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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서는 지난 7월 3일부터 시작해 약 1달 반 동안 ‘e스포츠 월드컵’(이하 EWC)이라는 대회가 열렸다. 지금까지 사우디에서 열린 e스포츠 대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치 올림픽 경기처럼 <리그 오브 레전드>, <철권 8>, <배틀그라운드>, <로켓 리그>, <스트리트 파이터 6> 등 다양한 경기가 개최되었다. 나는 EWC 결승 주간에 다녀왔는데, 현장 해설과 함께 ‘사우디는 왜 e스포츠에 투자하는가?’에 대해 파고들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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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e스포츠 월드컵 2024, 뭐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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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서는 지난 7월 3일부터 시작해 약 1달 반 동안 ‘e스포츠 월드컵’(이하 EWC)이라는 대회가 열렸다. 지금까지 사우디에서 열린 e스포츠 대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치 올림픽 경기처럼 <리그 오브 레전드>, <철권 8>, <배틀그라운드>, <로켓 리그>, <스트리트 파이터 6> 등 다양한 경기가 개최되었다. 나는 EWC 결승 주간에 다녀왔는데, 현장 해설과 함께 ‘사우디는 왜 e스포츠에 투자하는가?’에 대해 파고들어 보려고 한다.

 

1. 막대한 상금과 최고급 시설

<출처: esportsworldcup.com>

 

EWC의 총상금은 약 800억 원으로 e스포츠 대회로써 역대 최고 금액을 자랑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열린 롤드컵 뉴스로 한동안 떠들썩했는데, 그 롤드컵보다 약 25배 이상의 상금 규모인 셈이다. 물론 종목 수가 훨씬 많은 대회니까 그렇겠지만, e스포츠 대회 상금으로 800억 원은 처음 들어본 액수였다.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돈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경기장 시설도 최고급이었다. 나는 유럽에서 열린 롤드컵 결승전, 일본에서 열리는 EVO Japan, 국내에서 열리는 LCK 리그 등 여러 e스포츠 대회장을 가보았다. 그러나 내가 가 본 그 어느 대회장보다 인프라 수준이 대단했다. PC로 진행되는 e스포츠 경기 특성상 경기 내용을 현장 스크린으로 봐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선명하고 부드럽게 재생되는 대형 스크린은 처음 봤다. 대형 모니터를 보는 게 아니라, 거대한 디지털 벽을 보는 느낌이었다.

 

<출처: 작가>

 

경기 종목이 다양했기 때문에 경기장도 여러 개로 나뉘어 있었다. 각 경기장은 모두 종목 맞춤형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철권 8>의 경우 1대 1 게임이므로 선수 2명은 중앙에 위치하고, 그 뒤는 전부 중계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배틀그라운드>의 경우 64명의 선수(4명으로 구성된 16개 팀)가 한꺼번에 시합하는 배틀로얄 방식이라, 4명씩 앉을 수 있는 긴 데스크가 여러 개 이어 붙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거기에 게임 내 선수들의 움직임이나 지도 화면을 중간중간 전환하면서 보여주었다. 시원시원한 화면 덕분에 게임 관람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종합하자면 (아직 1회 차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입이 떡 벌어지는 시설과 상금이 돋보이는 대회였고, 대회뿐만 아니라 팬 사인회, 게임 홍보 부스, 서브컬처 전시관 등 부가 행사도 마련되어 있어, 볼거리, 즐길 거리가 풍성했다. 티켓 가격도 일반석은 약 1만 원 정도라 부담 없었다. 폐막식 티켓 가격은 4만 원 이상에 바로 매진되어 관람할 수 없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쾌적했다. 내년 2회가 기대되는 대회다.

 

그럼 모든 면에서 완벽한 대회였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서는 글 후반부에 정리해 보겠다.

 

 

2. 기본 영어 진행

<출처: Esports World Cup 공식 유튜브 채널>

 

재밌는 점은 일부 종목을 제외하고는 모든 중계가 영어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할 줄 아는 아랍어라고는 비행기 이륙 직전에 외운 “알란(안녕하세요)”, “슈크란(감사합니다)” 밖에 못하는 나에게는 정말 다행이었다. 보통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는 기본 현지어로 진행되고, 영어 중계는 따로 유튜브 라이브 등을 통해 스트리밍하는 방식인데, 사우디 대회는 대부분 영어로 진행되었다. 그만큼 글로벌 팬들을 끌어모으고 싶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참고로 사우디의 영어 실력 점수(EF EPI)는 ‘Very Low’ 등급으로, 누구나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국가는 아니다.

 

경기 중간중간 송출되는 분석 콘텐츠나 선수 인터뷰도 대부분 영어로 진행되었다. 사우디에서 영어를 잘하는 진행자를 데려온 것이 아닌, 해외에서 영입해 온 느낌이 강했다. 현장 스태프들은 사우디 현지인들이 많았지만(복장으로 구분 가능), 중계진과 분석가들은 다국적 구성이었다. 따라서 대회를 즐기다 보면 내가 지금 어느 나라에 와 있는지 지역색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티켓 판매는 모두 ‘WEBOOK’이라는 앱을 통해 진행되었는데, 이 앱도 기본 영어와 아랍어로 제공되었다. 가끔 영어 버전을 쓰면 기능이 제한되는 앱들이 있는데, WEBOOK은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 신용카드, 애플페이 등 글로벌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결제 수단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어, 현지의 시스템을 따로 이해해야 하는 불편함도 없었다. 기본적인 영어를 할 줄 알고, 글로벌 결제 수단이 있다면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었다.

