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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리팩토링: 개발자의 성장법] 5. 당근 공통서비스개발 팀 박미정 리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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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리팩토링: 개발자의 성장법] 5. 당근 공통서비스개발 팀 박미정 리더 인터뷰
Editor’s note
어떤 직업이든,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공통적으로 묶어주는 특징이 있지만, 막상 개개인을 들여다보면 업무 원칙이나 커리어, 성장에 관한 관점, 자신만의 노하우가 다 다릅니다. 개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발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다루는 기술스택, 도메인, 커리어와 성장에 대한 관점과 노하우 등은 모두 다릅니다. 요즘IT 기획 [커리어 리팩토링: 개발자의 성장법]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다양한 커리어를 다져온 개발자 한사람 한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며, 이 시대 개발자들에게 다양한 성장의 길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
이번에 소개할 개발자는 SI 대기업,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법인, MAU 1천 만 기업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8년째 리더 개발자로 활동하며 팀 빌딩과 조직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인물입니다. 바로 지역생활 커뮤니티 ‘당근’의 공통서비스 개발팀 박미정 리더입니다.
그는 스스로 “어릴 때부터 코딩을 좋아했던 ‘긱(geek)’은 아니”며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매 순간 그런 현실적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 주어진 상황을 경험했고, 그렇게 쌓인 직관과 실력으로 자신의 욕구와 상황을 냉철하게 평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지를 기준으로 다음 스텝을 선택했기에 이직과 성장이 함께 이뤄졌고요. 즉 자신의 성장을 목표로 회사 생활을 선택했기에 회사를 통해 성장하고, 성장을 통해 회사에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현실적 선택이 현명한 선택이 된 것이죠.
처음엔 컴퓨터 공학이 싫어 자퇴를 고려했으나 ‘한 학기만 해보고’ 판단하기 위해 몰입했다가 흥미를 느껴 계속 개발자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졸업 후 다양한 웹 개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판단으로 SI 대기업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죠. 하지만 주도적 개발 환경을 원해 3년차에 퇴사, ‘나오는 김에 좋아하는 거 해보자’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임베디드 분야를 공부했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 취업은 ‘재밌는 거 해봤으니 이제 돈 좀 벌어보자’ 싶어 웹 분야로 선택했고, 스타트업에 취업해 극단적으로 주도적인 문화를 경험합니다. 이후 큰 기업을 경험해보고자 네이버 랩스, 쿠팡을 거친 뒤, 해외 경험을 꿈꾸게 되죠. 그렇게 우아한 형제들 베트남 법인에서 개발 리더로 일했고, 베트남 생활 2년 후 무신사를 거쳐 2023년 당근에 합류, 현재 공통서비스개발 팀과 인터널 프로덕트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다양한 회사를 경험하며 리더로 성장해온 경험이 많은 만큼, 직장생활을 하며 성장을 고민하는 개발자들에게 도움이 될 판단과 경험이 많습니다. 또 그는 16개월짜리 아기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기도 한데요. 여성 리더가 적은 환경에서 가정 생활과 경력 개발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데 고민을 갖고 있는 여성 개발자들에게도 참고할 만한 사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의 ‘현실적 선택’이 ‘현명한 선택’으로 드러나기까지, 회사를 통해 성장하고, 성장을 통해 회사에 기여해온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박미정 당근 공통서비스개발 팀 리더
첫 프로그래밍: 대학교 1학년 첫 언어: C 첫 컴퓨터: ? 특이사항: SI 대기업을 퇴사한 뒤 근무한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내부에서 먼저 제안을 받고 전형 과정을 통해 입사했다. 한 회사에서 길면 2년 안팎의 기간 동안 근무했다. 대학 전공 :컴퓨터 공학
주요 활동 이력: SI 대기업 - 쿠팡 - 네이버 랩스 - 우아한 형제들 베트남 - 무신사 - 당근마켓 처음엔 컴퓨터 공학이 싫어 자퇴를 고려했으나 ‘한 학기만 해보고’ 판단하기 위해 몰입했다가 흥미를 느껴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다양한 웹 개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판단으로 SI 대기업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주도적 개발 환경을 원해 스타트업으로 이직, 이후 네이버 랩스, 쿠팡을 거치며 해외 경험을 꿈꿨다. 그렇게 우아한 형제들 베트남 법인에 백엔드 팀장으로 합류, 베트남 생활 2년 후 무신사를 거쳐 2023년 당근에 자리해 현재 공통서비스개발 팀과 인터널 프로덕트 팀을 이끌고 있다. |
“회사와 도메인이 다양해졌다는 건 오히려 같이 일하게 될 사람들도 되게 다양하게 겪어봤다는 이야기예요.”
