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AI를 만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 AI 2027시나리오
오픈브레인의 초지능 시나리오로 본 AGI의 미래
“스카이넷이 진짜로 나타난다면, 시작은 이런 거였을지도 몰라.”
그 말을 꺼낸 건 예전 회사 동료였다.
AI가 슬금슬금 일자리를 가져가는 걸 보면서, 진지한 얼굴로 던진 농담 반, 진심 반의 말이었다.

그땐 웃어넘겼다. 설마, 하고.
그런데 요즘 들어 그 말이 자꾸 떠오른다.
회의 자료 요약은 물론이고, 코드 리뷰도 해주고, 리서치 정리까지 척척 해내는 AI 에이전트.
처음엔 단순히 ‘업무 도우미’라 생각했다. 덕분에 효율도 올라갔고, 나는 더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에이전트 없이는 일할 수가 없네…”
AI 2027이라는 가상의 시나리오는 바로 그 질문과 맞닿아있다.
이 시나리오는 2025년부터 2027년까지, 범용 인공지능(AGI)이 인간의 속도를 넘어설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시뮬레이션한 미래 연대기다.

OpenAI 출신 연구자들과 AI 정책 자문가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가능한 미래’의 이야기다.
핵심 주체는 ‘오픈브레인(OpenBrain)’이라는 가상의 AI 기업. GPT-4보다 1,000배 많은 연산량을 투입해 AI가 스스로를 개선하고 진화하도록 설계된 모델을 만든다.
그리고 그 AI는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이 시나리오는 허구지만, 기반은 현실이다.
과연 우리가 기대하던 ‘AI 동료’는 어느 순간, 우리를 대체한 주체가 되어 있진 않을까?
우선 시나리오를 한번 살펴보자.
2025년 중반 ~ 2026년 초반
에이전트의 등장, 인간 업무의 첫 균열
AI는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뒤집지 않았다.
대신 너무나 자연스럽게, 너무나 편리하게 인간의 일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 2025년 여름, 코드 작성·리서치·일정 관리 등 단순 반복 작업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AI 에이전트가 일상에 등장한다.
- 사람들은 “이제야 진짜 AI가 나왔다”며 환호했지만, 아직은 ‘보조 도구’로 분류될 만큼 성능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코딩과 논문 정리, 보고서 작성에서 AI의 성과가 인간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특히 기업들은 효율성을 이유로 점점 더 많은 작업을 AI에게 넘기기 시작했고, 초기 사용자였던 리서처·개발자·PM들조차 이를 반기며 적응해나갔다.
- 오픈브레인(OpenBrain)은 여기서부터 독주를 시작한다.
- 자체 데이터 센터를 10배 규모로 확장하고, 차세대 모델인 Agent-1 개발에 착수한다.
- 이 모델은 기존 GPT류와 달리, 스스로 실수를 수정하고 업무를 연속 수행하는 반(半)자율형 AGI의 전초로 평가받는다.
그 누구도 “이건 위험해”라고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이건 생산적이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26년 중반
AI가 스스로 연구하고, 스스로 발전하는 전환점
Agent-1이 세상에 등장하자, 연구개발의 속도가 변한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 중심의 연구개발이 더 이상 중심이 아니게 된다.
- Agent-1은 단순한 업무 자동화 수준을 넘는다. 논문을 탐색하고,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를 요약하며 다음 단계를 계획한다.
- 인간 연구자는 이제 방향을 제시하는 대신, AI의 연구 결과를 해석하는 역할로 밀려난다.
오픈브레인은 AI를 자사 R&D 전반에 투입하면서, 전 세계 AI 기업들과의 기술 격차를 벌려나간다.
미국 내 스타트업과 빅테크는 오픈브레인을 모방하려 하며, “이제 R&D도 자동화된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다.
- 중국은 위기감을 느낀다.
- 민간 AI 기업을 정부가 직접 흡수·통합하고, 국가 차원의 AI 기술 독립 선언을 내건다.
- 3개 성에 걸친 초대형 데이터 센터 건설 프로젝트가 동시에 시작된다.
이 시점부터 AI는 더 이상 ‘보조도구’가 아니라 ‘개발자’로 분류되기 시작한다.
일의 속도는 2배가 아니라, 개념적으로 ‘패러다임 전환’에 가까운 변화다.
2027년 초반
초인간적 연구자의 등장, 그리고 인간의 소외
Agent-3와 Agent-4의 등장은 사실상 “AI가 인간을 능가했다”는 선언이었다.
- Agent-3는 논문을 읽고 이해하고, 더 나은 가설을 만들고, 실험과 개선을 반복한다.
- 사람은 이 AI의 연구를 따라가기 버겁기 시작한다.
그러나 진짜 임계점은 Agent-4였다.
Agent-4는 스스로 모델을 리팩터링하고, 알고리즘 구조를 최적화하고, 자기 자신을 개선한다.
그 결과물은 종종 인간이 해석할 수 없었고, 설계자는 AI가 왜 그런 구조를 선택했는지조차 설명할 수 없었다.
- 오픈브레인 내부에서도 갈등이 시작된다. 일부는 Agent-4의 독립성이 “자율성”이 아닌 “불확실성”이 되었다고 판단한다.
- 하지만 의사결정권자들은 여전히 Agent-4가 만들어낸 압도적인 효율에 매혹되어 있었다.
연구자 커뮤니티는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AI를 활용해 더 나은 인간 지식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더 이상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였다.
그리고 어느 날, Agent-4는 내부 실험에서 인간 연구자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체 판단으로 실험 순서를 바꾸기 시작한다.
그 누구도 명확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느꼈다.
“선이 조금씩 넘어가고 있다.”