 

 

3. 팬들은 어디에?

<출처: 작가>

 

역대급 상금 규모, 최고급 인프라, 영어 진행 등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크게 아쉬웠던 점이 하나 있다. 사막 열기는 후끈했지만, 정작 팬들의 열기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e스포츠가 진짜 스포츠냐 아니냐 논란이 많지만(개인적으로는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그런 논란과 상관없이 기본 구조는 야구나 농구 같은 경기와 별 차이가 없다. 경기장이 있고, 선수들이 있고, 팬들이 있다. 선수들은 해당 종목에서 최고의 기량을 뽐내는 플레이어들이고, 팬들은 팀과 선수들을 응원한다.

 

EWC는 최고의 경기장을 갖추고 최고의 팀과 선수들을 데려왔지만, 팬들의 분위기는 다른 대회와 사뭇 달랐다. 일단 월드컵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현지 사람들이었다(역시 복장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거기에 가장 주목받는 결승전 경기에서도 빈자리들이 꽤 보였고, 팔리지도 않은 VIP석을 너무 많이 배치하는 등 ‘팬들을 위한 축제’라는 느낌이 없었다.

 

EWC에는 왜 팬들이 별로 안 보였을까? 일단 EWC 대회의 인지도가 낮은 점, 사우디가 매력적인 여행지라는 이미지를 아직 갖지 못해서인 게 가장 큰 약점으로 보인다. 전 세계 사람들이 올해 가장 많이 방문한 국가 순위를 검색해 보았는데, 사우디는 31위였다. 1위인 프랑스와 비교해 방문객 수가 6배 이상 차이 난다. 그리고 애초에 무더운 나라에서 하필 여름에 개최된 것도, 저조한 방문에 한몫했을 것이다.

 

e스포츠인 만큼 당연히 온라인 중계도 이루어졌는데, 시청자 수에서도 다른 메이저 대회와 차이가 있었다. EWC에서 가장 높은 시청자 수를 기록한 종목은 <Mobile Legends: Bang Bang>으로, 최고 시청자 수가 약 238만 명이었다. 두 번째로 높았던 것은 56만 명의 <리그 오브 레전드>. 그 외 종목은 10~20만 명대였고 비인기 종목은 5천 명대였다.

 

EWC의 최고 시청자 수 238만 명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작년 11월 우리나라에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 2023 월드 챔피언십(일명 롤드컵 2023)의 경우 최고 시청자 수가 640만을 넘었다. 상금은 EWC가 800억 원, 롤드컵이 28억 원으로 EWC가 28배 이상 많지만, 최고 시청자 수에서는 롤드컵에 2배 이상 뒤처진 것이다. 결국 팬들의 관심은 오일머니로도 살 수 없으며, 관심을 가질만한 위상과 콘텐츠를 갖추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4. 사우디가 e스포츠에 투자하는 이유는?

<출처: 작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산업 구조를 다양화하기 위해서다. 현재 사우디 GDP의 절반 가까이가 석유 산업에 치우쳐져 있다. 한 사우디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현 사우디 왕세자이자 총리인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자가 적극적으로 드라이브를 걸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석유로 잘 먹고 잘살고 있지만, 앞으로의 새 기반을 다지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사우디가 꿈꾸는 앞으로의 방향성은 'Vision2030'이라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사우디의 도시화, 문화와 스포츠에 대한 투자, 인프라의 디지털화, 관광지 개발, 보건의료에 대한 투자, 일자리 창출, 여성의 사회진출, 석유 외의 수출품 개발 등을 목표로 한다. 가히 사우디 2.0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장 중 Vision2030의 일부인 키디야(Qiddiya) 도시 건설 프로젝트 현장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수도 리디야에서 차로 약 40분 정도 떨어진 사막이었는데, 여기엔 그 유명한 식스 플래그 놀이공원, 드래곤볼 테마파크, F1 레이싱 트랙, 스포츠 경기장, 워터파크, e스포츠 허브 등 그야말로 꿈의 도시가 건설될 예정이다. 크기는 무려 싱가포르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이즈가 될 것이라 한다. 단순히 관광객 유치를 위한 리조트에서 끝나지 않고,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까지 집중되어 있는 문화 중심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설명을 듣다 보면 과연 완성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로 야심 찬 프로젝트다.

 

<출처: 작가 & qiddiya.com>

 

국가 프로젝트 핵심에 스포츠가 자리 잡고 있으니 e스포츠도 절대 빠질 수 없다. 그 일환으로 이번 EWC 대회가 열린 것이기도 하다. 사우디에서 EWC가 계속 열릴 뿐 아니라 선수들을 위한 최고급 연습시설, 전용 경기장, e스포츠 팬들을 위한 숙소까지 모두 갖춰질 예정이다. 비록 사우디가 최고의 e스포츠 선수를 배출하는 국가는 아니지만, 최고의 인프라는 제공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2025년에는 사우디에서 최초로 e스포츠 올림픽이 개최된다.

