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기술과 콘셉트를 끊임없이 공개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요즘입니다. 대 AI 시대에, 트렌드에 뒤처지는 모습은 자칫 기술 경쟁에서 밀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죠. 요즘 기업들은 계속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세상과 소통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 6월, 구글은 AI 가상 피팅 앱 '도플(Doppl)'을 출시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구글의 신규 기술인 도플이 가상 트라이온(착용) 기술을 활용해, 온라인 쇼핑 경험을 혁신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도플은 구글 랩스(Google Labs)에서 개발한 AI 기반 가상 피팅 앱 서비스입니다. 먼저 사용자가 자신의 전신사진 한 장을 업로드하면, 해당 사진을 바탕으로 나와 닮은 디지털 아바타가 생성됩니다. 그다음 입어보고 싶은 의상의 사진이나 스크린샷을 업로드하면, AI가 그 옷을 입고 있는 사용자의 모습을 생성해 냅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입은 멋진 코디 사진이나, SNS에서 본 마음에 드는 옷차림을 도플에 넣으면, 나의 체형에 그 옷을 착용한 모습이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도플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적인 이미지에 그치지 않고 내 착용샷을 동영상으로도 생성해 줍니다. 완성된 가상 착용 모습은 기기에 저장하거나, SNS 등으로 공유할 수 있어, 친구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전에도 구글은 다양한 체형의 모델에게 옷을 입혀보는 가상 피팅 기능을 제공한 바 있는데요. 도플은 사용자 본인의 아바타에 옷을 입힌다는 점에서 훨씬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합니다.
요약하면, 소비자들은 AI 피팅룸이라 할 수 있는 도플을 통해 실제 피팅룸에 가지 않아도, 직접 옷을 입어본 듯한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도플은 미국에서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사실 도플 이전에도 이미 다양한 브랜드에서 가상 트라이온 서비스를 운영해 왔습니다. Sephora(세포라)는 2016년 ‘Sephora Virtual Artist’를 출시했는데, 가상 트라이온 기술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립 컬러 제품은 실제 Sephora Virtual Artist 출시 이후 700억 회 이상의 가상 체험이 이루어졌으며, 메이크업, 아이섀도, 속눈썹 등 다양한 뷰티 제품의 가상 체험을 제공했습니다. 이처럼 도플과 같은 가상 피팅 기술은 소비자와 브랜드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우선 소비자 입장에서, ‘모델 사진과 내가 입은 모습은 다르네’라는 문제를 완화해 줍니다. 이는 온라인으로 옷을 구매할 때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죠.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으로, 많은 소비자가 온라인 구매, 특히 의류 구매를 망설이게 됩니다.
도플의 핵심은 해당 옷을 입어본 ‘내 모습’을 미리 확인하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이전에 겪었던 유쾌하지 않은 경험에서 오는 불안감을 해소해 구매 결정에 자신감을 높여줄 수 있습니다. 실제 옷을 입어보는 것에 비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한 이미지와 영상은 단순히 사이즈 표나 착용 후기 글을 읽는 것보다, 훨씬 높은 ‘구매 설득력’을 제공합니다.
브랜드는 가상 피팅 기술을 통해 운영 효율성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반품률을 감소시키고 고객 만족도를 제고할 수 있죠. 온라인 의류 구매의 높은 반품률은 업계의 큰 고민입니다. 가장 빈번한 반품 사유는 사이즈와 핏 문제인데요. 도플을 통해 고객이 미리 입어보고 구매한다면, ‘상품이 생각과 달라서’라는 이유로 반품하는 사례를 줄어들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도플이 일종의 퍼스널 쇼퍼나 스타일링 도우미 역할을 하여, 고객별로 어울리는 스타일 제안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브랜드에 매력적입니다. 예를 들어, 도플에서 사용자가 여러 착장 사진을 시도해 보며 취향 데이터를 축적하면, 향후 AI가 그 선호도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코디를 추천하는 등 마케팅 활용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렇게 온라인 의류 구매 과정에서의 체험 향상과 의사결정 지원을 통해, 가상 피팅 기술은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고, 고객이 더 자주 찾아오게 만드는 효과까지 지원할 수 있습니다.
결국 도플은 ‘못 입어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윈윈하는 혁신이 될 수 있습니다. 고객은 실패 확률 낮은 똑똑한 구매를 할 수 있고, 기업은 반품 감소와 매출 증대를 기대할 수 있죠.
