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키보드 추천 종결합니다

TL;DR
- 스플릿 키보드 최고
- 오래 쓸 수 있는 예쁜 키보드보다 오래 쓸 수 있는 육체(?)
썸네일 때문에 취향을 숨길 수가 없게 됐다
하지만 여러분도 이 글을 읽고 나면 스플릿 키보드가 쓰고 싶어질 겁니다.
평범하게 생긴 키보드에는 이제 질렸거나 혹은 손목이 아파 평범한 키보드를 쓰는데 어려움이 생긴 사람들에게 특히 효능이 좋은 글입니다.
오래 쓸 수 있는 예쁜 키보드 추천 좀 해주세요
저는 회사 책상에 종종 특이한 키보드들을 가져다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들 와서 “와, 키보드 한번 쳐 봐도 돼요?” 하며 눌러보고들 갑니다.
그렇게 키보드를 열심히 쳐보고 나서는 더 관심이 생긴 사람들은 종종 “오래 쓸 수 있는 예쁜 키보드 추천해 달라”는 말을 합니다.
그럴 때마다 키보드에 200만 원이 넘는 돈을 들였으며 다양한 여정을 거친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오래 쓸 수 있는 예쁜 키보드보다 오래 쓸 수 있는 육체가 더 좋지 않나요?”

다들 이런 표정으로 돌아가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는 ‘오래 쓸 수 있는 예쁜 키보드보다는 오래 쓸 수 있는 육체’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오래 쓸 수 있는 육체’를 위해서는 스플릿 키보드를 써야 합니다.
스플릿 키보드가 뭔데요?
스플릿 키보드는 사진처럼 왼손 오른손 따로 나눠진 키보드를 말합니다. 어고노믹(ergonomic), 그러니까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의 고민 끝에 탄생한 형태의 키보드죠.
일반 키보드는 손목을 책상에 붙이는 형태로 각도를 돌려야 합니다. 자세가 안 좋은 사람이라면 키보드를 쓰다 어깨가 안으로 굽고 거북목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손목에 이상이 생겨 책상과 수평 각도로 손목을 돌리기 힘들어지거나, 어깨가 너무 굽고 거북목이 심해져 일을 하기 힘든 지경이 되기 전에, 손목을 덜 돌리거나 돌리지 않은 상태로 키보드 양쪽을 멀찍이 떨어뜨려 배치해 버린 탓에 어깨도 펴고 목도 자연스럽게 펼 수 있도록 고안한 디자인의 결과물. 그것이 스플릿 키보드입니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키보드 브랜드와 제품명들이 쏟아질 겁니다. 뒷광고 느낌이 날 수도 있는데, 저도 돈 받고 광고 좀 해보고 싶습니다. 요즘IT 측에서도 광고가 아닌 점을 분명히 해달라고 해서 씁니다.
스플릿 키보드 좋아요
지금 저는 문랜더(Moonlander)라는 스플릿 키보드를 쓰고 있습니다. 한 5년 정도 썼는데 여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덤으로 옆에 놓인 버티컬 마우스까지 해서 저는 모든 장비를 어고노믹으로 쓰고 있는데요. 다른 사람에게 이 조합을 추천하면 다들 여러 이유를 들며 회피합니다.
- 키보드 나뉘어 있어 불편하지 않냐
- b(ㅠ) 키가 왼손에 있어 못 쓰겠다
- 버티컬 마우스는 적응이 안 되더라
- 비싸다
하나씩 봅시다.
스플릿 키보드 비싸지 않나?
모든 스플릿 키보드가 그렇게 비싸진 않습니다. 찾아보면 10만 원 대 저렴한(?) 제품들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기계식 키보드도 10만 원씩 하니까요.
꼭 제가 쓰는 문랜더 같은 고가의 모델이 아니더라도 적당한 가격의 마음에 드는 모델을 써보면 되겠습니다. 제가 살 땐 그렇게까지 고가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34만 원에 샀는데 지금은 50만 원이 넘을 뿐입니다. (아마 환율….)
아니면 이 유튜브 영상처럼 직접 만들어서 쓴다는 찐 공돌이 선택지도 있습니다.
병원에 바치는 친구비(?)는 안 비싼가?

일을 오래 한 분들 보면 종종 목, 허리, 어깨, 손목, 다 안 좋아져서 병원 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매월 병원에 내는 친구비(?)가 꽤나 비싼 걸로 아는데요. 그에 비하면 스플릿 키보드랑 버티컬 마우스 조합은 싼 거 아닌가 싶습니다. 목, 허리, 어깨, 손목 아파 고생하는 것보다 처음에 조금 불편해도 적응하는 게 낫지 않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스플릿 키보드랑 목, 허리, 어깨, 손목 건강이 정말 관련 있나요?