Q. 현재 당근에서 공통서비스 개발 팀 리더를 맡고 계시죠.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당근에 여러 서비스 개발팀이 공통으로 필요로 하는 영역을 도출해 하나의 플랫폼을 제공하는 일을 해요. 예를 들어 내부 통신에 많이 사용되는 카프카의 운영/관리, 이미지 혹은 영상 관리를 위한 시스템 구축 등의 일을 하죠. 또 인터널 프로덕트 조직도 리딩하고 있어요. 인터널 프로덕트는 어드민 및 구성원의 인증, 권한을 관리할 수 있는 도구처럼, 내부 구성원이 쓰는 툴을 만드는 곳이에요.
두 가지 팀 모두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어요. 고객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미션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다듬고 있죠. 그렇지 않으면 쏟아지는 요청에 끌려다니다가 정체성이 더 흐릿해지니까요. 기준을 세우고 그에 따라 일을 가져오는 작업을 하는데, 재밌어요.
Q. 당근은 어떻게 합류하게 되나요?
무신사 나와서 쉬고 있는데, 원래 당근에 계셨던 지인 두 분이 티타임을 하자고 하셨어요. 공통서비스개발 팀이란 게 새로 생길 건데, 제가 잘할 것 같아 추천하고 싶다고 하셨죠. 저는 ‘서비스 앞단을 개발하던 사람인데 공통서비스개발 팀은 플랫폼단 조직 아니냐, 왜 제가 잘할 거라 생각하냐’ 물었죠. 서비스 개발을 충분히 경험해봤으니, 서비스 개발자들의 고충을 잘 알 수 있는 사람이라서 추천했다고 하시더라고요. 팀 리딩 경험도 있고, 제가 평소에 올리는 글을 통해 맥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부분을 알고 계셨는데, 그 점도 좋게 봤다고 하셨고요.
사실 더 쉴까 생각하기도 했고, 큰 규모 조직보다는 작은 곳을 가고 싶었던 때라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어요. 그런데 면접 경험이 너무 좋았어요. 제가 갖고 있는 시스템 디자인, 아키텍처 경험의 장점을 이끌어내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 같았죠. 제가 잘하는 일과 도전적인 일을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개발팀을 꾸리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찾고 적합한 프로세스를 통해 일이 되게 만드는 건 제가 잘하는 일, 내부 개발자가 고객인 건 도전적인 일이라고 봤죠.
Q. 지금은 이렇게 트래픽이 큰 조직에서 개발 리더를 하고 계신데, 사실 예전에는 컴퓨터 공학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까지 고려하셨었다고요. 어떻게 계속 개발자로 일하게 되신 건가요?
대학교 가기 전까지는 컴퓨터 활용이라고는 메신저나 싸이월드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전부였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컴퓨터 전공이 취업이 잘된다고 하셔서(웃음) 성적에 맞춰서 가게 됐죠. 그러다 보니 흥미도 못 느끼고 재미도 없어서, 적성에 안맞다고 생각했어요. 엄마에게 1학년 다니고 자퇴하겠다 했더니, “딱 한 학기만 진짜 열심히 해보고, 그래도 안 맞으면 그때 해라” 하셨어요. 제가 그렇게 자극을 받으면 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한 학기는 열심히 해볼 생각이 들었죠.
