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IT
위시켓
최근 검색어
전체 삭제
최근 검색어가 없습니다.

CPO는 우리 제품의 미래를 점지하고 모든 의사결정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회원가입을 하면 원하는 문장을
저장할 수 있어요!

다음

회원가입을 하면
성장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스크랩할 수 있어요!

확인

기획

CPO에게 신탁을 의뢰하지 마세요

년차,
어떤 스킬
,
어떤 직무
독자들이 봤을까요?
어떤 독자들이 봤는지 궁금하다면?
로그인

CPO는 우리 제품의 미래를 점지하고 모든 의사결정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서쪽으로 가라, 아시타카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 시작 부분 <출처: 지브리스튜디오 공개 이미지>

 

지브리스튜디오의 고전 명작 원령 공주(모노노케 히메)의 첫 장면입니다.

 

주인공 ‘아시타카’는 북동쪽 변방에 전란을 피해(정확하게는 야마토 정권에게 패해) 숨어 살고 있는 에비시 일족의 미래 지도자감입니다. 그는 재앙신으로부터 약혼녀 ‘카야’를 지키려다가 오른팔에 저주를 받게 됩니다. 에비시 일족의 장로들은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부족의 최고령자이자 무녀인 ‘히이’에게 묻죠. 히이는 재앙신의 저주에 대해, 그리고 수백 년 전의 전란에 대해 얘기하며, 이 모든 일은 서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알려 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서쪽으로 가라, 아시타카.”

 

왜 에비시 일족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무녀인 히이에게 묻게 되었을까요? 그녀가 일족 중에서 가장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노인의 지위는 그러하였습니다. 당시에는 기대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 탓에 살아남은 노인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또, 충분한 기록으로 지식이 전승되지 못하던 그 시대에 노인이 축적한 경험과 지혜는 일족의 존망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산이자 지적 보고이며, 나아가 의사결정 권한을 주기도 합니다.

 

 

왜 CPO를 채용하나요? 

어쩌면 스타트업의 CPO는 에비시 부족의 히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CPO를 채용하는 장면을 듣기도 하고, 또 제가 직접 경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언제나 의문스러웠던 점이 있습니다. CPO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포지션을 정의했는지, 그 CPO 포지션의 JD(Job Description)는 누가, 어떤 이유로 작성했는지 하는 것들입니다.

 

제가 CPO 포지션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글의 전편에 해당하는 ‘CPO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를 읽어보기를 권해 드립니다. 그중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CPO는 제품에 대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흔히들 CTO를 언급하면서 이 회사에서 가장 기술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고 정의하기도 하는데, 경력과 연차가 쌓이다 보니 실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일 개연성은 매우 높지만, 그 정의가 필요충분조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CTO를 단순히 개발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CTO가 가져야 할 다른 덕목들, 특히 개발 문화를 형성하는 사람으로서 전체 제품 개발의 아키텍처를 책임지고 (직접이든 간접이든) 개발에 필요한 리소스를 관리(조달/육성 등)할 수 있어야 하는 것 등은 충분히 포함하지 못하게 된다.

 

CPO 또한 마찬가지로 Product Guy로서 가장 뛰어난 사람일 개연성이 높지만 그것은 필요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CPO는 Product Owner 또는 Product Manager들이 제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책임지는 역할이어야 하고, 프로세스로 형상화된 제품 문화를 여러 경험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맞춰가는 사람이기도 해야 한다.

 

채용 페이지에 공개된 어느 기업의 CPO JD <출처: 작가 캡처>

 

CPO와 도메인 전문성

제가 경험한 몇몇 장면에서 CPO를 채용하고자 하는 회사의 HR이나 채용 팀은 특정 도메인이나 특정 분야의 경력을 원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일면 이해가 되는 측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핀테크에 대한 경험을 일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핀테크 관련 제품에 대해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종류의 제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부담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제품을 개발하고 산출하는 제품 관리(Product Management) 과정은 매우 기계적이어야 하며, 그 과정을 시스템화(Systemization)할 수 있어야 한다 믿고, 그래서 인더스트리나 도메인을 불문하고 제품을 내는 과정이 유사하다면 별다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부 특수한 분야를 제외하고, 다수의 고객을 사용자로 설정하는 제품은 이를 개발하고 산출하는 과정이 유별나기가 더 어렵습니다.

 

A/B 테스트와 CPO의 상관관계 

SaaS를 오래 경험한 CPO를 채용하고 싶다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이 경우에는 좀 특이하게 제품을 개발하고 산출하는 측면보다는 그로스 마케팅(Growth marketing)을 이끌어줄 분을 찾았습니다.