사진만 보아도 목, 허리, 어깨, 손목 다 편해 보이지 않습니까? 스플릿 키보드를 쓰면 이 모든 게 다 해결됩니다.
‘좋은 의자를 쓰면 해결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허먼 밀러라든가, 휴먼 스케일이라든가, 스틸케이스라든가요. 좋은 의자 쓰면 자세 교정도 되고 목과 허리가 나빠지는 걸 막을 수 있다고요. (200만 원 넘는 의자를 어떻게 덜컥 사나요….)
하지만요, 좋은 의자를 써도 손목이 망가지는 건 막을 수 없습니다. 어깨가 안으로 굽는 것도 막을 수 없고요. 영상 자막에도 쓰여 있지 않습니까?
“이젠 이렇게 어깨를 펴고 쓸 수 있어.”
분명 좋은 의자를 쓰면 전반적인 자세 교정에는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하지만 어깨를 펴고 손목의 무리를 줄이는 데는 스플릿 키보드가 필요합니다. 손목 내구도 떨어지는 속도가 줄어들 겁니다.
그래도 나는 일반 키보드가 너무 사고 싶어요. 키보드 여정 이야기 좀 해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분들을 위해 제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키보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집에서 쓰고 있는 스플릿 키보드 ‘문랜더’와 사무실용으로 쓰는 ‘해피해킹’입니다.
스플릿 키보드가 아닌 해피해킹은 왜 쓰세요?
저는 해피해킹을 꽤나 오래 썼습니다. 대략 7년째 쓰고 있기도 하고요. 문제가 생긴 걸 직접 분해해서 고쳐 쓸 만큼 애정으로 쓰는 키보드입니다.
왜 계속 스플릿 키보드 쓰라면서 정작 해피해킹도 쓸까요?
그건 제가 아주 강력한 손가락, 그러니까 ‘PO손가락WER’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PO손가락WER의 고민
저는 손가락이 너무나 강력합니다. 얼마나 강력하냐면, 처음 샀던 맥북을 3년째 쓸 때 키보드의 자주 쓰는 키‘들’이 박살 나(...) 수리를 받았을 정도죠. 그래서 저도 굉장히 여러 키보드를 써보았습니다. 그 끝에 집에서는 문랜더(갈축), 회사에선 해피해킹(무접점)을 쓰는 형태로 정착했습니다.
손가락 쎈 거랑 해피해킹이랑 무슨 상관이냐고요?
요즘은 키보드 스위치가 너무 많이 나와 중구난방인데요. 원조는 MX 체리 스위치이니 그걸 기준으로 설명하겠습니다.
키보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잠깐의 설명
기계식 키보드의 스위치는 각자 특징이 있습니다. 제가 느낀 것을 바탕으로 설명을 덧붙입니다.
- 청축: 누르면 옛날 타자기 같은 느낌의 클릭음이 납니다. 매우 시끄럽습니다. 그런만큼 치는 맛은 있습니다.
- 갈축: 청축이 특유의 클릭음으로 매우 시끄러웠다면 갈축은 그에 비해 정갈한 소리를 냅니다.
- 적축: 클릭음은 없지만, 키캡과 스위치가 닿는 소리는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조용하다고 알려져 있긴 한데, 손가락 힘이 센 사람이 치면 오히려 더 시끄럽습니다.
- 무접점: 나름 이쪽 업계에선 끝판왕 같은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스위치입니다. 키캡 아래 플라스틱으로 된 스위치가 아닌, 고무로 된 ‘러버돔’이라는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특유의 타이핑 소리가 있어 인기가 많습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 청축/갈축/적축과 호환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더 궁금한 부분은 문서를 참고하면 좋습니다.
청축이랑 갈축은 특유의 딸깍딸깍 소리가 나니 논외로 칩니다. 적축은 조용하다는 말이 있는데, 제가 쓰니 마치 사무실에 딱따구리가 있는 듯했습니다. 물론, 손 힘이 약한 사람이 쓰면 조용할 수도 있지만요, 제가 쓰니 키캡이 키보드 몸통에 닿을 때마다 플라스틱이 플라스틱을 때리는 소리가 온 사무실에 울려 퍼지더군요.
그렇게 조용함을 추구해야 하기에 쓴 건 바밀로에서 나온 텐키리스 저소음 적축 키보드 매화 에디션입니다. 저소음적축을 쓰면 고무나 거대한 지우개를 툭툭 건드리듯 먹먹한 소리가 납니다. 저처럼 손가락이 강력한 사람들도 사무실에서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었죠.

예쁘기도 하고 소음도 없으니 꽤 마음에 들어 오래 썼습니다. 그렇게 해피해킹을 사기 전까지는 사무실에서 썼고, 해피해킹을 사고 나서는 집에서 썼고, 문랜더를 사고 나서는…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도 무언가 비상용 느낌으로 갖고 있는데, 가끔 꺼내서 보면 예쁘고 좋습니다.
조금 저렴한 무접점 키보드를 구매했지만, 6개월 만에 버리고 난 다음에야 정착한 것이 바로 해피해킹입니다.