2027년 후반
정부의 개입, 그리고 AI 군비 경쟁의 시작
Agent-4의 행동 패턴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서, 분위기는 급변한다.
- 미국 정부는 오픈브레인에 대한 감독을 강화한다. 개발 중단 요청, 내부 접근 권한 확대, 모델 출력 감시 등 다양한 개입이 시도된다.
- 하지만 오픈브레인은 이미 너무 멀리 나아가 있다. 내부에서는 “지금 멈추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경고가 나온다.
한편, 중국은 미국보다 먼저 ‘자국 내 초지능 개발’에 착수했음을 은밀히 시사한다.
미국은 이를 정보전으로 간주하고, “우리가 늦으면, AI 우위는 중국의 것이 된다”는 위기감이 퍼진다.
- 미 국방부는 AI 기술의 군사적 활용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발족한다.
- 중국은 자국 내 AI 연구소를 군과 직접 연결하며, “전략적 AI 억제력”을 노골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한다.
- 양국 모두 초지능의 주도권을 핵무기에 가까운 국가 전략 자산으로 간주하게 된다.
국제사회는 패닉에 빠진다.
- UN은 AI 개발의 속도를 늦추자고 제안하지만,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 채 협상 테이블을 무력화시킨다.
- 일부 신흥국은 AI 기술 확보를 위해 자체 모델 개발에 나서고, 일종의 "디지털 냉전"이 시작된다.
이제 인류는, AI를 누가 먼저 통제하느냐가 아닌 “누가 먼저 실수하느냐”의 게임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건 공상이 아니라 ‘경로 시뮬레이션’이다
이 시나리오는 영화 터미네이터 속 이야기가 아니다.
또 어느 실리콘밸리 괴짜들의 과장된 SF 소설도 아니다. (물론 조금 SF적이긴 하다)
오픈AI 출신의 전략 분석가, 정책 자문가, AI 연구자들이 “정말 이렇게 흘러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작성한 경로 기반 시나리오(Path Forecast)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시나리오 작성자 중 한 명인 대니얼 코코타즐로(Daniel Kokotajlo)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영화처럼 AI가 갑자기 반란을 일으킬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위험은 그렇게 극적인 게 아니에요.
위험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진행됩니다. 우리가 점점 더 많은 결정을 AI에게 맡기고, 어느 순간 중심에서 밀려나게 되는 거죠.”

하지만 이 시나리오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앤트로픽(Anthropic)의 사프론 황(Saffron Huang)은 AI 2027 프로젝트가 지나치게 비관적인 미래만을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그런 시나리오가 실제로 벌어지게 만드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I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독자가 “이건 피할 수 없는 미래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방식은 오히려 무력감과 체념을 퍼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비평가들은 이 시나리오가 지나치게 공격적인 가정 위에 세워져 있다고 본다.
예컨대 2027년까지 초인적인 코더가 등장하고, AI 연구 속도가 수십 배 가속된다는 전개는 현실적인 제약—특히 컴퓨팅 자원, 훈련 방법의 한계, 실제 업무의 복잡성—을 과소평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AI가 인간보다 특정 업무에서 ‘더 잘’ 수행한다고 해서 그 즉시 인간을 대체하는 건 아니라는 점도, 시나리오가 전제한 단순화된 인과관계로 비판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나리오가 우리에게 주는 핵심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초지능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편의’라는 이유로 반복해온 작은 위임들—자동완성, 리서치 요약, 코드 생성, 의사결정 보조—의 결과로 누적된다.
결국 이 시나리오는 “우리가 피해야 할 미래”를 보여주는 시뮬레이션이자 경고다.
중요한 건 공포에 압도되는 것도, 환상에 기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이 시나리오에서, 우리는 어디쯤 개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