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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어의 어원이나 유래를 찾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업무상 글을 쓸 일이 많다 보니, 이왕 쓸 말이면 그 뿌리 정도는 이해하고 사용하면 좋겠다는 직업적 의무감 같은 것이 발동하는 탓도 있죠. 그러나 무엇보다 단어에 담긴 이야기나 그 출발점을 이해하면, 마치 한 인물의 탄생 비화를 알게 된 것 같은 후광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이유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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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브랜드 슬로건, 어떻게 정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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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어의 어원이나 유래를 찾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업무상 글을 쓸 일이 많다 보니, 이왕 쓸 말이면 그 뿌리 정도는 이해하고 사용하면 좋겠다는 직업적 의무감 같은 것이 발동하는 탓도 있죠. 그러나 무엇보다 단어에 담긴 이야기나 그 출발점을 이해하면, 마치 한 인물의 탄생 비화를 알게 된 것 같은 후광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이유일 겁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번 글의 주제인 ‘슬로건’이라는 단어가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아시나요? 슬로건이라는 말은 유럽의 켈트족이 주로 사용하던 언어인 게일어에서 유래된 단어인데요. 과거 스코틀랜드 지역의 군대가 전쟁에서 자신들의 힘을 드러내기 위해 외치던 ‘Sluagh-ghairm(슬로어-가함)’이라는 말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편인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공통된 목적의식을 갖게 하는 역할이 이 슬로건이란 단어 속에 담겨있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슬로건’을 우리 브랜드에 적용할 땐 어떤 과정들이 필요한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출처: unsplash>
 

슬로건과 캐치프레이즈, 어떻게 다를까?

​​많은 사람들이 슬로건과 캐치프레이즈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입니다. 그리고 서로를 구분하는 데 있어서는 브랜딩과 마케팅의 관점을 이해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죠.

 

​먼저 슬로건은 주로 브랜드 자체에 중심을 두고 있는 문구로서, 브랜드 아이덴티티 혹은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담아 해당 브랜드가 어떤 목표를 갖는지 지향점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브랜드 전략이 바뀌지 않는 한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하는 문구라고도 볼 수 있죠. 

 

​반면 캐치프레이즈는 말 그대로 광고나 상품 속에서 소비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문구로 분류됩니다. 특정 상품을 구매하도록 만들거나, 새로 나온 신상품을 인지시키거나 다른 경쟁 제품과 비교해 차별화되는 지점을 알리는 등 직접적인 행동에 관여하는 문장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만큼 시대적 분위기, 시장 환경 같은 외부 요소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게 특징이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광고 카피들도 크게 보면, 이 캐치프레이즈의 한 분류로 구분됩니다. 그러니 캐치프레이즈가 마케팅의 영역이라면 슬로건은 브랜딩의 영역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슬로건은 꼭 만들어야 하나요? 

​​이쯤에서 이런 궁금증이 생기실 수도 있을 겁니다. “요즘은 슬로건 없는 브랜드도 많던데 꼭 슬로건이 필요할까요?”, “이미 보유한 브랜딩 요소들을 잘 활용해서 표현하기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요?”라고 말이죠. 물론 이 역시 잘못된 지적은 아니지만,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브랜드 슬로건을 만들고 활용하는 것은 브랜드 자산을 만드는 데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특히 브랜딩은 효과적인 마케팅을 펼치기 위한 중요한 토대가 되기 때문에, 이 슬로건을 잘 만들면 다양한 광고 카피를 포함한 캐치프레이즈의 방향 잡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또한 아직 신생 브랜드라 브랜드 자산이 많이 쌓여있지 않은 경우, 한 줄의 강력한 브랜드 슬로건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줄 때도 있습니다. 브랜드 이름과 로고만 노출할 때보다 그 브랜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소비자들이 브랜드의 첫인상과 마주할 때도 더욱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슬로건이 좋은 슬로건인가요? 

​우리 주변에도 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온 훌륭한 브랜드 슬로건들이 많습니다. 박카스의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푼다’, 하이마트의 ‘전자제품 살 땐, 하이마트로 가요’, tvN의 ‘즐거움엔 끝이 없다’, 다이소의 ‘국민 가게, 다이소’ 등 듣기만 해도 유행어처럼 연상되는 슬로건도 있고, 애플의 ‘Think Different’, 맥도날드의 ‘I'm Lovin' It’, 네스프레소의 ‘What else?’, 나이키의 ‘Just Do It’처럼 우리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각인된 슬로건도 있죠.

