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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종종 브랜드나 마케팅 관련 강의를 할 기회가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준비한 이야기를 대부분 집중해서 들어주시는데, 강의를 마칠 때쯤이면 한두 분 정도는 조심스레 이런 말씀을 건네곤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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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스몰 브랜드’를 위한 브랜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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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종종 브랜드나 마케팅 관련 강의를 할 기회가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준비한 이야기를 대부분 집중해서 들어주시는데, 강의를 마칠 때쯤이면 한두 분 정도는 조심스레 이런 말씀을 건네곤 하십니다.

 

“저희는 이제 갓 사업을 시작한 신생 브랜드입니다. 알려주신 방법들을 모두 실행해 보기에는 인력도, 역량도 많이 부족할 것 같은데,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할 것이 있을까요?”

 

아마 이 글을 클릭한 분들 중 비슷한 질문을 갖고 들어온 분들도 계실 겁니다. 요즘은 브랜딩이나 마케팅 관련한 정보가 여기저기 넘쳐나는 게 사실이고, 마음만 먹으면 특정 브랜드의 성공 사례를 분석하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종의 막막함 같은 게 우리를 가로막고 있을 수 있죠. ‘지금 하루하루 매출 걱정하기도 바쁜데, 저런 디테일한 브랜드 요소까지 신경 쓸 여력이 어딨나’하는 반응도 있을 테고, ‘이 정도로 전문성이 있는 분야인 줄 알았다면 애초에 컨설팅을 맡기거나 대행사를 쓸 걸 그랬나’라며 없던 걱정이 더해지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규모라는 계급장부터 떼고 시작해 볼까요?

제대로 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우선 이 포인트부터 짚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은데요. 나름 이 업계에서 오래 일했고, 꽤 많은 브랜드 사례를 조사해 본 사람으로서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브랜딩이란 규모의 역량이 아주 큰 성패를 좌우하는 분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처: unsplash>

 

아마 여러분도 직접적으로 체감하실 텐데요.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여서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한 대기업이나, 매해 브랜드 관리에 고정적인 비용을 지불하고, 또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에게 브랜드 컨설팅을 받는 기업의 결과물이 모두 성공적이지는 않다는 게 대표적인 증거죠. 반대로 아주 작은 동네 카페 하나가 사람들로부터 관심받고, 어엿한 브랜드로 자리 잡는 사례를 목격할 수도 있습니다. 주력으로 판매하는 상품보다 재미로 만든 굿즈가 훨씬 큰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들도 적잖이 발견할 수 있고요. 심지어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채널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엄청난 팬덤을 끌어모으는 시대니 말이죠.

 

일각에선 이런 흐름을 두고, 거대한 자본을 앞세운 기업 활동에 피로감을 느낀 대중들이 변화가 빠르고 선택지가 다양한 작은 브랜드로 그 관심을 옮겨가는 것이라 분석하지만, 꼭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기엔 애플, 구글, 메타와 같은 글로벌 기업은 물론이고,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처럼 전통 럭셔리 기업들의 가치가 천문학적으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제 생각 하나를 얹어본다면, 저는 지금의 시대가 애매한 브랜딩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과거에는 어느 정도 구색만 맞춰도 사람들의 환심을 살 수 있는 문법이 통하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타깃이 되는 소비자의 마음을 완벽하게 빼앗지 않고는 브랜딩의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세상으로 진입한 것이죠.

 

(이런 용어 만드는 것을 아주 즐기는 편은 아닙니다만) 저는 이런 현상에 대해 ‘브랜딩 이진법의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하곤 합니다. 즉, 성공적으로 브랜디드(branded) 된 상태이거나(1), 아예 브랜딩의 역량을 기대할 수 없는(0) 영역으로만 구분이 가능한 것이죠. 따라서 규모가 작은 브랜드라면 나보다 덩치가 큰 브랜드들과의 경쟁을 마치 차근차근 지표를 높여가는 게임처럼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자본과 스케일이라는 조건을 모두 지우고, ‘우리 브랜드가 정말 브랜드로서 기능하고 있는가?’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는 스몰 브랜드를 운영하거나, 담당하는 분들이 흔하게 마주하는 몇 가지 질문들을 꺼내보고, 그 물음에 대한 우리만의 해법을 한 번 찾아보려고 합니다.

