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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러분이 하는 일 중 가장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하나 꼽으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물론 힘들고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여러분이 애정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이 하나쯤 있을 겁니다. 그 일과 마주할 땐 잠깐이나마 숨 쉴 곳을 찾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누가 더 잘하라고 다그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열정을 불태워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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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좋은 네이밍을 위한 체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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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러분이 하는 일 중 가장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하나 꼽으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물론 힘들고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여러분이 애정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이 하나쯤 있을 겁니다. 그 일과 마주할 땐 잠깐이나마 숨 쉴 곳을 찾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누가 더 잘하라고 다그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열정을 불태워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죠.

 

저에겐 ‘네이밍’이라는 영역이 그렇습니다. 사실 네이밍은 브랜딩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기피하는 업무이기도 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름을 정한다는 건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수없이 불릴 특정 단어를 만드는 일임과 동시에,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핵심 이미지와 속성을 전달하는 일입니다.

 

게다가 네이밍은 한 번 결정하면 다시 변경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그나마 심벌이나 로고는 리브랜딩 과정에서 디자인이라도 변경할 수 있지만, 제품이나 서비스, 브랜드의 이름은 치명적인 단점으로 더 이상 그 이름이 기능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면, 바꾸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거든요. 그래서 네이밍은 부담과 책임이 막중한 영역입니다. 꽤 오래 브랜딩을 해온 분들도 네이밍 업무는 맡고 싶지 않다며 손사래 치는 경우도 봤고요. 이번 글에서는 좋은 네이밍이란 무엇인지, 체크리스트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브랜딩을 한다면 한 번쯤은 네이밍에 욕심을 내보자 

모두가 어려움을 토로함에도 불구하고 제가 네이밍 업무를 좋아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상위 기획의 끝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실제 결과물로 이어지는 상세 기획의 원형이 되는 개념을 ‘상위 기획’이라고 합니다. 좋은 컨셉과 체계를 만들고, 사업을 꾸려가야 하는 방향에 대한 본질적인 이유를 찾는 작업이죠. 다들 네이밍 업무라고 하면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센스로 멋진 이름 후보군을 착착 뽑아낼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기획의 가장 원초적인 부분까지 파고 내려가 고민을 거듭하는 과정 끝에 탄생합니다. 그러니 네이밍 업무를 한 번 진행하면, 기획의 전반을 모두 머릿속에 집어넣게 되는 이점이 생기죠.

 

두 번째는 영향력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만든 이름을 많은 사람들이 불러준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저만해도 제가 네이밍 한 어느 건물 이름이 택시 호출 서비스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는 장소 10위 안에 선정된 적이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장소의 이름을 직접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쁘더군요. 어렵고 부담되는 작업인 건 맞지만, 사람들의 인식과 경험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기회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마지막으로 네이밍 업무를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브랜드 언어를 다루는 역량도 빠르게 키울 수 있습니다. 특히 브랜드 언어의 가장 큰 역할은 마케팅이나 디자인 활동을 위한 뼈대와 근간을 만드는 것인데요. 그중에서도 네이밍은 그 자체로 전면에서 브랜드의 운명을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브랜딩 효과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죠. 만약 브랜딩과 관련된 일을 한다면, 한 번쯤은 네이밍 업무에 욕심을 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출처: unsplash>

 

좋은 네이밍이란 대체 뭘까?

네이밍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했지만, 사실 네이밍에서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갑자기 맥 빠지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아쉽지만, 이건 솔직하게 짚고 가야 하는 문제니까요. 세계를 호령하는 거대한 글로벌 브랜드의 이름이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지 알고 나면, 조금은 납득할 수 있습니다.

 

창업자가 우연한 기회에 “어? 이거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붙였다는 이름부터, 특허청에 등록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와 급하게 아무 이름이나 제출했다는 썰, 하물며 그 과정에서 특허청 담당자가 철자를 잘못 기재하는 바람에 애초에 의도했던 이름 대신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감동적인 사례보다는 어이없는 사례가 더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네이밍의 법칙을 규정할 수는 없을지언정, 좋은 네이밍에 대한 기준 정도만 가지고 있어도 훨씬 더 성공적인 이름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정답이 되는 이름을 찾을 수는 없더라도,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놓치지 않도록 체크리스트를 챙기는 것이죠. 