이렇듯 도플은 앞으로 유용한 서비스로 발전할 것이라 기대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 단계에선 뚜렷한 한계점도 존재합니다.
먼저 정확한 사이즈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입니다. 도플로 생성된 내 아바타 모습은 어디까지나 시각적 추정치일 뿐입니다. 따라서 실제 옷 사이즈가 나에게 꼭 맞는지 보장하지 못합니다. 현재 도플의 AI는 사용자의 키나 가슴둘레, 허리둘레 같은 신체 치수 데이터를 고려하지 않고, 이미지만 합성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플에서 내 사진에 어떤 재킷을 입혔을 때, 화면상으로는 마치 꼭 맞는 듯 보여도 실제로는 어깨나 품이 작아서 꽉 끼는 사이즈일 수도 있는 겁니다. 반대로 옷이 많이 남아서 생길 주름이나 질감 변화도 현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아직은 보기에 그럴듯하게 합성해 주는 수준이지, 치수까지 정확히 재현하는 완벽한 가상 피팅룸은 아니라는 겁니다. 결국 현재의 도플이 ‘이 옷이 나에게 잘 어울릴까’라는 온라인 쇼핑의 문제를 완전히 해소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신체 사이즈가 천차만별인 소비자들이 각자에게 맞는 옷을 찾는 데 있어, 도플은 아직 시각적 도우미 이상의 역할은 못 하는 셈입니다.
일반적인 옷 구매는 상의와 하의를 따로 떼어서 보지 않고, 전체 코디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상의에 어떤 하의를 매치하면 어울릴지, 또는 재킷을 걸쳤을 때 전체적인 균형이 어떨지 등을 한꺼번에 살펴보는 것이죠.
하지만 현재 도플은 아이템을 선별적으로 배치해 볼 수 없습니다. 업로드하는 이미지의 아이템만 착장해 볼 수 있는 겁니다. 위에서 본 그림 1만 보더라도, 첫 번째 이미지에 주황색 상의 대신 검은색 상의를 착용한 내 모습이 궁금하해도, 현재의 도플에서는 검은색 상의만 따로 입혀 볼 수 없습니다. 동일한 하의에 검은색 상의가 조합된 이미지를 찾아 따로 업로드해야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죠.
이러한 제약은 완성된 풀 코디의 모습을 가상 체험하기 어렵다는 한계로 이어집니다. 현재 도플에서는 코트나 재킷을 셔츠 위에 겹쳐 입혀보는 시도는 할 수 없고, 액세서리나 가방, 신발 역시 별도로 추가할 수 없습니다. 머릿속으로 각 아이템의 조합을 상상해야 하는 불편함이 남는 겁니다.
현실의 피팅룸에서는 여러 옷을 들고 들어가 이것저것 매치해 보며 전체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죠. 그러나 도플은 아직 그 수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도플은 패션 코디네이터라기보다는 단일 아이템 체험 도구에 가깝습니다. 옷 한 벌 한 벌은 입혀볼 수 있지만, ‘이 재킷에 어떤 바지가 어울릴까?’를 한 화면에서 해결하지 못하죠. 결과적으로 스타일링 측면의 활용성에 제약이 존재합니다.
보통 온라인 쇼핑 경험은 크게 상품 발견 → 구매 결정 → 결제 → 배송/반품의 단계로 이루어지는데요. 도플은 첫 단계인 상품 발견에만 머무르는 서비스입니다. 이는 도플을 통해 어떤 옷을 입어보고 마음에 들어도, 해당 아이템을 도플 앱 내에서 곧장 구매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도플의 핵심 콘셉트는 구매 가능한 상품과 직접 연동하지 않고, 인터넷이나 사진첩에서 가져온 임의의 옷 이미지로 착장을 시뮬레이션하는 데 국한되어 있습니다. 결국 마음에 드는 가상 착장 결과를 얻더라도, 사용자는 별도로 해당 상품을 찾아서 구매해야 하는 불편이 남아 있습니다. 당연히 배송, 반품 같은 기능도 전혀 없기에 온라인 쇼핑 전 과정에 혁신을 주는 툴이라기보다는 부분 기능에 그치는 모습입니다.
