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기가 두려운 당신을 위한 가이드
요즘 구직이 참 어렵죠? 저 역시 시장이 한창 얼어붙었던 24년 중반, 11개월이라는 공백기를 깨고 겨우 이직에 성공한 사람으로서 그 어려움과 감정에 깊이 공감합니다. 저는 당시 느꼈던 그 복잡미묘한 감정을 ‘막연함’이라는 단어로 요약하고 싶어요.
이직을 시도하던 그 시기의 저는 커리어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생각했고, 돈도 충분히 모아둔 상태였으며, 부양가족도 없었고, 나이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퇴사를 한 바로 다음 날부터 숨 쉬는 모든 시간이 ‘공백기’라는 이름으로 평가받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공부도, 프로젝트도, 면접 준비도, 심지어는 쉬는 것마저도 늘 쫓기듯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거의 1년을 보냈어요. 제 커리어에 어느새 1년이라는 블랙박스가 생긴 거죠. 이제는 면접 때마다 ‘쉬는 기간에 무엇을 했냐?’는 질문을 너무 많이 들어 답변이 술술 나올 지경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순간들에도 앞으로 나아갔고 결국 원하던 조직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제 전략이 맞았던 거죠. 오늘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분들에게 제 이야기를 나누어드리고자 합니다.
잠깐씩 쉬어가기
본격적인 공백기가 시작되기 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부분 며칠 정도는 쉴 여유가 있습니다. 상황의 급박함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짧은 틈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봐요. 저는 이 시기가 기계를 돌리기에 앞서 묵은 기름을 닦아내고 새 윤활유를 바르듯 스스로를 정비하는 시간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며칠 쉰다고 해서 동기부여나 에너지가 게임에서 포션을 마시듯 단숨에 차오르진 않겠지만, 제게는 어느 정도는 그런 효과가 있었습니다. 또, 이전 회사와 완전히 단절되는 느낌이 나 비로소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도 들더라고요.
공백기 중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잠깐 멈춰보세요. 구직을 시작한 지 9개월쯤 되었을 때 한계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언가 더 하기보다 태국 치앙마이로 떠나 약 3주 정도 쉬었습니다. 물론 그곳에서도 리모트로 인터뷰를 보고 공부했지만, 대부분은 산책하거나 카페에서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어요. 마음 한편으로는 조바심이 났다 해도, 결과적으로 이 여행 덕분에 다시 달릴 힘을 얻어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마 각자에게 맞는 쉼의 방식이 다를 텐데요, 본인에게 적절한 방법을 찾고 활용해 공백기를 현명하게 견뎌내기를 바랍니다. 저는 ‘쉬면 망하는’ 줄 알고 제대로 쉬지 못해 오히려 더 많이 좌절했거든요. ‘노는 것’이 아닌 제대로 ‘쉬는 것’은 필요합니다.

1. 지난날 돌아보기: 경험 자산화
한소끔 휴식을 취하셨다면, 이제 다시 일할 시간입니다. 저는 이 대단원의 서막을 회고부터 시작하기로 했어요.
데이터 사이언스(Data Science) 분야에서 유명한 격언 ‘GIGO(Garbage In, Garbage Out)’를 들어본 적 있나요? 좋은 음식을 만들려면 좋은 재료부터 구해야 하듯, 나만의 경쟁력을 만들려면 우리 경험 속에 숨어있는 원석을 채굴하는 과정이 먼저입니다.
분명 여러분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왔습니다. 미리 기록해 두었거나 퇴사 전에 정리한 성과 자료가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없다고 하더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한곳에 모아보세요. 정량적이든 정성적이든 어떤 형태라도 괜찮습니다.
만약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전 직장 동료에게 연락해 도움을 받는 것도 좋아요. 저 역시 퇴사에 앞서 제가 작업했던 내용과 관련 비즈니스 지표, 성능 및 성과 지표 등을 미리 정리해 두었습니다.
저는 이 자료를 크게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눠 보았습니다.
- 정량적 성과 정리: 직무 역량을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성과를 의미합니다. 저는 개발자였기 때문에 주로 맡았던 제품의 기술적 난이도, 비즈니스 임팩트, 성능 지표 등을 정리했어요.