 

 

좋은 네이밍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 

1) 쓰임새를 위한 경우의 수를 파악해 본다

네이밍 작업을 할 때는 무작정 좋은 이름을 떠올리려 하기보다는 우선 우리 브랜드에 있어 이름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클지를 파악해 보는 게 유리합니다. 브랜드는 저마다 강조하는 요소와 접점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죠. 어떤 브랜드는 시각적인 비주얼을 매우 강하게 전달하고, 또 어떤 브랜드는 물성이 있는 요소들을 조합해 공감각적인 매개체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 브랜드의 이름이 얼마나 자주 노출되고 실제로 얼마나 불릴지, 브랜드 이름이 단독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을지 브랜드 하위의 제품 이름들과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을지 등을 예측해 보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자칫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지어줄 때를 떠올려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겁니다. 지금은 너무 예쁘게 들리지만 어른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잘 어울릴 이름일지, 성과 함께 사용될 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영문으로 표기했을 때는 오해의 소지가 없을지, 혹시라도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할만한 이름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과 같은 거죠.

 

그러니 좋은 네이밍에 도달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은 누가 뭐래도 ‘이름의 쓰임새’를 깊이 고민해 보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

 

2) 아무리 멋진 이름이라도 사용성이 낮거나 잘못 불릴 가능성이 있는 이름은 최대한 피한다

혹시 ‘데드 네임(Dead Name)’이라는 용어를 들어보셨나요? 네이밍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네이미스트나 브랜드 컨설턴트 사이에선 자주 통용되는 단어인데요. 소비자들이 규정되어 있는 이름 대신 다른 이름으로 그 대상을 부르거나, 사용성이 현저히 떨어져 실제로는 아무도 부르지 않는 이름을 뜻합니다. 이른바 생명력을 잃은 이름, 데드 네임이라고 하죠.

 

네이밍에서 이 데드 네임을 사실상 최악의 이름 짓기로 평가합니다. 만든 사람의 의도와 전혀 다른 의도로 사용되거나, 심지어 존재의 유무조차 모른 채 잊혀지는 이름에 해당하니 최악으로 분류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남산타워’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남산타워의 실제 명칭은 ‘남산서울타워’입니다. 심지어 이 이름도 타워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YTN이 2015년에 새로 부여한 이름이고, 이전에는 ‘서울타워’와 ‘YTN 서울타워’를 혼용해서 사용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N서울타워’라는 명칭으로 부르지만, 이는 CJ푸드빌에서 타워의 일부 층을 임대해 운영 중인 복합문화공간의 이름에 불과하죠. 정리해 보면 남산타워는 그 어떤 때도 남산타워인 적이 없었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남산타워로만 기억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나름의 이름을 붙여보려고 했던 모든 시도는 애석하게도 데드 네임의 길로 빠질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처럼 데드 네임은 실질적인 사용성보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때 자주 발생합니다. 저도 네이밍 업무를 하다 보면 ‘적어도 이 개념은 이름에 꼭 들어가야 합니다’라든가, ‘A만 표기하면 다른 쪽에서 원성이 나올 수도 있어, B도 함께 표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와 같은 의뢰를 자주 받습니다. 이러한 이해관계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으로 쓸쓸히 사라질 바에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게 더욱 현명한 선택입니다. 

 

따라서 네이밍을 선택하는 최종 단계에서는 한 명의 결정권자가 전권을 가지고 의사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좋은 이름을 만드는 과정은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고 협의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명확한 대안을 설정하고 옳은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것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3) 큰 의미가 아니더라도 그 이름이 선택된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어야 한다

이쯤 되면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분도 있을 겁니다. ‘원래 크게 성공하고 나면 하찮은 이름도 멋지게 보이는 거고, 망하고 나면 멋진 이름도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거지. 네이밍에 전략이란 게 어디 있나’라면서 말이죠.

