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기술이 이미 생활 속 필수재로 자리 잡은 요즘, 그 기술 뒤에서 움직이는 기업들의 정체와 비전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AI는 이제 단순한 기술 트렌드를 넘어 세상을 바꾸는 핵심 동력으로 떠올랐습니다.
〈AI 기업 탐구〉시리즈는 AI 산업의 대표적인 기업들을 하나씩 꼼꼼하게 살펴보며, 이들이 어떻게 탄생했고, 현재 어떤 전략과 비전으로 미래를 그려나가는지 구체적으로 조명하고자 합니다. AI를 이끄는 주인공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만나보세요.
"2시간 만에 만든 게임", "비개발자가 30분 만에 만든 홈페이지"
요즘 이런 제목의 콘텐츠, 한 번쯤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놀라운 건, 결과물을 보면 생각보다 꽤 그럴싸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느낌만으로 개발한다는 이른바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의 확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이브 코딩이라는 용어는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반짝 유행이 아닌 지속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검색 트렌드와 궤를 같이하며 함께 떠오른 이름이 있다는 점인데요. 바로 오늘의 주인공, '커서 AI(Cursor AI)'입니다.
AI 모델의 코딩 실력이 점점 고도화되고, 이를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게 돕는 도구들이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커서 AI는 그 흐름의 선두 주자로 부상했습니다. 개발자들은 물론 비개발자들에게도 빠르게 지지를 얻으며, 이례적인 성장 속도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오늘은 이 커서 AI를 만든 기업, '애니스피어(Anysphere)'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최근 유니콘 기업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AI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점입니다. 애니스피어 역시 2022년 MIT에서 함께 공부하던 네 명의 친구들이 창업한 스타트업입니다. 이들은 AI를 활용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깊은 관심이 있었고, 기존 AI 코드 어시스턴트의 한계를 경험하면서 문제의식을 키워갔는데요. 그리고 이를 직접 해결하고자 대학을 중퇴한 뒤 바로 창업에 나서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자연스럽게 애니스피어의 목표는 미래의 엔지니어(Engineer of the future)가 되었습니다. 목표에서 알 수 있듯 애니스피어는 프로그래밍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하는데요. 복잡하고 반복적인 코드는 AI가 작성하고, 개발자는 최소한의 입력만으로도 최상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바로 이것이 애니스피어가 추구하는 개발 철학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애니스피어의 개발팀이 실제로 자사 제품인 커서(Cursor)를 사용해 커서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들이 만든 AI 기반 코드 편집기를 실사용하며, 새로운 기능을 빠르게 도입하고,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제거하는 방식의 '자기 개선형 피드백 루프(self-reinforcing feedback loop)'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와 관련해, 커서 팀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된 한 개발자는 "믿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제품을 만들고 있다"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팀 내에서도 AI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생산성이 J자 곡선을 그리듯 가파르게 향상되고 있으며, 이 같은 개발 문화 또한 애니스피어의 철학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AI 기업 탐구 시리즈에서 소개했던 '뤼튼(Wrtn)'을 기억하시나요? 뤼튼은 GPT, 클로드, 제미나이 등 다양한 LLM 모델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해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커서 역시 큰 틀에서는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산출물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뤼튼이 블로그나 소개글 등 일반적인 글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커서 AI는 Python, JavaScript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 기반의 코드 작성에 특화되어 있는데요. 구체적인 특장점들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커서는 VS Code 기반의 독립형 IDE(통합개발환경)입니다. 일반적인 AI 코딩 툴이 기존 코드 에디터의 확장 프로그램 형태로 제공되는 것과 달리, 커서는 애초부터 AI 최적화된 자체 에디터를 설계했습니다. 이로 인해 별도의 복잡한 설정 없이 설치만 하면 곧바로 코드 자동완성, 파일 분석, 프로젝트 구조 이해 등의 고급 AI 기능을 바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불필요한 UI 요소를 최소화해 코드 작성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것도 장점입니다. 특히 기존에 VS Code를 사용하던 개발자라면, 커서를 설치할 때 VS Code의 설정, 테마, 단축키, 익스텐션 등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어 진입장벽이 낮고 전환도 자연스럽습니다.