- 정성적 성과 정리: 정성적인 성과는 워낙 많아 한번 나열해 볼게요. 동료 피드백을 반영해서 개선했던 점, 중요한 의사결정 상황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사례, 문제 정의나 효율적인 방법론을 제시해 문제를 해결한 경험, 어려운 문제를 풀어낸 경험, 프로젝트나 조직을 리딩한 경험,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경험, 팀 생산성을 높인 경험, 동기부여를 끌어올린 경험 등이었죠.
- 경험과 배움의 기록: 성공 경험뿐만 아니라 실패한 경험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시 어떤 상황이었고, 어떻게 대처했으며,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솔직하게 기록해 보세요.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면접에서 진솔하게 답변할 훌륭한 재료가 됩니다.
이렇게 정리된 내용은 단순히 기록을 남기거나 이력서의 재료가 되는 것을 넘어, 나의 강점과 약점, 흥미와 가치관을 파악하는 자기 이해의 기초로 발전하게 될 거예요.

2. 앞날을 준비하기: 성장 동력 탐색
과거를 정리했다면, 이제 미래를 위한 준비에 나설 차례입니다. 공백기는 부족한 역량을 채울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애석하게도 저는 이 과정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지 못해 공백기 동안 실력을 퀀텀 점프(Quantum Jump)할 귀중한 기회를 놓쳤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인프라 경험이 거의 없고 지식도 부족했는데, 이 시기에 강의를 듣거나 개인 프로젝트 인프라를 직접 세팅하는 등 노력을 해보지 않았어요. 지금도 그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공백기에는 이런 성장 동력을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 부족한 역량 강화: 부족한 점은 스스로 인식할 수도 있지만, 주변 사람에게 듣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게 부족한 역량을 찾았다면 이를 개선하는 데에는 시간과 돈을 아끼지 마세요.
- 다양한 경험 쌓기: 회사 일에 치여 미처 하지 못했던 것들을 공백기에 시도해 보세요. 콘퍼런스 참석, 다른 분야 공부, 협업 프로젝트 참여, 멘토링 등이요. 저 역시 이 기간에 파이썬(Python)과 인공지능(AI)을 공부했고, 후배들을 위한 멘토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 나만의 작은 성공 만들기: 작은 성공이 모여 큰 성공을 만든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을 텐데요. 공백기에도 작지만 꾸준히 성공 경험을 만드는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과입니다. 동료들과 함께 AI를 레버리지(Leverage)하며 작은 성과라도 만들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지루하게 이력서를 고치고, 면접 공부만 하면서 공백기를 보낼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이 시기는 회사에 다닐 땐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시도할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유튜브 운영, 작은 사업, 외주 작업을 시작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죠.
“이직하고 나서 하자”는 생각보다는 지금 당장 틈틈이 시도하며 작은 성공을 경험해 보세요. ‘공백기’라는 단어에 지배당하면 조바심이 생기고, 그 조바심은 구직 활동 외의 모든 행동을 제한합니다. 이 기간에 다양한 경험을 하면 구직 활동뿐 아니라 그 너머의 삶까지도 더욱 또렷하게 바라보게 해줄 거예요.
3. 공백기를 스토리로 만들기: 나만의 서사 구축
좋은 재료라도 손질해야 요리할 수 있듯 스토리는 공백기 동안의 활동을 완성시키는 작업입니다. 이때는 단순히 ‘쉬었다’가 아니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에요.
- 점과 점 연결하기: 자신의 강점과 경험, 그리고 노력을 하나로 이을 흐름을 만들어보세요. 예를 들어, “이전 직무에서 OO의 한계를 느껴 공백기 동안 △△ 역량 강화에 집중했고, 그 결과 □□라는 작은 성과를 만들어 자신감을 얻었습니다.”와 같은 방식이죠.
- 목표 지향성 강조하기: 공백기 동안의 활동들이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 아래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하세요.
