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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브랜딩이나 마케팅 관련 일을 하는 분들은 글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편입니다. 볼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책이나 잡지처럼 텍스트로 된 콘텐츠를 즐기는 분들도 많고,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의 이야기를 생산해 내는 분들도 적지 않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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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브랜딩이나 마케팅 관련 일을 하는 분들은 글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편입니다. 볼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책이나 잡지처럼 텍스트로 된 콘텐츠를 즐기는 분들도 많고,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의 이야기를 생산해 내는 분들도 적지 않으니 말이죠.
그러나 글을 좋아하는 분들 중에서도 꽤 많은 분들이 공통된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긴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제 주위만 보더라도 “짧고 임팩트 있게 전달하는 카피나 광고 문안 같은 건 곧잘 쓰겠는데, 긴 글은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안 서요.”라고 말하는 분도 있고, “하다못해 인스타그램에 글을 쓰더라도 조금만 분량이 길어지면, 저도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처음 책을 낸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보인 반응도 “어떻게 책 한 권이나 되는 분량의 글을 쓰셨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스토리텔링을 가진 긴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긴 글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정해진 기준은 없겠지만 아마도 기획자들에겐 아티클이나, 특정한 콘텐츠에 대한 리뷰 혹은 어떤 대상을 안내하는 글을 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최소한 500자 이상의 분량을 가진다고 봐야 아마도 ‘긴 글’이라는 것에 공감할 수 있을 거고요.
사실 모든 사람이 긴 글을 잘 쓸 필요는 없습니다. 글이란 상황에 따라 필요한 목적이 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각자가 가장 편하고 효과적이라 생각하는 방식을 고르면 되니까요. 굳이 '긴 글을 완벽히 쓸 줄 알아야 짧은 글도 매력적으로 쓸 수 있다'라는 검증되지 않은 경험을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대신 제가 이렇게 한 번 질문을 드려볼게요. '그렇다면 스토리텔링에는 크게 관심이 없으신가요?'라고요. 그럼 아마 갑자기 대답이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아뇨. 긴 글쓰기는 부담스러운데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 데는 아주아주 관심이 많아요!' 같은 답변이 곧바로 따라붙을 수도 있을 테죠. 그런데 그 본질을 이해하고 나면 사실 스토리텔링을 풀어가는 것과 긴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은 꽤 닮은 지점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의 가장 대표적인 공통점은 바로 일정한 시퀀스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긴 글은 보통 두 가지 목적을 가집니다. 무엇인가를 이해시키거나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함이죠. 신기한 건 이 두 가지가 함께 자주 붙어 다닌다는 겁니다. 설득을 위해 우선 작게나마 뭔가를 이해시키는 작업이 선행될 때가 있고 반대로 화자의 말에 점점 설득되어 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 속에 담긴 대상이나 요소들이 궁금해지기도 하기 때문이죠.
스토리텔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스토리텔링의 정의는 한 가지로 규정하기가 매우 힘들지만 적어도 매력적인 스토리라면 반드시 담고 있어야 할 필수적인 요소가 하나 있습니다. 다름 아닌 '같은 메시지라도 어떤 방법과 순서로 전달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이죠. 그리고 이 고민에 대한 각자의 해결책이 바로 시퀀스로 탄생하는 겁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인터뷰를 찾아보는 걸 참 좋아합니다. 해외 유명 인사들이 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축사하는 영상도 자주 보고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초창기 시절, 창업자들이 언론과 가진 인터뷰들을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워합니다. 왜 이런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가지 답을 찾을 수 있더군요. 그건 그들이 시퀀스에 대한 고민을 정말 놀랍도록 진지하고 치열하게 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이 말하는 메시지는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내용이거나 인류 역사에 걸쳐 반복되어 온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용기를 가져라', '좋은 습관을 들여라',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버텨라', '이타적인 삶을 살아라', '원대한 꿈을 꿔라' 등 발언의 내용을 요약하면, 그저 클리셰에 가까운 한 줄 메시지로 정리될 확률이 높죠.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메시지에 도달하는 각자의 방법과 에피소드에 공감하고 열광합니다. 그러니 저도 늘 '저 사람은 출발점부터 결승점에 이르기까지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경험들을 들고 들어오는가'를 궁금해하고 있었던 셈이죠.
