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각과 ‘초신선’은 왜 실패했을까?
2025년 7월 4일, ‘초신선’ 돼지고기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던 신선식품 유통 플랫폼 정육각이 기업회생을 신청했습니다.
한때 스타트업 혁신의 아이콘으로, 초록마을까지 인수하며 시장을 놀라게 한 정육각이 유동성 위기로 결국 회생 절차를 밟게 된 것인데요. 예비 유니콘에서 기업회생에 이르기까지, 정육각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초신선의 탄생
미국으로 유학 가기 전 우연한 기회에 도축한 지 얼마 안 된 돼지고기를 먹게 됐어요. 돼지고기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받았죠. 갓 도축한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지만, 일반 소비자들이 이런 고기를 먹는 건 거의 불가능하죠. 돼지고기 도축부터 배송까지 최대 4일 걸리는 시스템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했죠.
<신수현 기자, 도축장서 고기맛 본 카이스트 수학 영재...연 매출 2천억 스타트업 키웠다는데 [남돈남산], 매일경제, 2024년 8월 30일>
미국 국무부 장학생으로 유학을 준비하던 카이스트 출신 학생이 있었습니다. 고기를 좋아하던 그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 실컷 고기나 먹자’는 생각에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갓 도축한 초신선 돼지고기를 맛봅니다. 처음 먹어본 초신선 돼지고기의 맛에 매료된 그는 결국 미국 유학과 장학금을 포기하고 초신선 돼지고기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정육각의 시작이었죠.
정육각은 창업 초기부터 업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카이스트를 졸업한 수학 영재가 첨단 IT 기술로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축산 유통 구조를 개선한다.” 대중과 미디어가 좋아할 만한 이력과 스토리텔링이었죠. 2019년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 30대 이하 리더 30인, 22년 중소벤처기업부 예비 유니콘 선정까지, 화려한 이력과 유려한 입담을 가진 대표의 미디어 노출에 힘입어 정육각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정점은 22년 초록마을 인수였습니다. 이마트, 컬리 등 쟁쟁한 기업을 제치고 창업 6년 차 스타트업이 업력 24년 차의 대기업 계열사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죠. 언론은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며 놀라움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인수 당시 흑자로 전환시키겠다던 정육각의 공언과 달리 초록마을은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기대했던 초록마을과 정육각의 시너지 효과 역시 없었습니다. 오히려 무리한 인수로 기업의 재무 부담만 증가했죠. 결국 불어나는 적자와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정육각과 초록마을은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정육각은 정말 무리한 초록마을 인수로 무너진 것일까요? 초록마을을 인수하지 않은 세계관의 정육각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을까요?
초신선의 딜레마
정육각의 아이덴티티는 뭐니 뭐니 해도 ‘초신선’입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초신선’이라는 콘셉 자체는 마케팅적으로도 훌륭한 전략이었죠. 문제는 초신선이라는 콘셉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높다는 데 있는데요. 잠시 정육각의 재무제표를 살펴볼까요?

매출은 꾸준히 증가하지만, 그와 비례해 적자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매출 성장조차 정체되는, 전형적으로 망하는 이커머스의 정석 같은 재무제표입니다.
이는 근본적인 사업 모델에 ‘수익을 내기 어렵다’라는 문제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초신선’의 근본적인 문제
정육각이 표방하는 초신선을 구현하려면 높은 유통 비용이 발생합니다. 높은 유통비는 필연적으로 가격 상승의 요인이 됩니다. 한편 정육각의 취급 품목은 동네 슈퍼, 마트 등 우리 근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죠.
그래서 ‘초신선’의 맛과 프리미엄의 가치를 인정하고 높은 비용을 지불하며 온라인 구매에 익숙한 사용자가 정육각의 주 타깃입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조사에 따르면 돼지고기의 온라인 채널 구매 비율은 전체의 10.1%입니다. 이 중 71%가 냉동, 29%가 냉장고기로 조사되었습니다. 다른 채널과 비교했을 때, 온라인 구매 시에는 유독 냉동고기 구매 비율이 높았는데요. 가격에 민감해 저렴한 물건을 선호하는 온라인이라는 특성, 직접 보고 구매하는 것을 선호하는 신선신품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보입니다.
결국 정육각이 노린 온라인 냉장육 판매 비중은 전체 시장의 3% 남짓입니다. 게다가 특정 부위(삼겹살, 목살)만 판매하는 방식으로 전체 돼지고기 유통 시장에서 정육각이 점유율을 가져갈 수 있는 시장은 1% 미만으로 추산됩니다. 애초에 시장 규모 자체가 작아도 너무 작죠.