 

Q. 매출을 높이는 것이 먼저일까요? 아니면 제대로 브랜딩하는 것이 먼저일까요? 

이는 스몰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면, 근본적인 물음이자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우선순위를 매길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왜 이런 고민이 생기는 것일까를 추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적어도 이 질문을 품고 있는 분들은 브랜딩에 관한 욕심이 꽤 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브랜딩 같은 거 필요 없다. 돈만 잘 벌면 되지’라는 생각보다, ‘브랜딩이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은 잘 알겠는데 지금 브랜딩에 투자하는 게 맞을지, 아니면 어느 정도 규모를 확보한 다음에 제대로 브랜딩을 시작하는 게 현명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라는 고민을 가진 분들이죠.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역으로 딱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바로 ‘명확하게 만들고 싶은 브랜드의 상(像)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사업의 성장이냐 브랜드 구축이냐를 논하기 전에 우선 구현하고 싶은 브랜드의 방향이나 목표가 구체적인지를 확인하려는 겁니다.

 

사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이미 질문 속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죠. 좋은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부터, 이미 브랜드와 비즈니스 사이의 연결고리가 단단히 체결된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거든요. 돈을 벌든, 사람을 모으든,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든, 우리 존재를 널리 알리든 간에 내 리소스를 투자해 목표에 도달하는 행위를 비즈니스라고 정의해 본다면, 브랜딩은 이 비즈니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니까 말이죠.

 

그러니 이 질문은 ‘목표에 집중할까요, 수단에 투자할까요’라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당연히 이 두 가지는 발을 맞춰 함께 가야 하는 것이 올바른 동행이죠. 하지만 이러한 대답이 다소 원론적인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결국에 둘 다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비유를 든 것처럼 생각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럼 이런 질문을 한 번 해볼게요. 어느 정도 매출을 높인 다음 브랜드를 제대로 가꾸는 게 쉬울까요? 아니면 좋은 브랜드의 요소들을 미리 확보하며 매출 상승에 대한 노력을 이어가는 게 쉬울까요? 둘 다 만만찮은 과제지만, 그래도 제 경험상 후자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확률이 훨씬 큰 방향이었습니다.

 

<출처: unsplash>

 

이유는 간단합니다. 매출이 어느 정도 높아진 상황에서 브랜드 관리를 시작하려고 하면 브랜드의 핵심 속성인 '자기다움'을 찾고 발전시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미 사람들은 우리 제품과 서비스에 익숙해져서 딱히 브랜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인데 그제야 브랜딩을 시작하고자 애쓴다면 순서가 매우 어색해지는 거죠.

 

수많은 기업이 새로운 이미지로 브랜딩해보겠다며, 막대한 돈을 써서 로고를 교체하고 멋진 메시지가 담긴 기업형 광고를 내보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체감하지 못합니다. 이는 해당 소재가 매력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우리 머릿속에 각자의 인상과 선입견을 토대로 한 그 기업의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의 의도대로 브랜드가 동작하지 않는다는 얘기죠.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인격과 페르소나를 불어넣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스몰 브랜드에서 ‘일단 덩치부터 좀 키워놓고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 그때 제대로 브랜딩 해야지’라는 생각은 한편으로 위험할 수 있습니다. 문제도 바로잡을 수 있을 때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듯, 브랜드 역시 브랜딩이 작동할 수 있을 때 브랜딩 하는 것이 현명한 대처거든요. 그러므로 좋은 브랜드에 대한 욕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이라면, 브랜딩에 대한 고민은 브랜드가 출발하는 그 시점부터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Q. 동료 없이 혼자 브랜드를 꾸려가는 입장에서도 제대로 된 브랜딩을 할 수 있을까요? 