 

이 지점은 꽤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PO를 포지셔닝할 때는 사실상 제품 개발(Product Development)보다는 A/B 테스트를 통한 지표 개선을 본업으로 상정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습니다. 보통은 이커머스 분야에서 많이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고, 에어비앤비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가 “PM(Product Manager) 역할을 PMM(Product Marketing Manager)으로 통합하겠다”고 발언한 배경이라 짐작하기도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로스 마케팅을 이끌 사람은 CMO라고 생각합니다만, PO가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우두머리인 CPO도 같다고 주장할 수 있을 듯하네요.

 

Config 2023, 브라이언 체스키의 발언 <출처: Twitter @kvngao, Figma Config 2023>

 

CPO의 혜안이란 무엇인가 

또 다른 특징이라면 소속 PO나 PM들이 제품을 고민할 때 경험을 바탕으로 더 좋은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란다는 점입니다. 앞선 특징과 비슷한 원인과 결과를 가지고 있겠지만, 오랜 경험으로 여러 어려움을 경험해 봤을 테니 PO나 PM이 어떤 문제를 들고 왔을 때 정답을 알려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제품의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은 그 제품을 가장 오래 보고 있는 PM이 가장 높은 확률로 좋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단순히 CPO가 그들보다 경험이 많다고 해서 더 좋은 결정을 내릴 거라는 기대는 헛된 망상에 불과합니다. 제품의 정책이란 아주 많은 맥락 범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PM, TL 들이야말로 그 맥락을 함께 이해하고 공유하며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범위를 벗어나, 특히 경영진이라고 부를 만한 위치로 올라오면, 그들 경영진은 모든 맥락을 제거당한 채로 그 시점의 TPO(Time, Place, Occasion)만을 기반으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이럴 때 벌어지는 일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PM은 그 혹은 그들에게 (이미 본인과 개발팀은 충분히 이해하고 체득하고 있는)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와 정보들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온다고 해도, 순간적인 결정이라는 시간 범위에서 그것들을 파악하며 이해도를 동일하게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결정을 내리기에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할 것이며, 이런 말과 함께 결정은 지연됩니다.

 

“나는 이 결정을 내리기 위한 Pros & Cons 정보를 충분히 받지 못했다”

 

<출처: 픽사베이>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리는 이유

한편 프로젝트 진행/관리를 위해 결정을 내릴 것을 요구해도 개발 일정의 지연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보고를 올린 사람의 이해에 맞게 결정이 내려지기 때문입니다. PO는 (무의식이든 의식이든) 본인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자료를 준비하고, 그 자료를 본 경영진은 그 방향으로 결정을 내려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의사결정권자는 반드시 신중하게 시간을 소모합니다. 그 의사결정이 나중에 책임질 일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그때가 오면 “나는 매우 신중하게 결정했다”는 변명이 필요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저는 그 변명보다 제품 개발 일정이 더 중요하다고 믿지만, 그렇지 않은 경영진을 본 적이 아직은 없습니다.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립니다. 왜 그럴까요? 비가 내릴 때까지 지내기 때문이지요. 아무 때나 신전에 가서 기우제를 지내자고 하면, 그들은 어떻게 대답할까요?

 

“아직은 때가 아니다. 하늘이 허락하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

 

아무 때나 기우제를 시작하면 비가 내리기 전에 내가 먼저 죽거나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신탁이란 그래서 아무렇게나 결정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제품에서의 의사결정이란 일 년에 한 번 지내는 기우제가 아닙니다. 시시각각으로 결정해야 할 정책들이 배출되고 있고, 그 분야에 아주 경험이 많은 CPO라고 해도 그것을 아무 때나 결정하고 시작할 수 없습니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어떻게든 신탁을 의뢰하면, 이제 어느 누구도 신탁이 내리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섣불리 움직였다가 하늘의 노여움이라도 사면 모든 책임을 져야 할 테니까요.

 

제갈량이 남동풍을 위한 제사를 지냅니다. 남동풍이 불지 않았다면 제갈량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출처: KBS 유튜브 캡처>

 

 

CPO는 제품 문화를 책임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제품 문화를 책임진다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요?