 

물론 틀린 말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도 원래는 나이키라는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알려졌고, 빌 게이츠 역시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이름이 싫어서 늘 경쟁사인 IBM처럼 알파벳 3개를 사용하는 이름으로 바꾸고 싶어 했으니까요. 사업의 명운에 따라서 이름이 갖는 존재감과 인식 역시 달라지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다만 어떤 이름을 선택하더라도, 나름의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네이밍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어마어마한 결과 차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시계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럭셔리 시계의 대명사인 ‘롤렉스(ROLEX)’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그러나 사실 ‘’롤렉스’라는 이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롤렉스의 창업자인 ‘한스 빌스도르프’가 고급스러우면서도 기억하기 쉽고, 동시에 발음하기 쉬운 단어를 고민하던 중에 롤렉스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된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빌스도르프가 네이밍을 한 과정입니다. 설사 롤렉스라는 이름 자체에는 아무 의미가 없더라도, 우리 브랜드 이름이 어떤 느낌과 기능을 갖춰야 한다는 것에 대한 목표는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브랜드 네이밍을 할 때는 ‘어떤 이름이 좋을까?’라는 막연한 생각보다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좋습니다. 네이밍을 기술의 영역이 아닌 전략의 영역으로 봐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죠.

 

<출처: pixabay>

 

작은 훈련이 쌓여 좋은 이름을 만든다 

자, 그럼 좋은 브랜드 네이밍을 위해서 실제로 우리가 해볼 수 있는 노력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지금껏 제가 네이밍 업무를 하며 작게나마 연습해 온 과정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중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다면 따라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1) 공간의 이름을 다시 지어보자 

제가 즐겨하는 방법 중 하나는 공간의 이름을 다시 지어보는 겁니다. 좋은 공간을 방문했을 때, 혹시라도 그 공간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제 나름대로 새로운 이름을 붙여보는 것이죠. 저는 이걸 리네이밍(re-naming)이라고 표현하는데요. 공간의 성격과 네이밍이 잘 붙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새 이름을 다시 떠올려보는 거죠.

 

예를 들어, 저는 재작년에 팀 워크숍을 위해 마포구의 어느 공용 작업 공간을 방문했는데요. 공간 자체는 꽤 매력적이었지만, 저를 포함한 팀원 모두가 공간 이름을 제대로 외우지 못할 만큼 길고 헷갈리는 이름을 지은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워크숍이 끝난 뒤에 제 나름대로 그 공간을 리네이밍하기 시작했죠. 우선 저는 그 장소가 디자이너 친화적인 공간이자, 작은 아이디어를 즉석에서 시제품으로 제작해 볼 수 있도록 다양한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공간임에도 용도와 컨셉에 따라 구역을 분리해, 작업의 역할이 구분되게 한 것도 매력적이라 느꼈죠. 

 

고민 끝에 저는 디자인(design)으로 문제를 해결한다(sovle)는 뜻을 담아, ‘DESOLVE(디졸브)’라는 이름을 새로 붙여봤습니다. 같은 발음의 영어 단어 Dissolve에 ‘녹이다’, ‘용해하다’라는 뜻도 있으니, 새로운 아이디어를 녹여내어 또 다른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의 특성을 이중적으로 풀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 이름을 함께 방문했던 팀원들도 만장일치로 호응해 줬고, (운영자분께는 죄송하지만...) 저희는 지금도 디졸브로 그 공간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네이밍이라는 영역이 너무 막막하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이름을 다르게 바꿔보는 리네이밍을 통해 간편하고도 실용적인 훈련을 해 볼 수 있습니다.

 

2) 카테고리부터 네이밍 해보자 

저는 네이밍에 대한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면, 반대로 이미지의 힘을 빌려 볼 때가 있습니다. 핀터레스트나 비핸스 같은 디자인 포트폴리오 서비스에 접속해, 이런저런 작업물들을 구경하며 영감이 될 만한 이미지들을 차곡차곡 저장해 보는 거죠. 어느 정도 자료를 모았다 싶으면 그 자료들을 어떤 카테고리로 묶어서 표기해 둘지를 고민하는데요.