흔히 브랜딩이라고 하면 적어도 비주얼로 무언가를 구현해 내야 하는 디자이너 혹은 트렌드에 대한 이해도와 더불어 괜찮은 감각까지 갖춘 마케터 정도는 있어야 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훌륭한 동료들이 옆에 있다면 더 빨리 더 좋은 브랜드로 성장해 갈 확률이 높겠지만, 이 역시 필수 조건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미 수많은 스몰 브랜드들이 1인 기업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데다, 디자인, 마케팅적인 역량 없이도 스스로 좋은 브랜드를 일궈 낸 사례가 많기 때문이죠. 따라서 ‘함께 하는 동료 없이 혼자서 브랜드를 이끌고 가는 게 가능할까요?’라는 물음에 비교적 자신 있게 ‘YES’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단,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반드시 뒤따르죠. 지금부터 그 조건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내 역량으로 어디까지 커버가 가능하고, 또 어디부터 외부의 힘을 빌릴지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입니다.

브랜드에 필요한 요소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모두 만들 수 있다면야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드문 게 사실입니다. 설령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해도 1인이 운영하는 브랜드는 신경 쓸 것이 많아, 내 리소스를 브랜딩 영역에 100% 투입하기 어려운 현실이죠. 그래서 혼자 브랜드를 이끌어 갈 때는 마치 가상의 동료들과 업무를 분장하듯이, 내가 맡을 부분과 외부 인력에 의뢰할 부분을 명확히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직무 플랫폼 등을 활용해 디자인, 개발과 같은 영역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는 그저 ‘이런 것이 필요하니 잘 만들어주세요’라는 의뢰보다는 브랜드 오너의 입장에서 고민한 내용과 구현하고자 하는 방향을 최대한 상세하게 브리핑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스스로 어디까지 고민했는지 그 여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인 기업의 경우, 함께 고민하고 논의할 동료가 없으므로 혼자서 발전시킨 내용을 상세히 정리해 두지 않으면, 외부에 의뢰할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거나, 매번 요청하는 내용이 달라지는 비극이 펼쳐집니다. 따라서 혼자서 만드는 브랜드일수록, 브랜딩에 관한 고민의 여정과 지금까지의 활동 내역 등을 포트폴리오로 잘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둘째, 가급적 글과 관련한 브랜딩 영역은 직접 담당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의외로 스몰 브랜드를 운영하는 많은 오너들이 글과 관련한 부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거나 아니면, 여타 브랜드 사례를 참고해 비슷하게 카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브랜드에 담기는 대부분의 글은 우리 브랜드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핵심 인격을 만들어가는 작업인 만큼, 이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의뢰하거나 통째로 건너뛰어 버리면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 자체를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혹시 시간적으로나 역량적으로 브랜드와 관련한 모든 글을 직접 쓸 수 없다면, 적어도 우리 브랜드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매니페스토 혹은 브랜드의 가장 전면에 드러나는 메인 슬로건 정도는 직접 써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이 무엇인지 오너의 입장에서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고, 설령 나중에 브랜드가 성장해 다른 사람들이 합류한다고 해도 브랜드의 본질과 아이덴티티를 잘 설명해 줄 수 있으니 말이죠.

 

마지막으론 핵심 팬층으로부터 끊임없이 브랜드를 점검받는 것입니다

스몰 브랜드의 생명력은 이른바 ‘찐팬’으로부터 나옵니다. 이들이야말로 우리 브랜드를 가장 잘 알고, 가장 많이 사랑해 주며 동시에 가장 널리 알려줄 수 있는 고마운 존재들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그들이 보여주는 로열티는 빅 브랜드를 향한 그것과는 재질 자체가 다릅니다. 마치 나만 알고 있는 인디밴드가 점점 존재감을 발휘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요? 흔하게 접할 수 없다는 것,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등이 주는 희소성도 한몫하겠지만, 스몰 브랜드를 사랑하는 찐팬의 덕질 포인트는 무엇보다 그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 온전하게 느껴진다는 데 있습니다.