우리가 긴 글을 잘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에는 크리에이티브한 한 줄 광고 카피로 상대를 휘어잡아야 하는 순간이 있나 하면, 마치 함께 산책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끝에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순간도 있거든요. 그러니 짧은 글이 새로운 생각을 전달하고 고객들로 하여금 빠른 액션을 취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면, 긴 글은 누구나 알고 있는 다소 뻔한 사실이라도 그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새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자, 그럼 이제 여러분이 가장 궁금해할 질문에 답하는 일이 남았네요.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를 위해선 어떤 연습과 과정들이 필요한 걸까요?
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한 문단을 제대로 쓰는 훈련이 되어있어야 합니다. 보통 몇 개의 문장이 모여 이루는 한 단락을 문단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상 문단의 정의는 생각보다 명확합니다.
'문단(文段)'. 말 그대로 글의 구분, 글의 층계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그러니 계단 여러 개를 올라 우리가 원하는 메시지에 도달해야 한다고 가정할 때 그 한 계단 한 계단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가 '한 문단을 쓰는 행위'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자신감이 자유낙하 하는 분들이 계실 걸로 압니다. 왠지 긴 글 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할 테니 말이죠. 그러나 이 문단 쓰기는 생각보다 아주 간단하게 연마할 수 있습니다. 바로 각 문단 앞에 번호를 붙이는 방법입니다.
한때 페이스북에서 01, 02, 03... 이렇게 문단에 넘버링을 해서 글을 완성하는 게 유행처럼 퍼졌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링크드인이나 인스타그램에 긴 글을 올리는 분들의 경우 이 방법을 즐겨 사용하고, 저 또한 온라인상에 올려야 하는 글 중의 일부는 이렇게 작성하고 있죠.
문단에 번호를 붙여가며 글을 쓰면, 글 전체의 흐름과 문단별 포인트가 한눈에 파악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총 10개의 문단으로 글을 쓰기로 했는데 5번 문단이 넘어가도록 글의 핵심이 도드라지지 않는다면 자칫 글이 지루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고, 3번 문단에서 했던 얘기가 7번 문단에서도 불필요하게 중복되면 과감하게 정리하거나, 두 문단을 합치는 등 구성을 다듬는 데도 효과적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긴 글을 써야 할 때는 우선 최소 몇 개 정도의 문단이 필요할지를 어림짐작해 보고, 그 안에서 글을 완성해 보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참고로 저는 번호를 붙여 문단 쓰기를 할 때 되도록 한 문단에 (공백 포함) 300자를 넘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물론 분량이야 정해진 룰이 있는 게 아니니 각자에게 알맞은 문단 길이로 조정하며 써도 되지만, 제 경우에는 한 문단이 300자가 넘어가면 글의 호흡이 조금 길어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문단 쓰기 연습을 해보고 싶으시다면, 저처럼 한 문단에 300자 정도의 분량으로 7~10개 정도의 문단을 구성해 보는 걸 추천합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자면, 이렇게 문단에 넘버링을 하는 방식은 정말 놀랍도록 유서가 깊은 행위라는 사실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적 학문 중 하나가 바로 수사학(Rhetoric)인데요, 말과 글의 기교를 가르치는 데 목적을 둔 이 수사학에서는 필요한 언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배열법(dispositio)이라는 부분을 강조해서 다룹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들에게 배열법을 학습시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문단에 번호를 붙여 글을 쓰도록 했다는 일화가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는 거죠. 그리고 그 목적은 다른 사람을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생산한 말과 글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니 수천 년 전에 강조하던 글쓰기 방식이 오늘날의 온라인 세상에서도 통하는 거라 볼 수 있습니다.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박진영은 자신이 프로듀싱하는 모든 뮤지션들에게 '말하듯 노래하라'는 주문을 한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을 트레이닝 하는 도중, 노래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말한 부분이 정말 인상적으로 다가오더군요.