 

앞서 언급한 ‘신탁 의사결정’ 케이스를 놓고 얘기하자면, 담당 PO 또는 PM이 가진 맥락을 기반으로 TL, 스쿼드 멤버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물론 고민 중이라면 같이 얘기를 나누며 조언을 전할 수도 있고, 과거에 이런저런 경험을 전할 수도 있겠지만, “A안과 B안과 C안의 Pros & Cons를 종합해서 보고하면 “내”가 최선의 결정을 내려주겠다”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음 사례를 한번 살펴봅시다. 제품 개발을 진행하다 몇 번의 스프린트 만에 꽤 큰 규모로 데모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요구 사항을 발의한 부서인 마케팅/세일즈와 향후 운영을 담당할 운영팀이 함께 참석하고 있습니다. 운영팀 막내가 손을 들고 “이 지점은 이해가 잘 안되고, 다른 방법을 제안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발언합니다. 그리고 그 발언은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애자일 제품 개발 문화를 가진 조직이라면, 이러한 일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주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자리에서 담당 PO는 왜 기존의 결정을 했는지 설명하며 같이 얘기를 나눌 수 있고, 만약 새로운 방법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제품의 변경을 개발팀과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제품이 빠르게 내부 고객에게 먼저 선보여진 만큼, 고객 피드백을 바탕으로 우리는 제품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CPO가 할 일은 “우리 회사의 애자일 제품 개발 문화가 잘 돌아가고 있다”라고 기뻐하는 일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실에서, 이러한 변경은 개발 리소스를 낭비한 큰 문제가 됩니다. “왜 사전에 미리 이런 문제를 발견하고 검토하지 못했는지” 질책에 PO가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분명히 별거 아닌 수정일 텐데, 개발팀은 바닥부터 뭔가를 고쳐야 할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사실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니까, 일단 어렵다고 말부터 던져놔야 합니다. 안 그러면 일정 지연의 책임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이제 CPO가 나설 차례입니다. ‘해당 단계에서 충분한 보고를 받지 못했고, 일정에 쫓겨서 결정을 하다 보니 디테일한 부분을 챙기지 못했다. 앞으로 개발 리소스 관리를 위해서라도 꼼꼼하게 잘 체크하겠다’ 정도의 발언이 이어지겠죠. 이 CPO는 앞으로 더 많은 정보와 함께 의사 결정 신탁을 의뢰받을 것입니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운영팀에게 사전 사인오프를 받아오라는 제품 개발 단계가 생성될지도 모릅니다. 사인오프는 요청하는 사람이나 요청받고 사인하는 사람이나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무도 책임지지도 않으며 시간만 지연시킬 단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인오프로 인해서 생겨나는 제품 지연은 무엇보다 제품의 산출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는 저에게는 최악의 사안입니다.

 

 

결정공포심, 제품 개발은 돌아오지 못하는 길이 아니다 

막상 담당자로서 어떤 결정을 했을 때, ‘내가 책임질 수 있는가’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은 있게 마련입니다. 누군가는 이를 ‘결정공포심’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작가가 운영하는 PM 커뮤니티 ‘퍼즐러:제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 정기 클럽하우스 채팅방에서 발췌 <출처: 작가>

 

이 결정공포심이야말로 제품 문화로 해결해야 할, 그러니까 CPO가 이사회로부터 부여받은 권한과 본인의 경험, 역량으로 해결해야 할 성질의 것입니다. CPO는 담당 PM에게 “결정은 지금 바로, 스스로 해도 된다”라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 결정이 어떤 문제를 일으켜도 조직이 감당할 것이지만, 그보다 ‘그 결정은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도 알려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애자일한 조직이므로, 그렇게 발견한 문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다음 이터레이션에서 반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품 개발은 한번 벗어나면 돌아오지 못하는 갈림길이 아닙니다. 격자형 도시의 직교 도로처럼, 방향만 잃지 않으면 우회전 좌회전을 번갈아 하며 다시 길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나뭇가지처럼 한번 갈라지면 다시 건너올 수 없는 것은 제품 개발이 아니라 경영 행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왼쪽) 격자형 도시 구조의 표본,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 (오른쪽) 두 가지 갈림길 <출처: 워싱턴포스트, 작가 제작>

 

대부분 우리가 생각하는 어떠한 결정들은, 사실 담당 PM이 보고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수준의 것들입니다. 데모에서 보여줄 때조차 아무도 의구심을 갖지 않을 만한 것들이지만, 이것을 A안 B안으로 나누어 보고하는 순간 그 문제는 신탁을 받아야 할 만큼 큰 사건이 되어 버립니다.

 

제가 삼성 페이를 개발하던 그 시기에 저에게도 여러 결정이 필요한 정책 사항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며 개발팀이 제게 임원의 결정을 받아올 것을 요구한 적도 있었지만, 저는 거절했습니다. 정작 데모에서 ‘그 지점에 대해 왜 사전 승인을 받지 않았느냐’고 지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그것이 결정의 지점이 될 뻔했다는 사실도 모를 것입니다. 데모 제품은 여러 시나리오를 충족시키며 각각의 유즈케이스를 실패하지 않고 통과하였으니까요.

 

혹여 그러한 변경의 순간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확실한 것은 “임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시간보다 우선 만들고, 피드백을 확인하고 변경하는 것이 훨씬 더 짧고, 싸고, 가볍다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임원의 신탁을 받는 것보다 더 시장과 고객에게 좋은 결정일 확률도 높을 것입니다.