 

​<출처: unsplash>

 

좀 엉뚱한 질문이지만 이 슬로건들은 왜 유독 특별한 걸까요? 그저 멋진 문장을 잘 뽑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몇십 년 동안 꾸준히 하나의 메시지만을 전달했기 때문일까요? 사실 생명력이 길고 전달력까지 훌륭한 이른바 ‘좋은 슬로건’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공통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1.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집약한 슬로건 

​2. 브랜드의 화법과 언어를 잘 담아낸 슬로건

​3. 브랜드의 Fanship을 자극하는 슬로건 

​언뜻 보면 쉽고 뻔한 이야기 같지만, 이 세 가지 속성을 담아 적절한 브랜드 슬로건을 뽑아내기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특히 앞서 말한 것처럼 슬로건은 브랜드 전략이 크게 바뀌거나, 브랜드가 리뉴얼 되지 않는 이상 오랜 시간 변하지 않듯 한 번 만들 때 그 책임감이 막중하고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죠.

 

​좋은 슬로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압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슬로건 한 줄만 들어도 ‘아, 저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은 이런 거구나!’하고 선명하게 연상할 수 있는 문장이 좋은 슬로건이죠. 그래서 슬로건은 광고 카피를 만들 때만큼 차별화를 위해 지나치게 몰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보다 우리 스스로에게 집중해서 진정으로 우리 브랜드를 잘 나타낼 한 줄 문장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죠. 

​두 번째는 우리 브랜드의 화법과 언어를 잘 반영한 슬로건입니다. 아무리 좋은 의미를 가진 슬로건이라고 해도, 우리 브랜드의 화법과 언어가 제대로 묻어나지 않는다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100% 담아낼 수 없습니다. 자칫 브랜드의 역할에 제약을 주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죠. 당연히 슬로건의 임팩트와 전달력 역시 약해지게 되고요. 따라서 좋은 슬로건이 떠올랐다면 이를 그대로 활용하기에 앞서 우리 브랜드의 언어와 화법으로 재정비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단어들을 사용하고 어떤 방식으로 말을 거는지, 어느 지점에서 가장 활발히 커뮤니케이션하고, 이때 사용하는 브랜드 페르소나는 어떤 것인지 총체적인 점검이 이뤄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Fanship을 자극하는 슬로건입니다. 브랜드 슬로건이 큰 가치와 목표를 제시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자칫 그 범위를 너무 넓혀버리면 그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는 공허한 메시지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동차 브랜드의 슬로건에서 이런 사례를 자주 발견하는데요. Premium, Luxury, Class, Prestige 등 너무 흔하고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단어로 슬로건을 정하다 보니, 서로 슬로건을 바꿔 사용한다고 해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무미건조한 워딩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브랜드 슬로건은 우리 브랜드를 사랑해 주는 팬들, 앞으로도 우리 브랜드를 계속 애정할 수 있는 잠재 고객에게 타깃을 맞추고, 그들에게 던질 메시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브랜딩은 누군가에게 구애하는 것에 앞서서 나 스스로가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사랑해 줄 그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다음, 그들이 반응할 만한 이야기로 슬로건을 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좋은 슬로건을 만들기 위한 TIPS

​사실 좋은 슬로건을 만드는 데 있어서 특별한 왕도가 있는 건 아닙니다. 공식처럼 딱딱 들어맞는 슬로건 제조법이 존재할 리도 만무하고요. 하지만 좋은 슬로건을 뽑아내기 위한 유리한 조건들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옵션들을 고민해 본다면 우리 브랜드를 나타내 줄 베스트 슬로건에 점점 가까워질 수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는 제가 그동안 활용하고 익혀온 (그래서 지금도 활발히 사용 중인) 좋은 슬로건을 만드는 과정을 한 번 소개해 볼까 합니다.

1. 우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를 먼저 떠올려보자

흔히 아이데이션의 방식을 구분할 때 크게 두 가지의 분류를 활용합니다. 하나는 떠오르는 좋은 생각들을 차례대로 나열해 보는 ‘열거’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연관성이 낮아 보이는 것부터 제외하는 ‘소거’의 방식입니다. 보통 크리에이티브 한 영역의 아이디어를 다룰 때는 열거의 방식이 주를 이룰 거라 생각하지만, 때로는 소거의 방식이 훨씬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슬로건을 정할 때 역시 욕심이 나는 워딩들을 무작정 바구니에 담아보는 대신, 우리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단어나 개념들을 하나씩 지워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때는 특정한 기준을 가지고 소거법을 진행해 보면 좋은데요, 바로 ‘우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인가’라는 물음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는 개념들만 마지막까지 남겨두는 겁니다. 