“생각해 봐 얘들아. 노래하는 모든 사람은 각자 말하고 싶은 게 있어. 근데 그 말을 좀 더 극적으로 하고 싶어서 노래로 바꿔 부르는 거야. 그러니까 너희 노래를 들으면서 '아, 저 사람 노래하네'라고 생각하면 그건 아무 감정도 전달하지 못하는 거야. 듣는 대중들이 '와, 저 사람 지금 내 옆에서, 내 눈을 보고, 내 손을 잡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아'라는 기분이 들게 해야 설득에 성공한 거라고.”
노래보다 말이 먼저다는 그의 지론은 글을 대하는 저의 태도에도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사실 글쓰기라고 해서 이 틀을 크게 벗어나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저는 평소 쓰는 글의 글감을 주변 지인들과 나눈 대화에서 자주 얻는 편인데, 그때마다 매번 떠올리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내가 지금 한 이 이야기를 나중에 글로 쓰면 과연 잘 풀어낼 수 있을까?'라는 거죠. 방금 나눈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내 생각을 전달하는 데도 큰 무리가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이걸 글 한 편으로 바꿔도 여전히 이 리듬과 호흡, 뉘앙스, 메시지가 잘 묻어날지 걱정이 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늘 저는 일단 말로 한 번 그 내용을 풀어보려 노력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말을 하다 보면 이야기가 가지는 전반적인 흐름이 생생하게 체감된다는 데 있습니다. 말은 글의 습작과도 같아서 직접 소리 내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그게 상대에게 어떻게 전달될 것인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먼저 전달해 보면, '아, 이 내용은 끝이 좀 흐지부지하게 끝날 수 있겠구나'라든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려면 비슷한 에피소드가 하나는 더 있어야겠다' 혹은 '이 포인트를 설명할 때는 좀 더 상세하게 묘사해 줄 필요가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실제 글로 쓸 때는 무엇을 빼고 무엇을 추가해야 할지 글에 대한 대략적인 스케치가 가능한 거죠.
다른 하나는 화법의 통일성에 있습니다. 물론 말과 글의 화법이 반드시 일치하거나 비슷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직 글로만 표현이 가능한 그 특유의 분위기가 존재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말하는 화자가 명확히 존재하고, 사람들이 그 화자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분명한 경우라면 말하는 주체가 가진 인격이 글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나게 하는 게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략일 겁니다.
글로 해야 할 이야기를 일단 말로 풀어보면 내가 하고 있는 이야기가 위로의 화법인지, 다그침의 화법인지, 권유의 화법인지, 감탄의 화법인지, 질문의 화법인지, 공감의 화법인지 디테일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니 내용만큼이나 전달하는 방식이 중요한 글을 써야 한다면 우선 말을 통해 그 글의 분위기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만약 누군가에게 매번 대화를 건넬 수 없다면 조금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해 봐도 좋습니다. 메시지는 떠오르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가 다소 막막할 때 저는 녹음 앱을 켜서 혼자만의 대화를 남겨놓습니다. 운전해서 출퇴근하는 그 30분 남짓 한 시간 동안, 짤막하게라도 떠오른 생각을 말로 스케치해 두는 것이죠.
처음엔 다소 민망한 기분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은 특정한 대상에게 보이스 메일을 남겨놓는다는 생각으로 곧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특히 요즘엔 녹음 파일을 텍스트로 변환해 주는 기능도 있으니 제가 한 이야기를 곧바로 글로 바꿔 읽어볼 때도 많고요.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말이 글의 화법에 영향을 주고 다시 글의 화법이 내 말에 영향을 주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게 말하듯 글을 써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박진영의 말처럼 우리글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 이 사람 더 잘 이야기하고 싶어서 말이 아닌 글로 쓴 거네'라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걸 목표로 삼아보는 거죠.
