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가 아닌 ‘에이전트’에 락인(Lock-In)되는 시대 지난 2월, 아마존이 생성형 AI를 적용한 대화형 음성 비서 알렉사+(Alexa plus)를 공개했습니다. 알렉사는 2014년 아마존이 출시한 인공지능 음성 비서로, 구글 어시스턴트, 애플의 시리와 함께 대표적인 음성 비서입니다. 약 1년 전쯤부터 ‘Remarkable Alexa’라는 이름으로 생성형 AI에 기반한 새로운 알렉사에 대한 여러 보도가 있었는데, 드디어 그 베일을 벗은 것입니다. 출시 11년 만의 대대적인 알렉사 개편 소식을 살펴보니 흥미로운 점이 꽤 많았습니다. 이대로 정식 출시까지 간다면 모두가 기다리는 ‘현실판 자비스’를 아마존이 가장 먼저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들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세 가지 이유를 소개합니다. <출처: Amazon> 첫 번째 이유: 알렉사+는 현실 세계에 그 접점이 있다생성형 AI는 그간 PC나 모바일에서만 생산성 도구로 쓰여왔습니다. 이처럼 AI가 PC나 모바일 속에 갇혀 있는 한, 일상을 돕는 비서보다는 생산성이 필요할 때만 열어보는 수단으로 쓰이는 것이 한계입니다. 그래서 AI가 정말로 아이언맨 속 자비스와 같은 비서가 되려면 사람에게 말을 걸듯 자연스러운 인터랙션이 필수적입니다. 이는 단순히 챗GPT가 4o 버전과 함께 고급 음성 대화를 선보인 것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물론 유료 버전을 구독하면 대화는 자연스러워지겠지만, 휴대폰을 꺼내, 잠금을 풀고, 챗GPT 앱을 열어, 음성 대화 버튼을 눌러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알렉사+는 아마존의 ‘에코(Echo)’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에코는 KT의 ‘기가지니’, SKT의 ‘누구’와 같은 스마트 스피커입니다. 구글의 ‘홈미니’를 4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저 역시, LLM을 적용한 스마트 스피커의 출시를 기다려 왔습니다. 그러다 알렉사+가 등장한 것입니다. 만약 스마트 스피커를 사용해 보았다면, 오늘의 날씨나 뉴스를 확인하는 사소한 일을 스마트폰을 켜서 직접 찾지 않고 말 한마디로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 분주한 아침에 옷을 입다가도 귀로 정보를 들을 수 있으니 시간도 효율적입니다. 이는 모두 디스플레이 속 가상 세계에 접속하지 않고도 바로 말을 걸 수 있는, 즉 현실 세계에 AI의 접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출처: Amazon> 이러한 음성 인터랙션이 주가 되면 디스플레이는 가상 세계로의 창구뿐만이 아닌 현실 세계의 일을 돕는 보조 도구가 됩니다. 아마존은 에코 라인업 가운데 디스플레이가 달린 ‘에코 쇼(Echo Show)’ 기기에 알렉사+를 우선 적용하고, 이후 일부 오래된 버전을 제외한 전체 에코 기기로 확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기기 성능 문제도 있겠지만, 생성형 AI의 도입으로 더욱 복잡한 일을 수행할 알렉사+ 활용을 사용자 목소리 하나에 의지하기에는 불확실성이 따르기 때문이라고 추측됩니다. 혹시라도 음성 인식을 잘못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생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디스플레이가 반드시 필요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에코 쇼를 중심으로 사용 경험을 쌓고 나면, 디스플레이가 없는 에코 닷(Echo Dot) 같은 기기에서는 일부 기능을 제한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이렇게 현실 세계에 접점을 가진 생성형 AI 알렉사+의 등장은 말 한마디로 부르는 자비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상상은 인간의 신체와 비슷한 요소까지 갖춘 AI 로봇을 집마다 보유한 가까운 미래까지 이어집니다. 두 번째 이유: 심지어 현실 세계의 일을 해낼 수도 있다아마존은 이커머스로 성장한 회사입니다. 아마존닷컴은 전 세계 수많은 고객을 보유하고 있고, 알렉사가 전혀 똑똑하지 않았을 때에도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기기의 주요 기능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아마존은 알렉사+ 출시와 함께 현실 세계 접점을 늘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기존에 지원하던 식료품 주문뿐만 아니라 식당 예약, 음식 배달 등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통합한 것입니다. 아직 미국에서만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는 했지만, 알렉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식료품 주문: Amazon Fresh와 Whole Foods Market을 지원합니다. 기존 알렉사에서도 쓰이던 기능으로, 알렉사+에서는 새로운 업체를 추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레스토랑 예약: OpenTable을 통한 예약을 지원합니다. 알렉사+에 “오늘 저녁 7시에 Corrzetti 4명 예약해 줘”라는 음성 명령만 내려도 식당을 예약할 수 있습니다. 음식 주문: UberEats와 GrubHub을 지원합니다. 