막상 열심히 해보니 재밌었어요. 콘솔에 뭔가를 치면 그대로 결과가 나오는 게 신기했죠. 특히 대학교 2학년 때 한 연구실에 학부 연구생으로 들어갔는데, ‘위Wii’ 컨트롤러 프로젝트를 했어요. 제가 코딩한 대로 컨트롤러가 동작되는 게 너무 신기해서 그 세계에 빠졌죠. 그래서 자퇴를 안 하고 오히려 컴퓨터 공부를 제대로 하게 됐어요.
Q. 첫 직장은 국내 SI 대기업이었죠. 지금의 커리어 트랙과 많이 다른 것 같은데, 왜 거기로 가신 거예요?
당시는 지금처럼 취업할 때 ‘네카라쿠배’가 떠오를 만큼 성공한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 많지 않던 시대였어요. 그래서 주변 선배들도 대기업에 많이 지원했죠. 저도 당시 짧은 생각으로는 다양한 분야의 개발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른 게 대기업 SI였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주도권이 없고 내 제품을 개발하는 게 아니어서 흥미가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테크 업계 스타트업 위주로 커리어를 쌓아왔던 것 같아요.
Q. SI 대기업에서 퇴사한 뒤에는 대학원에 가셨어요. 전공도 웹이 아니고 임베디드를 선택하셨는데, 막상 그 뒤에 취업할 땐 또 임베디드를 계속 하지는 않으셨어요.
맞아요. 퇴사할 때는 재밌는 거 해보자 싶어서, 학부 때 흥미 느꼈던 임베디드로 진학했었죠. 거기서 재밌게 연구도 하고 결과도 좋았어요. 그런데 이걸로 박사를 하자니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이제 2년 동안 재밌는 것 충분히 했으니 돈 벌러 가자는 생각이 컸죠. 다만 SI가 아닌 곳, 주도권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죠. 우연히 코빗이라는 스타트업 극초기에, 코빗 CTO분의 소개로 거기서 일했어요.
Q. 처음 스타트업에 가보니 어땠나요?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는 걸 충격적으로 깨달았죠. 일을 하면서 내가 하는 일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고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전 직장에서는 그렇게 하는 걸 선배들이나 고객사 모두 불편하게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게 됐어요. 그런데 코빗에서는 자꾸 저에게 의견을 물어보더라고요. 심지어 개발이 아닌 영역에서도 ‘너 같으면 어떻게 쓸 것 같냐’고 물으면서 의견 내기를 자꾸 독려하더라고요. 저는 ‘이게 가능해?!’라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그때부터 그런 스타트업 문화를 가진 곳을 찾아 다니게 됐어요.
Q. 스타트업 이후에 쿠팡, 네이버 랩스 거쳐서 배달의민족(이하 배민) 베트남으로 가셨죠. 베트남에서 일하신 경험이 특이한 것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이동하게 되신 건가요?
스타트업 나와서 조금 규모 있는 데서 일해보고 싶어서 쿠팡, 네이버 랩스를 다녔는데, 또 새로운 경험에 목이 말랐어요. 국내 기업에서는 이직을 많이 한 만큼 다양한 도메인이나 기업 규모를 경험했으니, 환경을 아예 바꿔보고 싶기도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섣부른 판단이었지만요. 그래서 실제로 독일로 일하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즈음 배민 베트남 당시 CTO분과 배민 김범준 전 대표님이 티타임을 하자고 연락을 주셨어요. 베트남 법인을 만들 건데 가볼 생각 없냐고 제안을 주셨죠. 제가 당시 느끼고 있던 갈증도 말씀드렸더니 딱 맞을 것 같다고 하셨고요. 저는 기민하고 주도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좋아하고, 빠르게 성과 내기를 좋아하는데 저랑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아무도 모르는 독일로 가는 것보다 아는 사람과 함께하면서도 환경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 합류했죠.