 

결정공포심을 맞닥뜨리고, A안과 B안과 C안 중에 무엇을 결정해야 할지 고민하는 PM이라면, 본인이 무엇을 결정해도 그것 때문에 제품이 망하는 일은 없다는 점을 상기하기 바랍니다. 잘 돌아가는 애자일 제품 개발 문화 안에서는 설혹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데모에서 발견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고객 배포 후에 발견하더라도 우리는 이를 개선해 낼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또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문제인지 아닌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일이 90% 이상일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신탁을 의뢰하거나, 그로 인해 제품의 산출이 지연되는 것은 문제입니다. 제품 산출이 미뤄진다는 것은 투자금을 낭비한다는 뜻입니다. 스타트업 씬에서 “원래 제품 개발 일정은 지연되는 것이다”라고 여기는 대표나 투자자를 만날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단호하게 말하듯, 제품 개발 일정의 지연은 경영상 선택으로 인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CPO에게 신탁을 의뢰하지 마세요

주니어 PM들의 성장을 위한 세션을 하다 “회사가 PRD를 쓰지 않고, 개발팀/디자인팀은 화면정의서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회사의 급여를 받는 사람으로서 화면정의서를 작성해야 하겠지요.

 

다만 “구성원으로서, 또 개인으로서 성장을 도모하고 싶다면, 그보다 앞서거나 병행해서라도 PRD를 간략하게 작성해 공유하고 설명하는 시도를 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회사를 바꿀 가능성이 1도 없다 해도 개인의 성장은 기대해 볼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이것은 이미 굳어진 그 회사의 제품 문화/개발 프로세스의 하나이기 때문에, 개인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신탁을 의뢰하지 말라는 것 또한 제품 문화의 하나로, “나” 혼자 이렇게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본인이 제품의 하나하나를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 CPO도 있을 테니까요. (저는 보통 이런 경우를 ‘대리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직장인이라면, 상사의 기호를 맞추고 요구를 맞추어야 할 테지만 (수평적인 조직이라는 말의 허구를 또 한 번 느끼고 갑니다), 개인으로서는 조금 더 도전해 볼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말이지요.

 

결국 이 모든 문제를 순리에 맞게 정리하려면 회사의 경영진, 회사의 보드에서 CPO에게 어떤 역할을 맡기고자 하는지 잘 정의해야 합니다. 물론 경영진이 CPO에게 ‘지표 높일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을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제가 정의한 것과는 사뭇 다른 포지션이 형성되겠죠. 마찬가지로 경영진이 CPO 포지션에 ‘제품이 대박 날 수 있도록 항상 옳은 결정을 내려줄 것을 요구한다’면 그도 신탁을 수행하는 신전 지킴이 범위를 벗어나긴 어려울 것입니다.

 

CPO라는 포지션을 샌드위치처럼 가운데 세워 두고, 경영진과 실무진의 기대가 잘 일치될 수 있도록, 그렇게 CPO가 제품 문화를 책임지고 형성해 나갈 포지션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하며 이번 글을 마칩니다.

 

2024년 마지막 발행글입니다. 이 글을 보는 모든 PM들, 그리고 CPO 분들, 해피 뉴 이어!

 

요즘IT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좋아요

댓글

공유

공유

댓글 0
제품문화에 천착하는 PM
33
명 알림 받는 중

작가 홈

제품문화에 천착하는 PM
33
명 알림 받는 중
콴입니다. PRD를 중심으로 제품의 형상화에 집중하고 있고 이를 통해 제품개발체계를 정립하고 시스템화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품문화, 제품개발프로세스, 그리고 PM으로서의 성장과 학습에 대한 고민이 있으시다면 커피챗을 신청해주세요. (https://puddingcamp.com/coffeechat)

삼성페이와 야놀자 등 여러회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회사에 제품개발프로세스가 부재하고 많은 부분을 개인역량에 의존한다는 점에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개인기로 돌파하는 제품개발이 아니라 프로세스를 통해 빌드업하여 제품을 산출하는 프로세스를 제품문화로 안착시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Agile Product Development Proces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PMF파트너스 / PMF인베스트먼트의 이름으로 스타트업에 투자를 해오고 있고, Product-Market Fit을 찾는 과정을 찾고 투자하고 조력하고 있습니다. 결국 제품 중심의 투자를 목표로 합니다.

좋아요

댓글

스크랩

공유

공유

요즘IT가 PICK한 뉴스레터를 매주 목요일에 만나보세요

요즘IT가 PICK한 뉴스레터를
매주 목요일에 만나보세요

뉴스레터를 구독하려면 동의가 필요합니다.
https://auth.wishket.com/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