커서의 탭(Tab)은 쉽게 말해 코드를 자동으로 완성시켜 주는 기능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자동으로 완성하는 것을 넘어 멀티라인 코드 생성, 호출부 자동 수정, 리팩토링 제안까지 받을 수 있는데요. 특히 주목받은 점은 다음 수정이 필요한 코드 위치까지 미리 예측하여 커서를 이동시켜 주는 기능입니다.
예를 들어, 클래스를 정의한 뒤 Tab을 누르면 생성자 정의로, 이어서 메서드 작성 위치로 자동 넘어가는 식인데요. 이처럼 Tab 기능은 개발자의 작업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도구로, 생산성과 집중력을 동시에 높여주는 요소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최근 OpenAI에서 Agent 기능을 출시하며 화제가 됐는데요. 커서는 코딩 분야에 한정해 이미 Agent 시스템을 도입해 왔습니다. 이는 단순히 코드를 추천하는 수준을 넘어, 사용자의 자연어 지시를 이해하고 실제로 수정 작업까지 수행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이 파일에서 에러가 날 수 있는 부분을 수정해 줘", "이 함수에 유닛 테스트 코드를 추가해 줘"와 같은 명령을 입력하면, 커서 에이전트는 코드의 맥락을 파악한 뒤 필요한 위치를 찾아 해당 수정 작업을 직접 수행합니다.
이 외에도 AI 기반 코드 리뷰 도우미인 '버그봇(BugBot)', 사용자 요청에 따라 최적의 모델을 자동 선택하는 '오토(Auto)' 기능 등 개발자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주는 다양한 기능이 적용되어, 개발자로부터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커서는 출시와 동시에 업계의 많은 주목을 받으며, AI 시대를 대표하는 급성장 기업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 성장 배경에는 구독 기반의 견고한 수익 모델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많은 AI 서비스가 그러하듯 무료 버전과 유료 버전을 병행하고 있지만,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높은 유료 전환율과 구독 유지율입니다.
이러한 성장세는 구독형 SaaS 모델의 핵심 지표인 연간 반복 매출(ARR, Annual Recurring Revenue)에서 잘 드러나는데요. ARR 부분에서 역대 가장 빠르게 1억 달러에 도달한 회사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으며, 그 속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상승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기록을 보면 단 6개월 만에 ARR이 5배 성장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런 폭발적인 성장세의 중심에는 엔터프라이즈 고객 확대가 있습니다. 2025년 들어 엔비디아, 우버, 어도비 등 포춘 500 기업 다수와 계약을 체결하며, 본격적인 B2B 진출을 시작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커서 측은 현재 하루 10억 줄 이상의 코드가 생성되고 있다며 밝혔으며, 이를 통해 고객 사용량의 규모를 간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장세는 투자 시장에서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커서를 운영하는 애니스피어는 최근 시리즈 C 라운드를 통해 총 9억 달러(약 1.2조 원)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기업가치는 약 90억 달러(약 12.4조 원)로 평가받았습니다.
커서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꼽히는 윈드서프가 OpenAI로부터 30억 달러에 인수 제안을 받은 것을 고려하면, 커서가 기술뿐 아니라 비즈니스적 측면에서도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눈에 띄는 성장세를 이어가던 커서가 최근 브레이크에 걸렸습니다. 요금제 개편 과정에서 욕심을 부린 것이 화근이었는데요. 문제가 된 Pro 요금제를 기준으로 변화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존의 Pro 요금제는 월 $20로 모델에 상관없이 월 500회까지 호출이 가능했습니다. 호출 횟수를 초과하면 응답 속도를 늦추는 대신 무제한으로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이 500회를 '클로드 소넷(Claude Sonnet)'에 집중해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클로드는 GPT나 제미나이보다 코딩 성능이 뛰어난 모델로 평가받았기에 당연한 현상이었는데요. 커서 입장에서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클로드의 API 단가가 가장 높았기 때문에, 수익성을 고려할 때 모델 사용을 보다 고르게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커서는 6월 16일 갑작스럽게 요금제를 개편합니다. 500회 요청 제한은 사라지고, 대신 무제한으로 에이전트를 요청할 수 있도록 바뀐 것인데요. "일부 모델에 한해 사용량 제한"이라는 단서가 작게 달려있었지만, 대부분의 사용자는 '무제한'이라는 단어에 집중하며 별다른 변화 없이 서비스를 계속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는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기존처럼 클로드를 사용하던 이용자들은 이전보다 훨씬 적은 호출 횟수에도 제한이 걸리기 시작한 것인데요. 특히 한 팀은 평소처럼 약 500회의 요청만으로 7,000달러가 넘는 요금이 청구됐다는 사례까지 등장했습니다.