만약 배는 고픈데 먹고 싶은 메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알렉사+에게 그날의 기분이나 느낌을 말하고 메뉴를 추천받을 수도 있습니다. 택시 예약: Uber를 예약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열지 않고도 목소리로 예약하면, 대기 시간과 탑승 옵션, 요금 정보 등을 에코 쇼 디스플레이에 보여주며, 쉽게 예약하도록 도와줍니다. 티켓 예약: Ticketmaster와 Event Tickets Center에서 티켓을 찾아줍니다. 스포츠 경기나 콘서트 등 원하는 행사의 티켓을 찾아 보고 등록해 두었다가, 티켓 가격이 낮아지거나 구매가 열렸을 때 모바일 앱으로 알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집수리 예약: 홈케어 전문 플랫폼 Thumbtack에서 전문가 견적을 살펴보고 비교해 예약할 수 있습니다. 집과 가전제품을 수리하거나 집 청소를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미용 예약: Vagaro에서 헤어, 스파, 피트니스 등을 예약할 수 있습니다. 여행 계획: Fodor’s와 Trip advisor를 통해 여행 계획을 짜고 관광 명소나 식당을 추천받을 수 있습니다. 쇼핑: Amazon.com과의 연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알렉사+가 나 대신 제품의 가격을 확인하고 할인 행사가 생겼을 때 알려주거나, 어떤 선물을 사면 좋을지 대화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쿠팡, 캐치테이블, 배달의 민족, 인터파크 티켓, 미소, 야놀자 등을 스마트 스피커와 연계한 것입니다. 목소리만으로 이 앱들에서 예약과 주문을 할 수 있는 것이죠. 간단한 아이디어임에도 그동안 많이 쓰이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언어 모델의 한계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구매 행동을 대신 수행하는 것에 대한 리스크가 더 큽니다. 목소리 하나에만 의지할 경우, 모바일처럼 눈으로 결제 내용을 확인하고 생체 인증을 거치는 것보다 실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마존은 이런 리스크를 감당하더라도 대담하게 추진했습니다. 그동안 목소리 기반 구매 경험을 오래 쌓아오며, 그 효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이뤄졌다고 봅니다. 기존 알렉사에는 목소리 구매를 위한 두 가지 안전 장치가 있습니다. Voice Code와 Voice ID입니다. 알렉사로 구매를 하려면 알렉사 앱의 설정 메뉴에서 “Voice Purchase” 기능을 활성화하고, 4자리 수로 이루어진 Voice Code를 설정해야 합니다. 만약 이때 “Only recognized voices”를 선택하면, 등록된 가족의 목소리로 주문을 했을 때에만 구매할 수 있게 설정됩니다. 아마 알렉사+ 역시 같은 방식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에코 쇼 기기에서만 먼저 제공되는 만큼, 디스플레이를 거쳐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을 택할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이커머스가 성장하며 O2O(Online to Offline) 개념이 널리 쓰인 것처럼, AI 역시 A2O(AI to Offline)와 같은 개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으로 오프라인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려면 결국 중요한 것은 오프라인으로 연결되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마존의 대담한 결정은 ‘차세대’ AI 에이전트의 핵심을 관통한 것이지 않나 싶습니다. 세 번째 이유: 아마존 프라임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고 있다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비즈니스 모델이 지속 가능하지 않거나, 애써 만든 비즈니스 모델을 사용자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서비스는 사라지고 맙니다. 알렉사+는 월 19.99달러의 구독 모델을 가지고 있지만, 아마존 프라임 사용자에게는 무료로 제공됩니다. 아마존 프라임의 월 구독료가 14.99달러임을 고려하면, 알렉사+만을 구독하는 사용자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존 프라임의 이용자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입니다. 즉, 이미 사용자와 비즈니스 모델을 확보한 채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다만 달리 말하면 아마존 프라임으로 알렉사+가 어느 정도 시장에 안착한 다음에는, 구독료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구독료가 비싸지고도 사용자들이 서비스를 그대로 유지할까요? 몇 달 전, 국내에서 화제를 부른 쿠팡의 사례를 생각하면 그 답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쿠팡은 쿠팡 와우 멤버십의 가격을 4,990원에서 7,890원으로, 무려 58%나 인상했습니다.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지만, 기존 혜택뿐만 아니라 쿠팡이츠 무료 배달로 혜택을 확대하고, 쿠팡플레이의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하며 이탈을 막았습니다. 