 

쉽게 말해 규모는 작아도 브랜드의 페르소나와 화법, 언어 등이 너무도 생생하게 체감되기 때문에 그 브랜드를 아주 친한 친구처럼 대할 수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브랜드의 초창기부터 큰 애정을 보여준 팬들과는 늘 좋은 유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단순히 신제품을 먼저 체험하게 해주는 등의 일정한 혜택을 계속 제공하라는 의미보다, 그들로부터 브랜드와 관련한 다양한 피드백을 수집하라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조금이라도 정체성에 어긋나는 행보를 보이면 가장 먼저 실망할 사람들이니까요. 작은 설문의 형태도 좋고, 라운드 테이블처럼 소규모 그룹 인터뷰도 좋으니 주기적으로 ‘우리 브랜드가 여전히 매력적인지’, ‘새롭게 나아갈 방향에서 느껴지는 기대감은 무엇이고, 이질감은 무엇인지’ 등을 점검해 보는 게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출처: unsplash>

 

Q. 브랜드가 정체기에 빠졌을 때는 리브랜딩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다시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는 게 나을까요? 

스몰 브랜드를 운영해 봤다면, 어느 시점에 이르러 한 가지 딜레마에 빠집니다. 비교적 브랜드를 빠르게 론칭하고, 성장시키는 게 가능한 만큼 그 수명이 길게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흡사 조용하고 한적하던 어느 골목이 이른바 ‘OO단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갑자기 주목을 받다가, 방문객 수가 정점을 찍고 나면 한순간에 힙하지 않는 곳이 되는 사이클과 비슷합니다.

 

한 가지에 오래 관심을 두기엔 또 새로운 것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트렌드에 부합하지 않으면 금방 도태되기가 쉬운 오늘날의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은 거죠. 이 질문에 대해 ‘재빨리 리브랜딩을 해야 합니다’, ‘과감하게 새로운 브랜드로 갈아타십시오’라는 대답을 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 20~30년은 거뜬히 사랑받을 수 있는 브랜드의 싹을 잘라버리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거고, 한편으론 멀쩡히 잘 사랑받고 있는 요소에 괜히 칼을 대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이 문제에 대해 이것이 정답이라는 결론을 낼 수 없다는 건 저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대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볼 필요는 있습니다. 우리 브랜드가 정체기에 있다는 그 사실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브랜드가 처한 상태를 분석해 보는 지혜를 발휘하는 거죠. 외형적으로는 그저 브랜드가 부침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을 들여다보면 보통 두 가지 형태의 문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브랜드가 트렌드에 끌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성장이 더뎌지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우리만의 아이덴티티를 잘 지키려는 그 행위가 정체를 유발하는 경우입니다. 보충 설명을 하자면 전자는 나름 변화를 계속 주고 있지만, 그 변화가 우리 타깃에게 긍정적인 경험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후자는 시장은 변화를 원하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업데이트하고 있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라 할 수 있죠. 따라서 이 둘은 비교적 정확히 구분되어야 하고, 그에 따른 해결책도 180도 달라야 합니다.

 

먼저 트렌드에 따라 계속 변화를 주지만 큰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메시지를 최대한 일원화하고, 단순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브랜드 컨셉 하나를 중심으로 간결한 워딩과 개념들을 압축해,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거죠. 사실 브랜드에 변화를 줘도 효과가 없는 경우는 변화의 방향이 잘못되기보다는 소비자들이 아직 그 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하나의 메시지가 타깃에게 닿을 수 있게 최대한 집중력을 끌어모으는 것이죠.

