셉의 생산성 게임이 있었다. 예를 들어, ‘On Track’이라는 게임은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보는 컨셉의 게임이다. 창밖으로는 풍경이 계속 흘러가고, 기차의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이렇듯 다양한 생산성 게임 중에서 하나를 고르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관심이 간다면, 일단 하나를 선택해 보는 걸 추천한다.
생산성 게임을 즐기는 방법은, 최대한 자신의 취향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하는 것이다. 이것저것 설치해서 자기 취향에 맞는 것을 찾고, 내 마음에 들게 세팅해 두면 점점 애정이 생길 것이다.
나는 생산성 게임의 핵심은 커스터마이징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최적의 업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 책상을 꾸미고, 편안한 의자를 찾는다. 나에게 딱 맞는 환경을 세팅하면 일이 더 잘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업무 공간은 각자 조금씩 다르다. 생산성 게임을 세팅할 때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더 마음에 드는 음악을 찾고, 화면에 배치할 수 있는 요소들을 심사숙고해서 골랐다. 그러다 문득 AI 프롬프팅이 들어가면 유용하겠다고 생각했다.
게임 ‘On Track’을 예로 들면,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AI 프롬프팅으로 다양하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생산성 게임은 대부분 정해진 규칙과 테마 안에서 돌아간다. ‘Chill Corner’라면 방이나 거실, On Track이라면 기차 풍경 같은 식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집중하는 방식은 다르다. 누군가는 자연의 소리를 들어야 마음이 안정되고, 누군가는 도시의 소음을 배경 삼아야 몰입할 수 있다. 나처럼 조용한 방에 있으면 오히려 불안해지는 사람도 있다.
AI는 이 부분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 “숲속에서 공부하는 느낌”이라는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바로 울창한 숲속 배경과 새소리, 잔잔한 바람 소리가 세팅된다. 또는 “사이버펑크 도시의 카페에서 코딩하는 기분”을 고 요청하면 네온사인과 커피 머신 소리가 배경으로 깔린다. 생산성 게임을 AI와 결합하면, 누구나 자기만의 생산성 공간을 디자인할 수 있다. 매번 다른 배경을 불러오는 것도 가능하고, 평소에 직접 만든 음악이나 영상을 배경으로 넣을 수도 있다. 하루의 기분과 상황에 맞추어, 집중 공간을 즉석에서 꾸며주는 셈이다.
나아가 AI는 단순히 환경을 꾸며주는 것을 넘어, 사용자의 패턴도 학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후 3시쯤에 집중력이 자주 떨어진다면, 그 시간대에 더 자극적인 보상이나 활기찬 음악을 추천해 주고, 반대로 아침에는 차분한 배경을 제공해 점진적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생산성 게임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나를 도와주는 매니저의 역할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엔 공간 컴퓨팅의 개념에서도 한번 생각해 보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공부와 일은 책상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건 곧 낡은 고정관념이 될지도 모른다. 공간 컴퓨팅은 바로 사용자의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정보를 실시간으로 통합하여, 가상 세계에서의 몰입형 경험을 제공하는 기술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Chill Corner의 아기자기한 방이나, On Track의 달리는 기차 풍경처럼, 우리가 화면 안으로 들어가 공부하고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에 앉아 공부를 시작하는 순간, 안경이나 헤드셋을 착용하면 실제 내 방이 초원으로 변한다고 상상해 보자. 책상 위에는 작은 나무가 심어져 있고, 내가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나무는 점점 자라난다. 혹은 눈앞에 펼쳐진 도서관이 내가 읽은 책들로 채워지는 모습은 어떨까? 숲에 가지 않아도 숲에서 공부할 수 있고, 도서관에 가지 않아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꽤 편리할 것이다.
이런 경험은 단순히 시각적인 재미를 넘어선다. 현실 공간과 가상 공간이 연결되면, 집중이라는 추상적인 감각이 실체화된다. “나는 지금 공부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직접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몰입(Flow) 상태로 들어가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그래서 공간 컴퓨팅과 결합된 생산성 게임은 또 다른 장점을 가진다. 바로 주변의 방해 요소를 덮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공간 컴퓨팅과 결합된 생산성 앱은 마치 순간이동처럼, 오늘은 우주 정거장에서 2시간, 내일은 바닷속 연구소에서 3시간, 이런 식으로 원하는 장소에서 일하는 기분을 낼 수 있다. 만약 이런 방식이 일상이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집중이 잘 안된다”라는 고민 대신, “오늘은 어떤 세계에서 시간을 플레이할까?”라는 설레는 고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도파민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요즘 점잖게 앉아 책을 읽는 건 거의 불가능한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집중력이란 녀석은 짓궂게도 와주지 않고, 오더라도 금방 도망가 버린다. 그래서 그냥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본래 해야 할 일과 흥미를 유발하는 자극에 9:1 내지는 8:2 정도로, 신경을 분산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해야 할 일을 더 잘 마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오래 사용하고 있는 방법은 음악 듣기다. 하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고르기 때문에, 가사에 너무 심취해 따라 부르게 된다. 가사가 없는 음악은 그나마 낫지만 좀 심심하다. 아무래도 눈으로 뭔가를 봐야 덜 지루한 것 같아서, 유튜브를 틀게 됐다. 그러나 집중에 도움이 되는 영상을 찾는 건 정말 어렵다. 아마 찾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마음에 쏙 드는 영상을 찾는 게 여간 어렵고 귀찮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생산성 게임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다.
생산성 게임이 집중을 돕는 원리는 단순하다. 규칙적인 리듬, 눈에 보이는 피드백, 작은 보상이 결합해 우리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한다. 스마트폰 알림처럼 즉각적이고 강한 자극은 아니지만, 대신 소량의 도파민을 규칙적으로 제공하여 오랫동안 자리에 머무르게 한다. 마치 게임 속 퀘스트를 완수하듯, “다음 세션까지만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앞으로 AI와 공간 컴퓨팅이 결합된다면, 개개인에게 더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한다. AI는 사용자의 취향과 패턴을 학습해, 나만의 몰입 환경을 꾸며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간 컴퓨팅은 실제 공간을 초원이나 도서관, 우주 정거장으로 바꿔 몰입을 극대화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시간 관리는 더 이상 노동이 아니라, 즐기고 싶은 모험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 모든 장치가 인간을 대신해 공부해 주거나, 좋은 글을 써주지는 않는다. 또 이런 것들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처럼 집중력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 좀 더 즐겁게 일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방식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된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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