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AWS만 쓸까?
요즘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클라우드는 AWS를 쓴다고 말합니다. 익숙한 장면이죠. “그럼 국내 클라우드는요?”라고 질문을 던지면 말끝이 흐려집니다.
국내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 기업(CSP)들도 기술력과 인프라 면에서 꾸준히 성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유독 스타트업 시장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한 편입니다. 단지 AWS가 더 유명해서일까요? 아니면 국내 CSP에 뭔가 부족한 점이 있기 때문일까요?
이 글에서는 왜 이런 현상이 굳어졌는지, 그리고 앞으로 국내 CSP와 스타트업 시장에는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하나씩 짚어보려고 합니다.
[빠르게 전체 글 보기]
- AWS는 스타트업과 함께 성장한 생태계를 선점하며 시장 주도: 크레딧, 기술 컨설팅, 글로벌 진출 등 장기 파트너 전략
- 국내 CSP는 공공·금융 중심 전략과 규제 환경 탓에 스타트업 접근이 제한적: 안정성 위주의 초기 전략, SaaS 생태계 미비로 스타트업과 접점 부족
- 멀티 클라우드 시대, 국내 CSP는 ‘보완재’를 넘어선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규제 대응, 기술 호환성, 생태계 연계가 새로운 전략의 핵심
스타트업과 함께 성장한 AWS, 국내 CSP는?
AWS는 2006년 처음 클라우드 서비스를 처음 시작한 이후 꾸준히 스타트업과 함께 성장해 왔습니다. 이미 레거시 시스템에 막대한 시간과 돈을 투입한 큰 기업들의 클라우드 전환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IT 인프라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한 스타트업 시장에 침투해 함께 성장하는 전략을 택한 거죠.
여기서 중요한 건 AWS가 단순히 인프라만 제공한 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스타트업을 고객으로 키우고자 지원했다는 점입니다. AWS는 기술 지원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생태계와 커뮤니티까지 적극적으로 만들어줬습니다.
AWS는 어떻게 스타트업을 품었나
AWS가 스타트업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던 배경에는 특히 ‘AWS Activate’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는 일정 조건을 갖춘 스타트업들에게 수천만 원 상당의 크레딧을 제공하고, 기술 컨설팅과 다양한 교육 자원까지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AWS는 컴퓨팅, 스토리지, 데이터베이스와 같은 기본적인 인프라뿐 아니라, 머신러닝 같은 고급 기술까지 제공하며 스타트업들이 최신 기술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스타트업들이 비즈니스를 빠르게 키워나갈 수 있게 도와준 거죠.
나아가 AWS는 각국의 벤처캐피털(VC), 액셀러레이터, 스타트업 지원 기관과도 꾸준히 협력하며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AWS Activate 스타트업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AWS Unicorn Day, Startup Week/Day 같은 다양한 행사와 개발자 커뮤니티까지 적극적으로 키워나가며 자연스럽게 스타트업과 함께 성장한 겁니다.

우아한형제들, 당근, 토스, 마켓컬리 등 누구나 아는 국내 주요 스타트업들도 AWS와 함께 성장했습니다. 특히 최근 AWS는 AI 관련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데 여념이 없어 보입니다.
반면, 국내 CSP들은 스타트업과 이런 ‘성장 동반자’ 관계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국내 CSP가 스타트업에 소극적이었던 3가지 이유
스타트업과 함께 성장한 AWS와 달리, 국내 CSP는 스타트업과의 협업이나 성장 지원에 소극적이었습니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전략적인 요인이 큽니다. 국내 CSP는 처음부터 공공, 금융 시장에 집중했습니다. 이 시장은 인증과 보안 요건이 까다로운 대신 단가가 높고 장기 계약이 가능해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면 스타트업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고객으로 성장을 지원해도 단기간 내에 수익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둘째, 국내의 규제 환경도 한몫했습니다. 한국은 망 분리, 데이터 로컬라이제이션 같은 규제가 많아 SaaS(Software as a Service) 기반 서비스 도입이 늦어졌습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클라우드를 중심으로 하는 스타트업 모델이 성장하기 쉽지 않았고, CSP들 역시 자연스럽게 이 시장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태계 문제도 있었습니다. 구축형 소프트웨어와 고객 맞춤형 개발, 즉 ‘커스터마이징’에 익숙한 당시 시장 특성상 표준화된 기능을 제공하는 SaaS의 성장은 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국내 SaaS 시장은 다변화가 부족하고, 스타트업 생태계 역시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작으며 투자도 적었습니다.
국내 CSP 입장에서는 AWS와 같은 글로벌 CSP가 밀고 들어와 생존 경쟁이 치열한 시점에, “공을 들이기엔 불확실한 시장”인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국내 CSP의 전략은 정말 ‘잘못’이었을까?