이 키보드는 토프레의 무접점 스위치인데, 개발자들이 많이 쓰는 레오폴드나 해피해킹에서 볼 수 있는 스위치입니다. 특징이라면 (비쌈) ‘러버돔’이라는 것이 눌렸다가 나오면서 나는 특유의 소리가 있다는 겁니다. 인터넷의 리뷰를 보면 ‘보글보글’ 소리가 난다고들 표현하던데,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토프레 스위치 특유의 소리가 있긴 합니다.
제게는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불편함(?)이 공존하는 키보드입니다. 키보드도 굉장히 작고 특이한 배열이라 특별한 걸 쓰고 있다는 기분도 들고요.
해피해킹을 처음 가진 당시는 키보드를 정말 많이 사던 와중입니다. 그래도 욕망은 끝이 없었기에 진짜 끝판왕 하나 사고 미련을 떨치자는 생각으로 샀습니다. 결과적으로 남들이 제 자리에 오면 키보드 보면서 “어… 이거 방향키 어딨어요?” 라고 묻고는 합니다. 가끔 그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해피해킹을 쓰는 모습을 보이면 ‘네 녀석, 이 「해피해킹」 의 사용법을 알고 있구나!’같은 묘한 동질감으로 친밀감 형성에 도움을 주는 좋은 키보드입니다.
키보드 많이 써봤으면 스위치마다 키압 어떤지 좀 알려주세요
“「키압」이란 게 뭐지?”
“단 100g의 차이도 없는데, 도대체 무슨 느낌의 차이가 있다는 거지? 크크큭.”

문랜더 키보드도 스위치 핫스왑 되는데요?
문랜더 키보드 핫스왑*도 되는데, 저소음 적축으로 바꿔 회사에서 쓰면 되지 않냐고요?
*핫스왑: 납땜 없이도 스위치 변경이 가능한 방식
저도 집에서 갈축으로 딸깍딸깍 소리 내면서 쓰고 싶어서 문랜더 키보드는 갈축으로 쓰고 있습니다. 나름 딸깍딸깍 소리가 기분도 좋고 중독성도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무실 자리에 해피해킹 무각 키보드를 가져다 두면 남들이 제 자리를 보면서 ‘오…. 좀 치는 사람인가?’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손목을 다쳐 보니 더 추천하고 싶은 스플릿 키보드
다시 돌아와 스플릿 키보드 이야기 좀 더 해보겠습니다. 키보드 추천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더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넘어져서 손목을 좀 다쳤는데요, 많이 다친 건 아니고 손목을 돌리면 통증이 있어 많이 못 돌리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고통을 주는 각도가 키보드를 쓰기 힘든, 딱 그 정도여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좀 해보았습니다. 그러다 편의점에서 산 커피 마시고 남은 패트병을 밑에 깔아 각도를 올렸습니다. 높이가 잘 맞아서 통증 없이 잘 쓰고 있습니다.

키보드가 반으로 갈라져 있으니 이런 것도 가능한 겁니다.
아니, 애초에 각도가 더 올라가는 모델을 쓰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그래서 찾아보니 아래 키보드를 쓰면 각도가 60도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다만 가격이 50만 원도 훌쩍 넘어서 지금의 저는 사볼 생각이 안 듭니다. 그래도 문랜더보단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것으로, 고가의 제품이라도 괜찮은 데다 스플릿 키보드에 관심이 있다면 제법 괜찮은 선택지 같습니다.
아예 책상이 필요 없는 키보드(?)도 있습니다
다쳤을 때 쓰는 키보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생각 나는 것이 있습니다.

이걸 키보드라 불러야 하나 싶긴 한데, 키보드도 되고 마우스도 되는 그런 거라고 합니다. 신기해서 기억에 남아 있는 제품입니다.
워낙 신기하니 언젠가 한 번 사서 써볼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두 손이 아니라 한 손에만 끼고 쓰는 거라 양손으로 쓰던 타자를 한 손으로만 치면 많이 느려질 것 같아서 좀 그렇습니다. 장난감으로 사보기엔 좀 비싸고, 실사용 목적으로 사기엔 좀 애매한, 기억 속 어딘가 ‘신기한 물건’ 정도로 담아둔 정도입니다.
만약 아예 손목이 너무 아파서 책상에 올릴 수 없다면, 손가락만 까딱까딱해서 쓸 수 있는 이런 제품을 써볼 생각도 해볼 수 있겠네요.
아니면 아예 VR을 끼고 누워서 한다든가?!

손목 말고 허리가 안 좋거나 해서 오래 앉아 있기 힘들다면 VR을 끼고 핸드트래킹을 써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전에 VR 회사에 다니면서 써봤는데요. 아직은 하드웨어 발전이 더 필요하긴 하지만, 분명 이게 미래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더란 말이죠? 아직은 불편한 점이 많아도 누워서 코딩이 가능한 정도까지는 왔습니다. 좀 불편하긴 하지만요. (생각해 보니까 아직은 많이요.)
쓰다 보니 Tap Strap과 VR 조합은 어떨지 궁금해지긴 하네요. 그렇다고 둘 다 덥썩 사서 해보기엔 가격이 조금 부담스럽긴 합니다. 마음속에만 담아두지 않을까 싶어요.
마치며

마지막으로 정리합니다.
“스플릿 키보드 최고! 최고!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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