거기다 초신선이라는 콘셉상 대량 구매보다는 소량으로 자주 구매하는 방식에 적합한 물건이라 객단가도 높지 않습니다. 따라서 동네 슈퍼나 대형 마트에서 구매하는 삼겹살보다 정육각에서 구매하는 삼겹살이 압도적으로 맛있고 압도적으로 품질이 좋다 정도의 차별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 과연 정육각은 타사가 따라 할 수 없는 차별성과 변별력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초신선’과 국내 돼지고기 시장
여기서 잠깐, 정육각의 주력 상품인 삼겹살이 우리 집에 배송되기까지 유통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축산물 유통은 ‘농장-도축장-육가공 공장-도매 시장-세절 공장-소매점’의 6단계를 거쳐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유통 단계가 길어지면서 신선도는 떨어지고 가격은 높아진다. 정육각은 이러한 유통단계를 ‘농장-도축장-육가공 공장-정육각’으로 대폭 간소화해 유통 기간을 줄이고, 가격을 낮췄다.
<장영화 조인스타트업 대표,돼지고기 덕후, 대기업을 먹다, 주간조선, 2022년 4월 13일>
기존 축산물 유통 방식
- 농장 → 도축장 → 육가공 공장 → 도매 시장 → 세절 공장 → 소매점
정육각
- 농장 → 도축장 → 육가공 공장 → 정육각
정육각은 기존 축산물 유통 6단계를 대폭 줄였다고 주장하는데요. 6단계에서 두 단계를 줄여 4단계로 만들었다니, 얼핏 생각하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의문점이 하나 생깁니다. ‘3단계의 육가공 공장을 거치지 않고 도축장에서 고기를 직접 떼어오면 유통 비용이 더 줄어들지 않을까? 육가공 공장을 거치는 이유가 뭘까?’라는 질문이죠. 정육각이 육가공 공장을 거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면 국내 축산물 시장의 특성과 유통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축산물 관리법에 따라 모든 돼지는 도축장에서 도축되어야 합니다. 도축을 마치고 경매를 거쳐 육가공 공장으로 납품된 고기는 발골과 정형 과정을 지나 부위별로 분류됩니다.
정육각은 이 육가공 공장에서 부위별로 분류한 삼겹살과 목살만을 구매해 소비자에게 판매했습니다. 이들이 육가공 공장을 따로 운영해 유통과정을 단축하지 않고, 부위를 구매한 이유는 삼겹살 선호도가 높은 국내 돼지고기 시장의 특성에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돼지 한 마리를 도축했을 때, 삼겹살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10~15% 정도입니다. 반면 국내 돼지고기 소비에서 삼겹살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 정도인데요. 즉,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삼겹살의 양보다 소비가 많다는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삼겹살은 물량이 부족해 해외에서 수입까지 하지만, 뒷다리살 같은 비선호 부위는 남아도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모든 부위에 대한 판매망, 유통망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육가공 공장을 직접 운영하는 것보다는 개별 단가는 조금 비싸더라도 육가공 공장에서 분류한 삼겹살만 구매하는 게 훨씬 효율적입니다.
특히 정육각처럼 초신선이 아이덴티티인 서비스는 짝돼지를 가져와 모든 부위를 하루이틀 만에 판매하지 못하면 재고는 모두 폐기처분해야 합니다. 자연스레 모든 부위의 재고 부담을 안고 있는 것보다 그날그날 잘 팔리는 특정 부위만 납품받아 판매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죠.

‘초신선’의 한계와 딜레마
그렇다면 정육각은 어느 육가공 공장에서 돼지고기를 납품받을까요?
여기서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 하나 등장합니다. ‘선진포크’란 브랜드로 유명한 (주)선진이죠. 정육각은 이 선진포크에서 삼겹살과 목살을 납품받았습니다.
즉, 첨단 IT 기술 도입으로 유통 과정을 단축한다고 홍보했지만, 사실 정육각의 비즈니스 모델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선진포크에서 당일 도축한 삼겹살을 납품받아 주문받은 양만큼 썰어 고객에게 배송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요 예측 기술이라던가 주문 효율화 같은 일부 IT 기술이 쓰였지만, 서비스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의 핵심 기술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IT 기술 융합 같은 번지르르한 말로 포장했을 뿐 정육각 역시 다른 온라인 업체와 큰 차별점이 없었습니다. 온라인에서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업체 중 상당수가 선진포크에서 고기를 납품받으니까요.
돼지고기는 선진포크, 닭고기는 체리부로, 소고기는 안성축협과 민속한우. 정육각이 자랑하는 초신선은 사실 대형 고기유통업체로부터 고기를 납품받지 못하면 성립할 수 없는 비즈니스였습니다.

정육각의 한계와 딜레마도 바로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대형 고기유통업체로부터 고기를 납품받을 수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비즈니스라는 것. 실제 동원그룹의 육백점, 대상그룹의 미트프로젝트 등 정육각과 유사한 콘셉의 서비스가 등장하며 진입 장벽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했죠.
하지만 이 비즈니스는 비용이 많이 들고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 이익을 내기 어렵습니다.
만약 정육각의 비즈니스가 정말로 시장 규모가 크고 성장성이 있었다면, 정육각에게 고기를 공급하는 연 매출 1조 원의 대기업 선진포크부터 거센 공격을 받았을 겁니다. 선진포크는 사료부터 육가공까지 양돈과 관련된 모든 인프라를 보유한 기업입니다. 공장을 직접 보유하고 있으니 정육각보다 유통과정을 줄여 가격경쟁력에서도 우위에 설 수 있었겠죠. 심지어 팔리지 않은 고기를 처리할 유통망과 판매망도 가지고 있고요.