 

다시 말해 우리 사용자나 소비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한 다음 → 우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고 → (해결이 가능하다면) 어떤 가치나 방법으로 그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지를 하나의 문장으로 나열해 보는 거죠. 임팩트 있는 슬로건을 만들기에 앞서 무엇을 핵심 메시지로 규정할지 밑그림을 그리고, 뼈대를 세우는 작업에 해당하는 게 바로 이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슬로건 작성에 접근하면, 적어도 공허한 이야기를 던질 확률이 현저히 낮아지죠.

 

이 접근이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면, 기존 브랜드들의 슬로건을 가지고 역으로 질문을 유추하는 방식으로 훈련해 봐도 좋습니다. 즉, 본인이 마음에 드는 슬로건 하나를 고른 다음 ‘이 브랜드는 무엇을 문제로 규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외치는지, 혹은 어떤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말하는지’를 판단해 보는 겁니다. 

 

요가복 시장의 샤넬이라고 불리는 ‘룰루레몬(lululemon)’은 ‘세상을 평범함에서 구출해 위대함으로 이끈다’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포츠 브랜드가 갖기에는 꽤 큰 담론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 룰루레몬의 제품과 그들이 펼치는 활동을 보면 그 말이 일견 이해되기도 합니다. 

 

룰루레몬은 천편일률적이던 요가복 시장에서 탁월한 디자인과 뛰어난 기능성으로 단번에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더불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즐거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구축, 운영하는데도 큰 열정을 쏟아붓고 있죠. 그러니 아마도 룰루레몬은 ‘진부하고 뻔한 요가 의류 시장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었을 테고, ‘어떤 가치와 방법으로 그 문제를 풀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평범한 기능과 디자인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서로를 연결해 준다’라는 답을 내린 건지도 모르죠. 이렇듯 특정한 슬로건 하나를 두고 소거법의 질문을 유추하다 보면, 어느덧 좋은 슬로건을 만드는 나만의 기초체력이 조금씩 길러진다는 걸 몸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겁니다.

 

​<출처: unsplash>

 

2. 브랜드의 핵심 가치보다 더 큰 가치를 이야기하지 말자

앞서 설명한 1번의 연장선에서 고민해 볼 수 있는 ​포인트입니다. 가끔 브랜드 슬로건을 만들 때 갑자기 우리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뛰어넘는 더 큰 단위의 단어를 가져오거나, 전혀 다른 분야의 상관없는 워딩을 끌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애써 만들어놓은 브랜드 체계가 흔들릴 될 뿐 아니라,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한 개인적인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그날은 회사에서 큰 컨퍼런스를 앞두고 대외에 알릴 공식 슬로건을 정하기 위해 열띤 회의를 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속 의견이 모아지지 않고, 점점 이야기는 산으로 가기 시작하더군요. 막판에는 우리가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건지, 세상을 구하는 어벤져스를 모으는 건지 모를 만큼 휘황찬란한 단어들이 난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붕어빵 트럭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문득 겨울이 가까워오긴 했나 보다라고 생각이 들 즈음, 그 트럭 옆에 붙은 현수막 한 장이 제 눈을 사로잡았죠.

 

‘판매는 3개월만 하지만 연구는 1년 내내 합니다. -황금잉어빵 연구소-’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은 다음, 이튿날 회의 시작 전에 모두에게 그 문구를 보여줬습니다. 다들 실소를 터뜨리면서도 이내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더라고요. 세상에 수많은 붕어빵 가게가 있겠지만 스스로를 ‘연구소’라고 부르는 가게는 저 트럭 한 대일 테고, ‘붕어빵 파시는 분들은 다른 계절에는 어떤 일을 하시나?’ 하며 모두가 궁금해하던 포인트에 진심과 위트를 섞어 대답한 곳 역시 저곳 하나뿐일 테니까요.