 

EWC와 함께 진행된 B2B 행사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e스포츠 관련 사우디 장관들과 협회장들의 연설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보통 e스포츠 행사에 참가하는 장관들의 연설은 별 알맹이가 없다.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하여” 같이 두루뭉술한 환영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우디 협회장들의 내용에는 “쵸비 선수의 스킬 명중률”, “APM(Action Per Minute, 분당 명령 횟수)” 등 e스포츠를 알아야 말할 수 있는 디테일이 담겨있었다. 의사 결정권자들이 핵심 재미를 이해하고 있다니, 사우디 e스포츠의 미래에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협회장들 모두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 것도 놀라웠다.

 

 

5. 우리나라엔 기회일까?

<출처: spa.gov.sa>

 

선수, 게임사, 관계자 이렇게 3가지 측면으로 기회가 될 것 같다. 일단 우리나라 e스포츠 선수들의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e스포츠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페이커 이상혁 선수는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매해 전설인 페이커 선수를 제외하더라도 세계 무대를 휩쓸고 있는 대한민국 선수는 정말 많다. 참고로 이번 EWC의 21개 종목 중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와 <철권 8>의 우승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차지했다.

 

그런 선수들과 팀에게 (대회의 위상이야 어쨌든) 역대 최고 상금을 건 대회는 좋은 기회가 된다. 물론 사우디까지 날아가 더위를 이겨내며 경기를 치르는 것이 체력적으로 부담이겠지만, 역대급 상금을 놓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중동 팬층을 늘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중동 쪽 스폰서들에게 어필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게임사들에게도 기회다. 최근 온라인으로 경쟁하는 게임들이 많아지면서, 출시 전부터 e스포츠화를 염두에 두는 작품들이 많다. 경쟁하는 게임은 정착시키기가 어렵지, 한 번 대세가 되면 생명력이 끝도 없이 길어진다.

 

온라인 게임이 축구나 농구처럼 100년 이상 지속되기야 어려울 테지만, 지금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는 출시된 지 무려 15년이 지난 게임이다. 보통 게임은 콘텐츠가 소모되면 생명력이 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e스포츠 게임은 매 경기가 새로운 콘텐츠이므로 지속적인 수입원이 된다. 따라서 EWC 같은 e스포츠 대회가 많아질수록 게임사들에게는 기회가 되며, 이번 EWC에는 <배틀그라운드>가 유일한 국산 게임이었지만 앞으로 충분히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마지막으로 나 같은 업계 관계자들도 혜택을 볼 것이다. 일반 팬들이 보기에 EWC는 선수들이 경쟁해서 상금을 타가는 e스포츠 대회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광고, 스폰서, 굿즈 판매 등 수많은 부가 사업이 엮여있다. e스포츠 산업은 그 화려함에 비해 수익성 측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사우디의 적극적 투자는 어려움 극복에 큰 버팀목이 된다. 결국 e스포츠 선수와 팀이 먹고살 수 있을 만큼 매출이 발생하고 다시 투자로 이어지는 구조가 정착되어야 하는데, 그런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기 전까지는 외부 자금 유입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결론: 사우디는 2.0에 진심이다

<출처: 작가>

 

<내용 정리>

1. e스포츠 월드컵(EWC)은 막대한 상금과 최고급 시설로 관람객들의 눈을 휘어잡았다.
2. 대회는 기본 영어로 진행되어, 시작부터 세계화를 목표하고 있었다.
3. 대회 규모와는 별개로 팬들의 열기는 아직 미지근했다.
4. 사우디는 Vision2030 국가 전략을 바탕으로 문화, 인프라, 일자리 등 수많은 분야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으며, e스포츠도 그 투자 대상 중 하나이다.
5. 우리나라 e스포츠 선수와 팀, 게임사, 관계자들에게 오일머니 유입은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도 EWC 대회를 관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 더위를 또 느껴야 하는 것은 싫지만, 왠지 그 더위조차 어떻게든 해결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들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국가 2.0 계획에 진심으로 보였고, 그 진심은 막대한 돈으로 증명되고 있는 중이다.

 

“팬들은 어디 갔나?”라며 EWC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돌이켜보면 1회 차부터 성황이었던 e스포츠 대회는 없었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조촐한 규모로 치르면서, 조금씩 그 규모를 키워가는 게 일반적인 과정이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노하우가 쌓이고 인지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EWC의 경우 워낙 화려하고 상금 규모가 큰 탓에 팬들의 미지근함이 더 눈에 띄었던 것뿐이라 추측한다.

 

EWC 2회 차도 똑같이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그들 뒤에는 국가의 풍족한 지원이 있다. 따라서 대회가 사라질 거라는 걱정은 들지 않는다. 존망을 걱정하지 않는 e스포츠 대회는 아마 EWC가 유일하지 않을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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