결국 이는 구독료 인상에도 오히려 이용자 수를 늘린 성공 사례로 남았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쿠팡은 아마존을 벤치마킹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략 역시 아마존에서 꾸준히 해왔던 방식입니다. 현재 아마존 프라임 구독료인 14.99달러도 지난 2022년 12.99달러에서 15.4%가량 인상한 결과입니다. <출처: Amazon> 생성형 AI 서비스를 유료로 구독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일부 테키(Techy)한 유저를 중심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심지어 최근 AI 모델 경쟁이 심화하며, 모델을 무료로 제공한 다음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해 모델 성능을 높이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AI 기업 xAI는 Grok3 무료 공개를 선언했고, 오픈AI 역시 GPT-5 버전부터 무료 이용자가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할 것을 암시했습니다. 결국 AI 시장에서 역시 모델의 B2C 기반 유료 구독은 힘을 잃고 사용자는 AI 모델 기반 ‘서비스’에 돈을 지불할 것입니다. 마치 기업이 클라우드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때, 기업은 클라우드 플랫폼에 서버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자는 서비스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미 AI 기반 영어 학습 앱처럼 AI를 활용한 여러 서비스에서 비슷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알렉사+ 또한 에이전트로서는 처음으로 이와 같은 사례를 만들 것입니다. 마치며: 기기가 아닌 에이전트에 락인(Lock-in)되는 시대애플은 그동안 OS 사용성을 중심으로 기기 생태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iOS와 Mac OS는 뛰어난 호환성으로 아이폰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맥을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이처럼 애플은 안드로이드나 윈도우 OS와는 호환을 지원하지 않는 폐쇄 정책으로 사람들을 락인시켰습니다. AI 시대에는 기기가 아닌 ‘에이전트’에 락인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이전트는 내가 구매한 물건, 예약한 레스토랑, 여행 계획 등 우리 가족과 나의 사소한 정보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며 일상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이전트에서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가까운 예시로, 애써 만들어 놓은 유튜브 알고리즘 체계가 어느 순간 달라져 아무런 관심도 없는 영상을 추천해 준다면 어떨까요? 다시 취향을 맞출 때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것입니다. 저도 한때는 애플 뮤직이나 스포티파이로 음악 앱을 바꿔보고 싶다가도, 오래 사용해 온 유튜브 뮤직만큼 취향에 맞는 음악을 추천받지 못해 결국 다시 돌아오곤 했습니다. PC는 맥을, 휴대폰은 갤럭시를, TV는 샤오미를 사용하더라도 사람들은 같은 계정으로 유튜브를 봅니다. 이처럼 AI 시대에는 어떤 기기를 사용하든 같은 에이전트를 사용하며, 경험을 연결할 것입니다. 에이전트에의 락인 효과가 더욱 강력한 이유는 무엇보다 ‘경험을 연결하는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에코 쇼 기기에서 알렉사+에게 저녁 식사 예약을 요청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알렉사+는 연동된 캘린더 앱에서 그 시간에 다른 일정이 없는지 확인하고, 저장된 계정으로 OpenTable에 접속한 다음, 식당 예약이 비어 있는지 파악해, 미리 등록해 둔 카드로 예약금을 결제할 것입니다. 예약이 끝나면 캘린더와 알림으로 일정을 알려주겠죠. 이는 에이전트가 존재한 어느 기기에서든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에이전트’, 즉 ‘대리인’으로서 하나의 기기나 플랫폼에 얽매인 경험이 아닌, 의도에 따라 필요한 기기와 플랫폼을 넘나들며 하나의 목적을 달성할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죠. 이러한 ‘에이전트 기반 락인’은 알렉사+처럼 플랫폼 경험에 강한 회사들이 선보일 에이전트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물론 지금은 애플의 애플 인텔리전스(Apple Intelligence)나 삼성이 구글과 함께 제공하는 제미나이(Gemini)처럼 기기 회사가 가진 에이전트가 강력해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알렉사+가 등장했을 때, 얼마나 유려한 통합 경험을 제공할지는 아직 미지수기도 하죠. 그래도 아마존이 그들이 가진 강점을 십분 활용한 새로운 에이전트를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반가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연 알렉사+는 현실 세계에서 나를 돕는 진정한 ‘자비스’가 될 수 있을까요? ©️요즘IT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