- 내 성향을 보여주기: 공백기는 내 강점을 명확히 드러낼 활동을 하고, 이를 나만의 스토리로 엮어낼 기회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빠르게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시장의 반응을 보며 피드백을 반영할 수 있는 제품 개발자라면, 공백기에 생각해 둔 여러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 보세요. 그중 좋은 반응이 온 제품을 고도화하고 그 사례를 스토리로 만들어 적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슴슴하게 이력과 경험을 나열한 이력서들 사이, 좋은 스토리를 담은 새로운 경험은 호기심을 자아내며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게 만듭니다. 또한, 이런 경험은 업무 역량을 넘어 성장에 대한 열망, 동기부여, 오너십,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 등 특성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관련 업무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좋은 스토리와 비슷한 경험으로 충분히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거죠.
다만 모든 경험에 꼭 스토리라는 장치를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공백기에 했던 활동들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몇몇 사례에만 딱 어울리는 화려한 옷을 입혀 보세요.
마음가짐
1950년대 팝송 중에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라는 싱그러운 노래가 있습니다. 스페인어로 ‘될 대로 돼라’는 의미인데요. 제목만 보면 자유롭고 낙천적인 히피 마인드의 표상 같지만, 부제인 ‘Whatever will be, will be’를 덧붙이면 조금 다르게 해석됩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러니 될 대로 돼라’라는 뜻으로요.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철학이 담겨 있죠.

이 해석 그대로가 지금 공백기라는 고개를 넘고 있는 모든 분께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랬거든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노력해서 바꾸되, 바꿀 수 없는 것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 것. 그렇게 멈추지 않고 매 순간 조금이라도 나아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교훈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공백기란 기약 없는 싸움입니다. 1달이 걸리든, 1년이 걸리든,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에서 오는 무력감은 좋은 음식이나 충분한 휴식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더라고요. 그러니 스스로 마음가짐을 단단하게 세우고 가다듬어 보세요.
장항준식 사고
장항준 감독님을 아시나요? 저는 영화감독으로서보다는 예능에서 자주 봤는데요, 어느 인터뷰에서 그분이 한 말이 공백기 내내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비속어가 섞여 있어 순화하면 이렇습니다.
“나의 장점은 나쁜 일은 빨리 잊는다는 것이다. 그냥 속으로 욕 한 번 하면 싹 잊는다.”
‘장항준식 사고’는 좀 더 유명한 ‘장원영식 사고’의 현실주의자 버전인 셈이죠. 스스로를 갉아먹는 요소에 냉소적으로 대응하는 자세. 이런 사고방식이 공백기를 견디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절대 나를 잡아 내리는 요소들에 잠식당하지 마세요. 그런 요소들은 마치 미미한 독에 서서히 중독되듯이, 특히 공백기와 같은 힘든 시기에는 서서히 나를 갉아먹습니다.

원하는 조직에 합류하기까지 저는 약 120~130번 정도의 좌절을 맛봤습니다. 몇몇은 최종 단계까지 갔다가 고배를 마신 적도 있고, 어떤 곳은 출근까지 했다가 과거의 제 선택을 후회하며 다시 돌아온 적도 있죠. 사실 대부분은 서류 제출 단계부터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특히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수정한 서류를 내고도 떨어졌을 때는, ‘아, 여기까진가 보다’ 하고 거의 한 달 동안 지원을 멈추기도 했습니다.
작은 성공 경험이 쌓여 더 큰 성공 경험을 만들어낸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실패 경험이 쓸모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또한 차곡차곡 쌓여 나름의 교훈을 주고 새로운 동기부여를 만들어줍니다.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연료만 채취하고 찌꺼기는 거들떠보지 마세요.
마치며
우리는 ‘나’라는 회사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공백기는 늪에 가깝습니다. 뭘 해도 안 되는 것 같고, 설령 되더라도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니까요. 저 역시 이런 상태로 몇 달을 지냈더니 주변에서 안색이 변했다고 할 정도로 피폐해졌습니다.
이를 이겨내려고 여행도 떠나보고, 책도 읽고, 사람도 만나며 마음가짐을 다잡아 나갔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돌보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뻔한 말일지 모르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나를 뒤로 끌어내리는 그 어떤 것에도 고개 숙이지 말고 스스로를 의심하지 마세요. 꼭 해내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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