 

만약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붕어빵이라고 했거나, 전국에서 찾아오는 붕어빵 맛집이라고 했으면 오히려 임팩트가 떨어질 법한 지점을 스스로의 이야기로 채운 것이 새삼 대단해 보였습니다. 덕분에 저희도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우리가 진짜 잘할 수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 진심으로 잘하고 싶은 것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 슬로건 아이디어를 뽑아낸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브랜드 슬로건을 만들 때는 그 단어가 포용할 수 있는 가치를 가늠해 보며, 각 단어의 크기를 분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온전하게 배달할 수 있고, 이후 마케팅에서 사용할 카피나 캐치프레이즈까지 확장되었을 때 더 촘촘하고 명확한 단어들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3. 슬로건 적합도를 평가해 보자

​자기 계발 강사로 유명한 김창옥 교수님이 과거 강연을 통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좌우명을 가지고 사느냐보다 얼마나 자주 그 좌우명을 떠올리는지가 훨씬 중요합니다. 그냥 지갑 속에 부적처럼 넣고 다니다가 ‘맞다, 이런 게 있었지’하는 건 좌우명이라고 할 수 없어요. 정말 내 인생에 영향을 주는 문장이라면, 틈날 때마다 마주하면서 ‘나 정말 내가 말한 대로 잘 살고 있나? 이 좌우명대로 살기 위해서는 뭘 더 해봐야 할까?’를 고민해야 해요.”

 

저는 이 말이 슬로건의 필요성을 고스란히 압축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좌우명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자리에 슬로건이라는 말을 대체해도 전혀 어색할 게 없기 때문이죠. 사실 슬로건처럼 브랜드의 상위 개념에 존재하는 문구들은 그 중요성만큼이나 자칫하면 유명무실해질 수 있는 위험을 늘 내포하고 있습니다. 마치 지갑 속 깊숙한 곳에 넣어둔 좌우명 쪽지처럼 현실에선 까맣게 잊은 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따라서 슬로건을 만들고 공유하는 것만큼이나, 우리 브랜드에서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이 우리 슬로건과 어느 정도의 적합도를 가지는지 수시로 체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연말이 되어서야 새해에 세운 목표들을 다시 꺼내보며 미련과 후회의 시간들을 보내는 것보다, 매월, 매 분기, 하다못해 상반기/하반기 한 번씩이라도 새해 목표대로 잘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거죠. 

 

그러므로 브랜드 관리에 책임과 영향력이 있는 분들이라면,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수시로 슬로건의 내용을 상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정 시기마다 ‘이 결과물이 우리가 정한 가치와 목표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죠. 혹여 시간과 조건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면, 아예 최초 기획 단계에서 우리가 하려는 일이 슬로건에 담긴 가치와 어느 정도의 연결성을 갖는지, 미리 체크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입니다. 핵심은 슬로건이 홀로 유명무실하게 방치되는 것을 막고, 우리 스스로 정한 좌우명이 우리의 결과물과 일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것이니까요. 어떤 형태로든 슬로건에 지속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슬로건이 제대로 먹히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슬픈 얘기지만 정말 열심히 공들여서 만들고 테스트까지 해본 슬로건이 시장에서 큰 반응이 없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할까요? 막막하고 답답한 심정이겠지만, 사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비교적 정확하게 답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슬로건 자체가 이슈를 유발한 게 아니라 그저 시장의 반응이 미지근한 상황이라면, 이때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지켜보는 것이 훨씬 현명한 판단입니다. 슬로건은 태생적으로 반응이 명확히, 즉각적으로 수집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고객들 사이에서도 인지되고 각인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앞서 예시로 살펴본 좋은 슬로건들만 봐도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몇십 년째 사용 중인 슬로건들이 많은데요. 이 슬로건들이 처음부터 큰 반응을 불러온 건 당연히 아닙니다. 오히려 그 슬로건을 바탕으로 꾸준히 브랜딩하고, 커뮤니케이션 한 결과로 지금의 위치까지 온 것이죠. 

그러니 슬로건에 대한 반응이 밋밋하다고 해서 금방 새로운 슬로건으로 교체하거나, 조금 더 자극적인 워딩으로 바꿔본다거나 하는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해 두면 좋겠습니다. 슬로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목표 의식을 만들어줌과 ​동시에, 우리와 소비자를 한데 묶어주는 훌륭한 도구니까요. 좋은 슬로건을 고르는 것만큼이나 그 슬로건을 좋게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무척 중요하다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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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브랜드 경험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브랜딩과 공간 기획, 브랜드 경험을 바탕으로 한 Writing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잘 브랜딩 된 모든
것들을 애정합니다.
<기획자의 독서>와 <브랜드로부터 배웁니다> 두 권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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