 

반대로 정체성을 지키려다 자칫 업데이트가 늦어지는 경우라면, 이른바 베타(beta) 전략을 활용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이는 기존의 오리지널리티는 지키되 새롭게 다가올 변화들을 미리 가볍게 소개하고, 마치 테스트처럼 공유하며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원래 우리가 가진 아이덴티티를 심하게 흔들지 않고도 고객들로 하여금, ‘이 브랜드는 꾸준히 변화하며 앞서가고 있다’는 인상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브랜딩에 있어 가장 보수적인 영역으로 통하는 식품 업계에서도 이와 같은 시도가 있었는데요. 우리에겐 오레오, 리츠 같은 과자로 잘 알려진 제과 브랜드 ‘나비스코(NABISCO)’에서는 늘 새로운 맛을 원하는 고객들을 위해 특정한 시즌마다 ‘나비스코 연구소’라는 메뉴를 운영해, 미래에 선보일 메뉴에 대한 가벼운 힌트와 함께 고객들의 반응을 체크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급격한 변화를 줄 수 없는 식품의 특성을 감안해 새로운 활로에서 변화를 꾀하는 것이죠. 

 

이와 같은 방식은 스몰 브랜드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브랜드 자체의 변화를 주기적으로 예고하며, 고객이 받을 충격은 완화하고 기대감은 끌어올리는 장치를 두는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요. 이러한 베타 브랜드 전략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브랜드를 조금씩 이끌어가는 것도 아주 현명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기에 가능한 것들

2019년 미국 뉴욕 소호 거리에서 열린 부티크 브랜드 페스티벌의 슬로건은 ‘작기에 가능한 (It's small, It's possible)’이었습니다. 세계를 호령하는 브랜드들 사이에서 기죽기는커녕, 자신들의 존재감을 마음껏 발휘하는 스몰 브랜드들을 위한 축제의 장이었죠. 그런데 이때 영국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Paul Smith)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이름을 거꾸로 한 H-TIMS LUAP라는 브랜드를 출품했던 사실이 뒤늦게 공개되며 큰 파장을 낳았습니다. 소호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의 독특한 세계관이 만나 빚어낸 유쾌한 에피소드였죠. 그리고 폴 스미스는 소호 거리에 만연한 스몰 브랜드 문화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가끔 소호 거리를 걷다가 숨이 멎을 것 같은 경험과 마주칩니다. 폴 스미스 매출의 10,000분의 1도 안 되는 작은 브랜드가 뿜어내는 엄청난 아우라에 무릎을 꿇고 말거든요. 그때마다 전 브랜드라는 게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밀도의 문제라는 걸 느껴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폴 스미스도 그런 밀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작기 때문에 가능한 그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거죠.”

 

어쩌면 저는 그의 말이 스몰 브랜드에 대한 방향성을 고스란히 압축하고 있다고도 느껴집니다.  저 역시도 브랜드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밀도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리 작은 브랜드라고 해도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내공이 체감되면, 그때부터는 정신 못 차리고 그 브랜드에 빨려 들어가고 마니까요.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규모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리게 만들곤 하죠.

 

더불어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반대의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아무리 작은 브랜드라고 해도 결코 대충, 가볍게, 성의 없이 브랜딩 할 수는 없다는 거죠. 온전한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작기에 가능한’ 그 포인트의 생명력을 극대화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그건 큰 브랜드를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고 어려운 과제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스몰 브랜드를 다루는 분들이 더 존경스럽게도 느껴지나 봅니다. 그 작은 브랜드 속에서 큰 우주를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려면, 일단 우주를 압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테니까요. 밀도의 비즈니스를 만들고 가꿔가는 일련의 과정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거겠죠. ‘작다’라고 쓰고 ‘크다’라고 읽는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맞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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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브랜드 경험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브랜딩과 공간 기획, 브랜드 경험을 바탕으로 한 Writing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잘 브랜딩 된 모든
것들을 애정합니다.
<기획자의 독서>와 <브랜드로부터 배웁니다> 두 권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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