불만이 쏟아지자, 커서는 요금제 설명에서 문제가 된 'Unlimited'라는 단어 대신 'Extended limits'라는 단어로 문구를 변경했습니다. 그러나 설명만 바뀌었을 뿐 실질적인 사용 방식은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모델별 제한 수치를 명확히 공개하지 않는 태도에 사용자들의 불만은 계속해서 커져갔습니다.
결국 커서 측은 쏟아지는 비판 여론에 밀려, 그동안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해명과 함께 모델별 사용 한도를 공식적으로 공개했습니다. 공지에 따르면, 클로드 소넷은 225건, 제미나이는 550건, GPT-4.1은 650건으로 제한되어 있는데요. 이에 사용자들은 사실상 요금제 너프(하향)라며, '무제한'이라는 표현이 기만적인 마케팅이었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핵심 인재의 이탈까지 이루어졌습니다. 앤트로픽의 '클로드 코드(Claude Code)'팀에 있던 인재 2명이 애니스피어에 합류한 지 2주 만에 앤트로픽으로 다시 복귀한 것인데요. 요금제 변경에 있어 적절하지 않은 대응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앞서 말했던 클로드 코드와 같이 커서에 AI 모델을 제공하던 기업들이 자체 AI 코딩 제품을 출시하는 등 대체재가 생기면서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는데요. 구글 역시 윈드서프의 CEO 등을 영입하며 본격적인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는 만큼, 한층 더 격렬한 경쟁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애니스피어가 만든 커서는 그들이 내세운 목표인 'AI 시대의 새로운 개발 패러다임'을 실제로 구현했습니다. 특히 '바이브 코딩'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커서가 제안한 독립형 IDE, 탭 기반 자동 완성, 에이전트 실행 방식은 개발자들에게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용자의 의도를 미리 파악하고, 필요한 도움을 자연어로 주고받으며 작업을 수행하는 구조는 인간-AI 협업 프로그래밍의 초기 모델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커서는 이제 막 첫 번째 성장 곡선을 넘어선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금제 개편에서의 혼란, 핵심 인재들의 이탈, 앤트로픽이나 구글과 같은 빅테크의 본격적인 시장 진입 등은 커서가 지금까지 마주해보지 않았던 차원의 도전입니다.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가 앞으로의 애니스피어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될 것입니다.
특히 커뮤니티와의 신뢰 회복은 가장 시급한 과제로 보입니다. 구독 기반의 SaaS 서비스의 경우 기술 고도화뿐 아니라, 플랫폼으로서의 신뢰가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인데요. 이를 어떻게 회복하고 재설계할 것인가가 커서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적응력'이라는 키워드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기술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이 시대에,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사용자 요구에 맞춰 구조를 빠르게 업데이트할 수 있는 유연성은 커서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 자산이 될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강점은, 지금까지 커서가 보여준 '속도'입니다. ARR 성장 속도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며, 출시 3년 만에 엔터프라이즈 시장에 안착한 것은 분명 인상적인 모습입니다. 이는 커서가 단순히 빠르기만 한 스타트업이 아니라, 속도와 안정성 사이의 균형을 일정 수준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25살 안팎인 창업자들의 나이도 눈길을 끕니다. 젊은 나이는 때로 불안정함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기술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빠른 감각'과 '참신한 시도'를 가능하게 만드는 배경이기 때문입니다.
애니스피어, 그리고 커서가 두 번째 성장 곡선에 안정적으로 올라탈 수 있을지는 앞으로 잘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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