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이라는 낱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어떤 사람에 대한 영향력, 지배력을 갖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잠재력을 갖는 것이다. 즉, 힘이란 지배력 또는 잠재력이다.”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만약 LLM을 하루종일 사용하는 사람이 “AI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모순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AI를 유용한 도구로서 활용하는 것과, 주도권을 상실한 채 AI의 판단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현대 사회에서 AI는 이미 대다수의 암묵적 동의를 얻은 강력한 질서가 되었고, 인류는 그로부터 많은 귀찮은 일들에서 해방을 경험하는 동시에, 새로운 질서에 종속되기 시작했다.
최근 나는 하루 대부분을 인공지능의 영향력 아래에서 보낸다. 알고리즘이 제안하는 콘텐츠를 소비하고, ChatGPT에게 질문하지 않고는 어떤 일도 혼자 하지 못한다. 며칠 전, 슬랙 메시지 하나를 작성하기 위해 GPT와 상의하던 중, 문득 편리함 속에서 사고의 주도권을 잃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제는 혼자 힘으로 메시지 하나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AI와 동떨어진 주제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철학자 에리히 프롬이 탐구한 ‘자유’라는 개념은 AI 활용 방식을 고민하는 데 있어 꽤 유효한 기준이 된다. 실로 인류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든 존재나 시스템은, 결국 자유에 대한 논의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오늘은 AI와 인문학, 이 두 분야를 모두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둘을 엮어, AI의 영향력에 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AI는 이제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LLM 서비스인 ChatGPT는 주간 활성 사용자 수가 약 10억 명에 이른다고 추정되며, (출처: TED) 한국은 그 이용자 수에서 세계 Top 5 안에 든다. 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앱은 AI 기반 추천 알고리즘을 도입하고 있고, 사용자는 이 기능을 마음대로 끌 수 없다. 끌 수 있다고 해도 대개 제한적이며, 설정을 변경하는 과정도 복잡하고 불친절하다.
사용자에게 남은 선택지는 앱을 사용하지 않거나, 조금이나마 열려 있는 프롬프트를 조정해 커스터마이징하거나, 아니면 기본 설정에 순응하는 것뿐이다. (프롬프트란 인공지능 모델에게 어떤 작업을 수행하도록 지시하는 텍스트를 의미한다) 그 어떤 선택을 해도 AI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마치 과거의 종교나 정치 이데올로기가 그러했듯, AI 역시 새로운 질서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온라인 서비스는 우리의 시간을 아끼고, 귀찮은 일을 대신 해준다. AI 기능은 이 효율성을 한층 끌어올린다. 현대 사회에서 이를 일부러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불리한 경쟁을 하겠다는 의미와도 같다.
나 역시 한때 AI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이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사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AI가 막 도입될 무렵에는 거부감을 가지기도 했다. 알고리즘 기반 추천이 나를 과도하게 통제하려는 것처럼 느껴져서 불편했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제대로 제안해 주지 못한다고 느껴, AI 추천을 끄려 했고, 결국 앱을 삭제한 적도 있다.
하지만 금세 FOMO(Fear Of Missing Out)에 빠지고 말았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즐거운 경험이나 중요한 정보를 놓치고 있다는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느끼는 심리를 말한다. 한 마디로 유행에 뒤쳐질까 두려웠다. 유행에 뒤처지는 두려움은 실체 있는 감정이었고, 실제로 새로운 기술 트렌드나 사회 이슈를 늦게 파악하게 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뉴스 플랫폼으로 소비 습관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고, 점점 세상과 단절된다는 소외감이 밀려왔다. 그래서 결국 나는 생각을 바꿨다. AI를 깊이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트렌디한 삶이라고 말이다.
소외감과 외로움, 그것은 자유의 대가이며, 소속감과 유대감, 그것은 질서에 의존하는 대가이다. 옛날 사람들이 함부로 종교에 저항하지 못했던 것도, 새로운 정치, 경제 시스템에 순응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였을 것이다. 질서에 따르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고 안정감까지 느끼게 해준다. 오히려 거부하는 사람이 이상한 게 아닐까?
AI를 사용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AI가 제시하는 방향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성에 반하는 행동이다. 인간에게는 자아를 가지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발달 과정을 떠올려보자.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님과 자신이 분리된 존재임을 깨닫는다. 이 원초적 유대감이 끊어짐에 따라, 아이는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이고 주체적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자아를 가지고 있다.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만큼이나 AI를 많이 이용한다. 어쩌면 진심으로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AI를 빈번하게 사용하지만, 단지 편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AI를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삼고, 능동적으로 활용한다. 프롬은 진정한 자유란 단순한 해방에 그치지 않고, 자아실현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프롬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에 조금 더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핵심 개념을 현대의 AI 사용 방식에 대입하면, 아래와 같은 예시로 설명할 수 있다.
학교에서 ‘비판적으로 수용하기’를 학습한 경험이 있다면 위의 사례들은 지극히 익숙하고 뻔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누군가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다.
“도대체 누가 AI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겠어? AI에 할루시네이션이 있다는 건 상식이잖아. 새로 나온 GPT-5 모델조차도 말이야.”
맞다. 많은 현명한 사람들이 이미 AI를 비판적으로, 자아실현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점이다. 사람은 실수를 한다. 1년 365일 똑똑하게 행동하기란 불가능하다. 아주 유능한 변호사조차 사기를 당하고, 뛰어난 의사도 오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AI와 상호작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을 진짜 사람처럼 대하며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 왜냐하면 AI가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아주 그럴듯하게 모방하기 때문이다.
AI의 위험성은 바로 이런 ‘그럴듯함’에 있고,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에 속는 순간이다.
나는 이러한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AI는 우리 삶을 놀라울 정도로 향상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자 동시에 지배력을 가진 존재다. 우리는 AI가 무기를 들고 세상을 지배하는 미래를 농담처럼 말하곤 하지만, 이미 AI는 일상적인 선택과 사고의 영역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너무도 편리하게 말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 진정한 자유는 단순한 해방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다.
AI가 제공하는 잠재력은 분명 강력하다. 하지만 그 힘을 나의 창조성과 표현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사용할 때, 비로소 나는 AI에 종속되지 않고 함께 협력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ChatGPT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이 생각의 방향은 내가 잡았다. 나는 생각하는 인간이고, 주체적인 창작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하는 인간이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다.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지금 이 결정은 나의 것인가? 지금 이 표현은 나의 목소리인가? 우리가 사고의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품을 때, AI는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는 질서가 아니라, 우리의 자유를 확장해 주는 훌륭한 도구가 될 것이다. 도피보다는 해방이 인간에게 더 어울리는 방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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