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직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개발자의 ‘역량’과 이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흔히 채용 과정은 채용 공고 → 지원 → 면접의 흐름을 따르지만, 이 과정만으로 회사가 원하는 역량을 명확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채용 공고에는 다양한 우대사항이 나열되어 있지만, 실제 채용에서 그 요소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죠. 기업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단순히 “좋은 개발자”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하며 프로젝트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를 확인하려면 지원자의 문제 해결 방식, 협업 태도, 그리고 실질적인 엔지니어링 역량을 면밀히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채용 방식만으로는 이를 효과적으로 검증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기업이 원하는 ‘함께 일할 수 있는 개발자’의 조건을 정의하고, 기존의 채용 방식이 갖는 한계를 분석하며, 더 나은 채용 문화를 구축하는 방안을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출처: DALL·E> 개발자의 역할이란?그렇다면 기업이 바라는 “함께 일할 수 있는 개발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줄 알아야 할까요? 결국 개발자의 역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문제를 정의하고 분할하는 능력개발자의 실제 업무는 모호하게 전달된 요구사항이나 문제를 ‘해결 가능한 형태’로 구체화하는 일이 많습니다. 따라서 문제를 잘게 나누고 우선순위를 정해, 어떤 부분부터 접근할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이미 있는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시중에 공개된 오픈소스 라이브러리, 스택오버플로우(Stack Overflow) 등에서 비슷한 문제를 이미 해결한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굳이 바퀴를 재발명하지 않고, 남이 만든 ‘잘 굴러가는 바퀴’를 적절히 찾아 조합해 문제를 해결하면 업무 효율이 크게 올라갑니다. 3) 프로토타이핑을 통해 문제를 구체화하는 능력문제 자체가 모호하거나, 요구사항이 자주 변하는 상황이라면 작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보며 문제를 파악해 가는 편이 낫습니다. 이렇게 하면 “정확히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기술 스택 선택이나 후속 개발 방향도 명확해집니다. 4) 적정 수준의 엔지니어링 역량문제 해결 방식이 꼭 복잡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간단한 도구와 방법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입니다. 제한된 시간과 인력 안에서, 너무 많은 일을 벌이지 않고 적절한 수준에서 완성하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즉, 팀과 프로젝트의 상황에 맞춰 필요한 것만 도입하고,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량 평가로는 부족한 이유많은 기업에서 채용 공고에 우대사항을 길게 적어두고, 코딩테스트나 과제 전형 등의 정량 평가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만으로는 앞서 말한 ‘문제 정의 능력’, ‘프로토타이핑 역량’, ‘협업 태도’ 등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1) 우대사항의 실효성정작 회사가 강조하는 우대사항은 꼭 업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특정 기술 스택 경험이나, 자격증이 업무 범위와 크게 맞지 않는 경우, 면접 과정에서 활용도가 떨어지죠. 위와 같이 특정 기술 경험이나 학력은 실제 개발 업무와 무관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여러 공고를 참고해 작성한 예시입니다. 유사한 공고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출처: 작가> 2) 정량 평가의 한계코딩테스트는 실제 개발자가 다루는 문제와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차라리 과제가 더 나을 때가 있지만, 제한된 시간 내에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해 가는 과정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채 단순히 미니 프로젝트를 얼마나 빨리 완성하는지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지원자가 실제로 애매한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협업을 어떤 방식으로 이끌며, 어떤 태도로 해결책을 찾는지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질문-답변 식 면접 역시 준비된 ‘모범 답변’ 위주로 이루어져 지원자의 진짜 역량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 결과, 채용 과정이 불필요하게 길어지고, 실제 역량을 정확히 평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일부 기업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더 효과적인 평가 방법이 요구됩니다. 절차당 평균 2주가 걸린다고 계산하면 총 14주 이상 소요되며, 이는 구직자에게 큰 부담이 됩니다. 여러 공고를 참고해 재작성한 채용 전형입니다. 최근에는 이처럼 긴 전형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출처: 작가> 하지만 몇몇 기업들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명확한 역할 정의와 필요 역량 기준을 중심으로 실질적인 채용 공고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개발자의 역할, 역량 그리고 문화가 잘 보이도록 구성된 채용 페이지입니다. <출처: 보이저엑스 개발자 채용 페이지> 면접은 Q&A가 아니라 대화다면접의 본질은 ‘함께 일할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질의응답(Q&A) 방식이 아니라, 지원자의 문제 해결 방식, 협업 태도, 그리고 엔지니어링 역량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대화가 필요합니다. 일부 기업들은 최근 커피챗(Coffee Chat)과 같은 방식을 도입하여 편안한 분위기에서 지원자와 소통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보다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자 합니다. 면접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정형화된 질문을 나열하는 대신 지원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대화를 유도해야 합니다. <출처: 두잇 채용 사이트> <출처: 화이트큐브 채용 사이트> 무엇보다 면접은 면접관과 지원자 간의 상호적인 대화여야 합니다. 면접관은 단순히 질문을 던지는 역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원자의 답변을 바탕으로 심층적인 논의를 이끌어내고, 자신의 의견도 솔직하게 공유해야 합니다. 