 

저는 이때가 네이밍의 단초를 얻을 수 있는 좋은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머릿속으로만 떠다니던 단어나 개념들이 특정한 시각 자료를 만나, 구체적인 워딩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폴더나 카테고리의 이름을 나름대로 네이밍해 놓고, 수시로 들어가서 다시 이미지들을 체크합니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 그와 비슷한 이름을 만났을 때 사람들이 떠올리게 될 이미지가 어떨지 예측해 볼 수도 있고, 반대로 그 이미지들과 내가 정한 이름이 잘 연결될 수 있을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unsplash>

 

그러니 따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네이밍하기보다는, 자료조사 과정의 곳곳에서 좋은 네이밍을 위한 단서를 마련해 둔다는 관점으로 접근해 보세요. 의외로 문제가 쉽게 풀리기도 합니다. 실제로 토요타에서는 자동차 광고를 찍기 위해 알맞은 장소를 고르는 작업을 하던 도중, 도시별로 분류된 사진의 이미지와 특정 차종이 잘 매치된다고 생각해, 도시 이름을 딴 자동차 시리즈를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시에나, 벤자 등의 차종도 모두 도시에서 영감을 받은 이름이죠. 여러분도 네이밍 업무를 할 때는 텍스트 자체에만 매몰되지 말고, 시각 자료를 비롯한 여러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거나, 또 그 대상으로부터 이름을 뽑아내기도 하면서 생각을 유연하게 확장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럼 어느 순간 이름이 주는 인상이 생생한 모습으로 구체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죠. 

 

 

혼이 담긴 배트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저는 네이밍 업무를 할 때마다 혼자서 그 이름을 미리 사용해 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실제로 통용되기 전에 여러 상황을 가정해 먼저 테스트해 보면서, 만에 하나 발생할지 모르는 오해와 변수를 가늠하기 위함입니다. 시제품 위에 직접 프린트한 이름을 이리저리 얹어보기도 하고, 소리 내어 발음해 보기를 무수히 반복합니다. 추후에 사람들이 어떻게 축약하거나 변형해서 활용할지를 상상해 보기도 하죠. 그럼 어느 순간부터 작은 확신 같은 게 생깁니다. 비록 내가 모든 상황을 가정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이름이 우리의 목적과 목표에 부합하는 최선의 이름이라는 확신 말이죠.

 

그런 제게 자주 네이밍을 의뢰하는 동료 한 분이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 야구 배트를 잘 만들기로 소문난 장인이 한 명 있대요. 프로야구 선수들이 줄을 지어 그분에게 배트 제작을 의뢰하는데, 품질도 품질이지만 그분만의 독특한 철학이 하나 있다더라고요. 바로 배트에 늘 이름을 붙여준다는 거였어요. 신기한 건 제작을 끝내고 나서 그냥 멋진 이름 하나 툭 써주는 게 아니라, 배트를 만드는 과정부터 이름을 상상한대요. 나중에 그 선수가 이 배트를 가지고 활약하는 장면을 그리면서요. 그래야 혼이 들어간다고. 

저도 네이밍 업무를 의뢰하고 결과물을 받을 때마다 작게나마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그냥 적당한 이름 하나 부여받는 게 아니라, 정말 이 이름을 쓰기 시작하면 제품도 사업도 다 잘될 것 같은 기분이에요. 그래서 자꾸 찾게 되는 거 같아요. 혼이 들어간 배트를 기다리는 심정으로요.”

 

<출처: unsplash>

 

과찬이었지만 이 말은 제게 네이밍 업무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한층 더 끌어올려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정말 이름을 짓고 널리 퍼뜨리는 행위는 누군가에게 꼭 맞는 도구를 쥐여주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매번 안타와 홈런을 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타석에 임하는 좋은 자세를 선물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네이밍의 역할은 차고 넘치니 말이죠. 여러분도 앞으로 혼이 담긴 배트를 만드는 마음가짐으로 네이밍에 임해보면 어떨까요?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경험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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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브랜드 경험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브랜딩과 공간 기획, 브랜드 경험을 바탕으로 한 Writing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잘 브랜딩 된 모든
것들을 애정합니다.
<기획자의 독서>와 <브랜드로부터 배웁니다> 두 권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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