앞서 살펴본 약점은 도플 자체의 기술 고도화와 더 큰 쇼핑 생태계와의 통합이라는 두 가지 접근을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먼저 더 정확한 신체 치수를 반영하고, 사이즈 정확도를 개선하기 위해 기술을 고도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한 가지 방향은 3D 아바타 기술과 신체 스캐닝의 도입입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전신을 스캔하거나 키, 가슴/허리/엉덩이 사이즈 등을 입력하면, 시스템이 보다 정확한 3D 모델로 사용자의 체형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M 사이즈 옷 사진을 내 사진에 합성하는 것을 넘어, 나에게 딱 맞는 사이즈의 옷을 입었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구글이 보유한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와 AI 기술을 활용해, 실제에 가까운 신체 치수 반영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멀티 모달(Multi modal) 코디를 활용하도록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가장 가시적인 전략 중 하나는 구글이 최근 발표한 ‘Shop in AI Mode’ 쇼핑 기능과의 결합입니다.
AI Mode는 구글의 최신 생성형 AI(제미나이 모델 등)를 활용하여, 사용자가 대화형으로 쇼핑 검색을 할 수 있게 하는 기능입니다. 예를 들어, ‘여름휴가에 입을 시원한 셔츠와 쇼츠 코디를 보여줘’라고 AI Mode에 요청하면, AI가 구글 쇼핑 그래프(Google Shopping Graph)에 등록된 500억 개 이상의 상품 목록을 검색해, 사용자 취향에 맞는 셔츠와 반바지 세트를 추천해 줍니다.
여기에 도플의 가상 피팅 기술이 접목되면, 추천된 여러 아이템을 동시에 입혀서 하나의 완성된 코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제품을 한 화면에서 손쉽게 바꿔가면서 입어 볼 수 있는 것이죠. 구글 검색에서 마음에 드는 상의를 발견하면, 그 상품 페이지에서 ‘나에게 입혀보기’ 버튼을 눌러 내 아바타에 합성해 봅니다. 이어서 이 상의에 어울리는 바지를 AI에게 물어본 후, 바로 마음에 드는 바지를 찾아 내 아바타에 함께 입혀보는 식의 멀티 모달 쇼핑 경험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도플의 기술이 구글의 AI Mode와 결합하면, 사용자가 대화형으로 수많은 아이템을 탐색하고 조합해 볼 수 있는 진정한 ‘디지털 피팅룸’으로 발전할 수 있겠죠.
도플의 기능을 극대화하려면, 결국 쇼핑 플랫폼에 깊숙이 녹아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 도플은 독립 앱이지만, 궁극적으로 아마존(Amazon)이나 월마트(Walmart), 무신사와 같은 이커머스 플랫폼에 직접 내장되는 형태가 돼야 할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상품 검색부터 결제, 배송, 반품까지 모든 흐름 속에 가상 피팅이 자연스럽게 포함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무신사에서 쇼핑할 때 각 상품 페이지에서 바로 ‘가상 피팅’ 버튼을 눌러 내 아바타에 해당 상품을 미리 입혀볼 수 있고, 마음에 들면 즉시 구매하여 배송받을 수 있습니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사이즈가 안 맞을 경우 쉬운 반품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케이스가 현실화되려면, 구글이 도플을 API나 파트너십 형태로 외부 이커머스에 제공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각 브랜드나 리테일러들은 구글의 AI 피팅 기술을 활용하면서, 자신들의 물류/배송 인프라와 결합해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죠.
외부 제공이 어렵다면, 앞서 살펴본 것처럼 구글의 쇼핑 생태계에 통합되어야 합니다. 이미 구글은 AI Mode에 에이전트형 체크아웃 기능을 도입하여 테스트 중에 있습니다. 사용자가 상품을 선택하면 구글이 대신해 해당 브랜드 사이트에서 결제까지 처리하는 것입니다.
비록 배송과 반품은 최종 판매자(브랜드)의 정책에 따르겠지만, 적어도 구매 단계까지는 구글이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도플의 가상 피팅 기능이 통합되면, 구글은 상품 발견 → 가상 피팅 → 구매 → 결제로 이어지는 통합 쇼핑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사용자를 와우하게 만드는 새로운 서비스는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좋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기만 하고, 유용성이 떨어진다면 결국 사용자에게 잊혀집니다. 현재 도플은 온라인 쇼핑 전체 과정 중 일부만을 혁신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도플이 온라인 쇼핑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서비스가 되기 위해서는 커머스 밸류체인 전체에 스며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신기한 서비스’를 넘어 ‘필요한 서비스’로 자리 잡고, 변화와 경쟁이 거센 시대 속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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