일부 면접관들은 편향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의견 표명을 자제하거나, 지원자의 답변에 관한 생각을 밝히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지원자의 사고방식과 문제 해결 방식을 제대로 이해할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면접관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교환할 때 지원자의 논리적 사고 과정과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한 실질적인 피드백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지원자가 어떻게 사고하는지를 더욱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맥락이 모호한(high-context) 질문을 피해야 합니다. 특정한 환경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질문은 지원자의 잠재력을 가리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대신 다양한 경험을 존중하는 열린 대화를 지향하며, 지원자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도록 맥락과 흐름을 고려한 질문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채용 문화 만들기많은 기업에서 정량적인 평가와 시스템을 도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채용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잘못된 채용으로 인해 내부에서 문책당하지 않기 위한 면책적인 절차가 강화되면서, 결국 채용 담당자가 신뢰할 수 있는 평가를 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됩니다. 또한 국내 근로기준법상 사실상 해고가 불가능한 구조로 인해, 잘못된 채용이 발생했을 때의 비용적 손실이 크기 때문이죠. 그러나 조직이 신뢰할 수 있는 인재를 선별할 수 있다는 내부 확신이 없다면, 결국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기란 더욱 어려워집니다. 채용의 본질은 조직의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는 적합한 인재를 찾는 것이지만, 시스템과 절차가 형식적으로 흐르면 핵심 요소를 놓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신뢰할 수 있는 채용 문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1) 팀의 판단을 신뢰하는 문화 형성많은 기업이 채용 실패를 줄이기 위해 정량적인 평가 시스템을 강화하지만, 이는 채용의 본질을 간과한 접근 방식일 수 있습니다. 어떤 시스템을 도입하더라도 채용 실패를 완전히 방지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함께 일할 팀의 안목과 판단을 신뢰하는 문화입니다. 즉, 팀원들이 직접 채용 과정에 참여하고, 지원자의 문제 해결 과정과 협업 태도를 평가하며, 조직 내에서 필요한 역량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채용에서 실패는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정량적 평가만으로 실패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류가 될 수 있죠. 중요한 것은 실패를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배우고 점진적으로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조직 문화를 구축하는 겁니다. 조직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실패를 관리하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2) 면접관 교육과 피드백 체계 구축채용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면접관의 역량입니다. 단순히 기술적인 질문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자의 문제 해결 능력과 협업 태도를 평가할 수 있도록 면접을 유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업 내부적으로 면접관 교육을 진행하고, 면접 후 피드백을 주고받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면접이 단순한 평가 과정이 아니라, 조직의 성장 과정 중 하나로 인식될 때 채용의 질이 향상될 수 있습니다. 3) 조직 내부의 신뢰 구조 강화채용은 단순히 ‘한 명의 인력을 선발하는 과정’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문화와 연결된 의사결정 과정인데요. 따라서 조직이 면접관과 채용 담당자의 판단을 신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모든 과정이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채용 의사결정을 투명하게 공유하여 평가 기준과 의사결정 과정을 명확히 한다.채용 이후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지속적으로 프로세스를 개선한다.팀 단위에서 채용 프로세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여 조직의 필요에 맞는 인재를 선별한다. 이러한 과정이 정착되면 조직이 원하는 인재상의 기준이 명확해지고, 이는 곧 조직 문화가 자리 잡았음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좋은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조직과 목표를 공유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적합한 인재를 선별하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채용은 시스템보다 문화가 우선이다채용은 단순한 절차를 넘어, 함께 일할 사람을 찾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많은 기업이 채용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시스템과 정량 평가에 의존하려고 합니다. 물론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우리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할 수 있는가’입니다. 정량적인 평가와 시스템만으로 좋은 사람을 선별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틀을 깨야 합니다. 채용을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뽑는 일이 귀찮거나,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람을 뽑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비용이 많이 들고, 실수하면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은 인형을 찍어내듯 정형화된 것이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모호한 문제를 정의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결국 채용의 핵심은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므로, 채용 방식도 이에 맞춰 바뀌어야 합니다. 면접은 일방적인 평가가 아니라 대화가 되어야 하며, 면접관과 지원자가 서로의 방식과 철학을 확인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그리고 조직은 정량적 평가에 의존하기보다, 팀의 판단을 신뢰하고, 채용 문화를 형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코더, 즉 인형 눈을 꿰는 단순 노동자가 아닌 함께 일할 개발자를 찾는 방법입니다. ©️요즘IT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