그런 선진포크가 정육각에 고기만 납품하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건 돈이 되지 않는 비즈니스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육각에 고기를 납품하며 원가를 훤히 꿰고 있었을 테니까요.
재밌는 점은 정육각의 김재연 대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초록마을 인수 당시 정육각은 단순히 매출 규모만 늘리는 것으로는 적자를 탈출하기 어려운 비용 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BEP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매출부터 비용까지 모든 구조를 손봐야 하는 상황이었죠. 반면 초록마을은 2200억 원 이상 매출만 회복한다면 흑자 전환이 가능한 사업 모델이었습니다. 두 회사가 놓인 상황과 처방이 다른 것이었죠.
<임경업 기자, [쫌아는기자들] 고래를 소화하기 시작한 새우, 정육각의 초록마을 인수기, 한국일보, 2024년 4월 26일>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지만, 김재연 대표도 결국 정육각의 현재 비즈니스 모델로는 수익을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보입니다.
결국 정육각의 초록마을 인수는 무리한 욕심이 아닌 살기 위한 발버둥에 가까웠던 겁니다. 계속 적자만 내다가 망할 바에는 뭐라도 해보고 죽는 게 나았으니까요. 그 발버둥이 초록마을 인수였고요.
어쩌면 예견된 실패
초록마을 인수 시점에서 정육각이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은 약 200억 원가량이었습니다. 매년 적자를 생각하면, 버틸 수 있는 기간은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해도 길어야 3년. 매출과 MAU는 정체되고 성장률은 점점 떨어지는 상황. 3년 안에 상황을 반전시킬 모멘텀을 확보하지 못하면 정육각 역시 적자만 내다 문을 닫고 마는 뻔한 스타트업의 전철을 밟아야 했죠.
이런 상황에서 초록마을 인수는 어쩌면 굉장히 좋은 모멘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전국에 깔려있는 수많은 오프라인 매장과 유통망을 가진, 매출은 많지만 상대적으로 적자 폭은 크지 않은 회사. 컬리와 이마트가 눈독을 들인 이유도 여기 있었을 겁니다. 조금 손을 봐 매출이 살짝만 늘어나도 흑자 전환이 가능해 보였거든요.
초록마을을 인수하고 흑자 전환시켜 몸집을 키운다. 그렇게 키운 몸집으로 추가 투자 자금을 유치한다. 들어온 자금으로 서비스를 확장해 종합농축수산플랫폼이 된다. 이것이 정육각이 생각한 성장 스토리였을 겁니다.
정육각은 기존 '초신선' 육류 유통 플랫폼 '정육각'에 더해 최근 새로운 플랫폼 출시로 본격적인 서비스 다양화에 돌입했다. 이달 초엔 농수산 직거래 플랫폼 '직샵'의 베타 서비스를 출시해 입점 생산자를 늘리고, 고객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정식 서비스는 연내 출시될 예정이다.
정육각이 가공·유통한 육류의 맞춤형 조리를 선보이는 주방기기 브랜드 '정육각on(가칭)'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중략)…
지난해 44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한 정육각은 현재 시리즈D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이다. 업계에선 초록마을과의 시너지에 대한 기대로 15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성현희 기자, [유니콘 발굴단⑮] 신선식품 D2C 확대 나선 정육각···‘선배 유니콘’ 컬리·오아시스에 도전장, 조선비즈, 2022년 8월 16일>
농축수산물을 취급하는 서비스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지향점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중간 유통 과정을 없애 생산자에게는 정당한 가치를, 소비자에게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농축수산물을 판매하는 직거래 플랫폼. 정육각이 꿈꾸는 최종 목표도 그랬을 겁니다. 초록마을은 최종 지향점으로 가는 중간 과정이었을 테고요.
이런 정육각의 계획이 실현되려면 아래와 같은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 저금리가 몇 년 동안 이어져 적자를 내면서도 투자금을 받아 사업을 유지한다.
- 초록마을을 인수해 흑자 전환에 성공한다.
- 농수산 직거래 플랫폼이 빠르게 자리 잡아 흑자전환에 성공한다.
- 네이버, 컬리 등 경쟁자를 물리치고 종합농축수산플랫폼으로 성장한다.
안타깝게도, 정육각의 계획은 첫 번째부터 어긋났습니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며 저금리 시대가 끝난 것이죠.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을 거로 예상해 시작한 초록마을 인수가 첫 단추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 초록마을은 흑자 전환에 실패하며 자금난에 시달렸고요.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정육각과 초록마을의 기업회생 신청이었습니다.
혹자는 승자의 저주라며, 무리한 인수가 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초록마을 인수가 없었더라도 정육각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창립 이래 한 번도 흑자를 내본 적 없는, 매년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의 적자를 내며, 외부 투자 없이 자력 생존이 불가능한 비즈니스 구조를 가진 기업이었으니까요.
어쩌면 정육각이 무너지기 시작한 진짜 시점은 초록마을 인수가 아닌, 돈을 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꿈과 희망을 팔아 투자금을 유치하던 그때였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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