이번에도 음악에 한 번 비유를 해볼까요? 음반에서 음원으로 그리고 실시간 스트리밍의 시대로 변하며 대중음악의 트렌드도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최근에는 인트로에 해당하는 도입부와 곡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간주를 최소화해서 길어도 3분 30초를 넘지 않는 짧은 곡이 대세죠. 게다가 시작부터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사람들이 쉽게 스킵을 해버리기 때문에, 가사 역시 후렴이 아닌 시작하는 첫 소절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고 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승부를 봐야 하는 스토리텔링이 음악 콘텐츠에까지 영향을 주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어떤 분들은 긴 글을 써야 하는 순간이 오면, 글의 전개와 구조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혹여나 이야기가 산으로 가거나 비슷한 말을 반복하게 될까 봐, 무슨 말을 어떻게 풀어갈지 하나하나 계획을 짜보는 거죠. 이 과정은 당연히 필요하고 너무나 훌륭한 글쓰기 습관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 프로세스에 매몰되어 늘 기승전결의 구조 잡기에만 매달리면 자칫 적당히 구색만 갖춘 글이 되기 쉬운 것도 사실입니다. 즉, 딱히 무엇 하나 빠진 것은 없는데 읽는 이로 하여금 큰 매력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글이 탄생하는 거죠. 마치 필요한 모든 전개와 적절한 코드 진행과 알찬 가사를 갖추고도 히트하지 못하는 음악과 같달까요. 그래서 우리에겐 정통적인 구조의 압박에서 벗어나, 임팩트 중심으로 글을 바라보는 관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임팩트 중심의 구조란 단순하고도 명확합니다. 바로 '어디서 어떻게 절정을 만들 거냐'의 문제거든요. 클래식한 스토리텔링이 발단-전개-절정-위기-결말의 순서를 따른다면, 임팩트 중심의 스토리텔링은 주변부와 중심부 딱 이 두 가지의 구조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임팩트를 주기 위한 절정의 순간을 설정해 놓고, 그 나머지는 본인이 이야기하기 가장 편한 방법으로 시선을 끌어모으는 방식인 거죠. 이렇게 하면 구색을 갖추기 위한 압박에서 벗어나'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 메시지에 도달하는 경로'라는 명확한 명제 두 가지만 남습니다.
그러니 만약 글을 길게 써 내려갈 자신이 없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부터 먼저 써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이야기까지 오는 길을 효과적으로 만들지 고민해 보는 거죠. 글은 써 내려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빚어내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물 흐르듯 유려하게 써야 한다는 환상은 잠시 내려놓고, 어린 시절 점토를 가지고 놀던 마음으로 붙이고, 자르고, 깎고, 다듬으며 내가 표현하고 싶은 형상을 점차 입체적으로 만드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예전에 저희 회사에서 사내 공모로 서비스 기획 문화를 소개하는 미니 백일장을 개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담당자분이 응모 페이지 요강에 '400자 분량의 짧은 글'을 '4,000자 분량의 짧은 글'이라고 오타를 내는 바람에 사람들 모두 식겁하는 사태가 벌어졌죠.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금방 오타를 바로잡았지만 저희 팀 동료 한 분이 처음 내용만 읽은 채 혼자 4,000자 분량의 글을 써서 제출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났습니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담당자가 팀 동료에게 별도로 사과하러 찾아왔는데, 정작 본인은 호탕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게 왜 미안할 일이에요. 오히려 지금 제게 이 분량을 다시 400자로 줄이라고 하면 그게 더 힘들 것 같은데요? 다른 사람들이 운문부로 응모했다면 저는 그냥 산문부로 응모했다고 생각해 주세요. 하하.”
그러게요. 아마 400자로 쓴 글을 4,000자까지 늘여보라는 미션을 줬거나, 반대로 4,000자를 400자로 줄여보라고 주문했으면 머릿속이 훨씬 복잡했을지 모릅니다. 대신 애초에 분량이 다르다고 인식하고 나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그 종합적인 로드맵 역시 아예 달라지는 거죠.
그때 저는 작게나마 깨달은 거 같습니다. 글이든 콘텐츠든 정작 중요한 건 분량이나 포맷 자체가 아니라, 그 형태에 접근하는 관점과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러니 여러분도 긴 글을 그저 총량의 무게가 늘어난 것이라고 여길 게 아니라, 경험의 결이 달라진 거라고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요?
100미터 가야 할 길이 1킬로미터로 늘어났다고 해서 같은 길을 열 번 오가는 게 아닌 것처럼, 때로는 그 거리에 맞는 새로운 경로를 구상해 보는 노력이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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