‘공공·금융 시장을 먼저 잡겠다’는 전략은 당시 국내 환경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애초부터 공공 주도로 클라우드 전환이 시작됐습니다. 특히 2023년 행정안전부가 ‘디지털플랫폼정부 실현계획’의 일환으로 공공 클라우드 전환을 추진하면서, 이 분야는 국내 CSP의 핵심적인 먹거리가 됐습니다. “2030년까지 행정·공공기관의 90%를 클라우드 네이티브(Cloud Native)로 전환한다”는 목표는 거의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안정적인 매출이 보장된다”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금융 시장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금융권 역시 공공과 마찬가지로 망 분리, 중요 데이터의 해외 반출 금지와 같은 까다로운 규제가 있습니다. 게다가 대규모 프로젝트와 장기 계약까지 가능하니, 후발주자인 국내 CSP 입장에서는 글로벌 CSP가 뚫기 어려운 이 시장에 우선 진입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실제로도 국내 CSP는 규제 준수 능력과 데이터 주권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차별점으로 이 시장을 먼저 확보했고,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클라우드 시장이 점점 SaaS 중심, AI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스타트업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어떤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느냐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입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버팀목으로 여겨졌던 공공과 금융 시장 역시 마냥 안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아직 열린 시장이긴 하지만, 정부와 공공기관의 클라우드 전환이 점점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고, 금융권에서도 인프라의 이전이 상당 부분 이미 진행된 상황입니다. 결국 국내 CSP도 지금과 같은 전략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들어 공공 시장의 SaaS 기반 도입이 활발해지는 것도 영향이 있습니다. CSAP 인증을 획득한 SaaS 기업 수가 매년 증가하는 것도 이러한 흐름을 보여줍니다. 즉, 국내 시장 구조 역시 점차 ‘다양성과 생태계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말입니다.
다가온 AI 시대 또한 클라우드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AWS, GCP 같은 글로벌 CSP는 이미 생성형 AI, 대규모 언어 모델(LLM), AI 인프라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국내 CSP들 역시 AI 특화 인프라와 자체 모델 구축, AI 기반 서비스 개발 등을 통해 대응하고 있습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국내 CSP가 그동안 스타트업 시장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초기 전략 관점에서 보면 타당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변화하는 시장 구조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또 다른 대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입니다. 스타트업과 같은 유연하고 확장 가능한 고객층과의 접점을 확대하는 것이 바로 그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국내 CSP는 과연 스타트업과 함께 갈 수 있을까
스타트업의 클라우드 전략은 이제 ‘하나만 잘 쓰는 것’에서 ‘여러 개를 목적에 맞게 조합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AWS가 여전히 중심이긴 하지만, 특정 워크로드나 요구사항에 따라 GCP, Azure, 그리고 국내 CSP까지 병행해 사용하는 ‘멀티 클라우드 전략’이 점점 확산되는 중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내 CSP의 역할도 다시 정의될 수 있습니다. 글로벌 CSP가 커버하기 어려운 규제 대응이나 보안, 빠른 기술 지원 같은 영역에서 국내 CSP는 멀티 클라우드 퍼즐의 중요한 조각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단순한 ‘보완재’에 그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국내 CSP가 멀티 클라우드 환경 속에서 꾸준한 존재감을 가지려면 두 가지 방향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1. ‘차별화’보다는 ‘호환성’
국내 스타트업의 대다수는 AWS를 선택하고 있다지만, 비즈니스와 서비스 운영 상황에 따라 국내 CSP와 글로벌 CSP를 적절히 조합한 멀티 클라우드를 이미 활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23년도 멀티 클라우드 사용 비중은 2022년과 비교해 약 81%* 가량 증가했습니다.
*2022, 2023년도 클라우드 산업 실태조사 조합
이처럼 멀티 클라우드 활용이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지금, 글로벌 클라우드 환경과의 연결성, API 호환성, 멀티 클라우드 관리 도구 제공 등을 통해 고객이 더 쉽게 사용을 병행하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물론 기술적 연동뿐 아니라 전략적 제휴를 포함한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다양한 방법들을 검토해야 하겠죠. 최근 KT클라우드의 모회사인 KT와 MS가 전략적으로 협업한 사례를 보면 결코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 스타트업 생태계 중심 접근
또한 스타트업과 함께하려면, 단순히 인프라 제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SaaS 기업과의 생태계 연결, 로컬 개발자 커뮤니티 지원, 맞춤형 기술 컨설팅 등 스타트업의 ‘성장 파트너’로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특히 스타트업에 '언젠가 메인이 될 수도 있는 후보군'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어야 장기적인 선택의 여지가 생길 겁니다.
결국 스타트업이 국내 CSP를 선택하는 이유는 단지 ‘국산이니까’가 아니라 ‘내 상황에서 더 맞는 선택이니까’가 되어야 합니다. 국내 CSP가 이런 조건을 만들어 줄 수 있어야 멀티 클라우드 시대에서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국내 CSP가 취해온 전략은 분명 나름의 의미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다릅니다.
꾸준히 커질 스타트업 시장에 국내 CSP는 전략적 파트너로 접근해야 합니다. 기술 호환성과 생태계 연계를 바탕으로 스타트업들이 국산 클라우드를 써야 하는 실질적인 이유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니 단순히 AWS와의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생각보다는 멀티 클라우드 시대에 필수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는 것이 국내 CSP의 새로운 과제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국내 CSP가 지금 다시 준비해야 할 것은, 바로 ‘앞으로의 전략을 위한 질문’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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