Q. 이직이 잦으셨잖아요. 거기에 부담감은 없으셨나요?
커리어 초반에는 그런 압박이 있었어요. 도메인도 SI에서 갑자기 비트코인, 커머스, 왔다갔다 했으니까요.주변 선배들도 우려하는 피드백이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크게 개의치 않았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사람도 있는 거지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지금와서 보니 경험한 서비스 도메인과 회사 규모가 다양해지는 게 역량 성장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제가 갖고 있는 역량은 어떤 문제를 기술적으로 풀어내는 것과 팀으로 함께 성과내는 역량이라고 생각해요. 이 역량을 키우는 데 팀 사이즈와 회사 도메인이 바뀌는 게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회사와 도메인이 다양해졌다는 건 오히려 같이 일하게 될 사람들도 되게 다양하게 겪어봤다는 이야기예요. 그게 리더로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세상에 참 다양한 성향의 사람이 있다는 데이터가 많이 쌓여서 현재 매니징 역량에도 도움이 많이 된 것 같고요.
Q. 그런데 앞서 말씀해주셨던, 배민 베트남 CTO분의 티타임은 어떻게 제안받으신 거예요?
배민 베트남 CTO분은 원래 알던 분이었어요. 언젠가 한 번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하셨었는데, 그분도 베트남 팀 빌딩을 해야 하는 시점에 제가 갑자기 생각이 났대요. 그래서 연락을 주셔서 만났고, 제가 바로 수락하지 않으니 범준 님까지 연결해서 같이 만난 거죠. 범준 님도 온라인 상에서 교류가 있던 분인데 실제로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온라인에 제가 포스팅한 글을 보시고 제 성향과 베트남 일이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하셨대요.
Q. 무신사도 배민 베트남에서 같이 일하던 CTO분이 옮기시면서 같이 가셨고, 당근도 티타임 제안을 받고 옮기셨죠. 이직이 사람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았어요. 그렇게 사람과 접점을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떤 활동이 있나요?
연차가 낮은 시절부터 세미나나 컨퍼런스에 스피커로 신청해서 발표했어요. 제가 어떤 주제로 발표를 하겠다고 선언하면, 그 공부를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내가 잘 아는 걸 발표한다기보다는 공부해야 하는 게 생기면 그걸 발표하겠다고 스피커 신청을 하는 거예요. 합격이 되면 바짝 준비해서 발표하는 거죠. 나름의 학습 방법으로 컨퍼런스를 활용한 거예요.
그런 데서 만나는 분들, 피드백 주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런 분들과 초반에 관계가 쌓이기 시작했죠.
또 저는 온라인에 글을 계속 썼어요. 공유에 목적이 있었다기 보다는, 스스로 소극적인 관종이라고 생각하거든요(웃음). 어릴 때부터 온라인 활동을 많이 해서 익숙하기도 했고요. 그런 기본적인 기질이 이어져서 페이스북이랑 미디엄에 제 생각을 적어 올렸어요. 그게 반응이 좋았어요. 제 생각에는 뭔가 여성 개발자가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기술적 내용을 적어 올리는 것 자체가 희소성이 있어서 관심을 받았던 게 아닌가 싶어요.
어쨌든 반응이 좋아서 계속 올리게 됐죠. 제가 공부한 걸 올리면 이건 틀렸다거나 이렇게 더 생각해보면 좋겠다, 이런 피드백이 많이 들어왔어요. 저도 온라인에서 공유된 글이나 자료를 보고 관심이 생기면 작성자에게 메시지를 드리기도 했고요. 그런 인연들이 쌓였어요.
Q. 자기를 드러낸다는 게 두렵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엄청 신경쓰였죠. 처음에는 내가 틀렸다는 댓글이 달리면 막 숨고 싶기도 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스스로 공부하고 경험한 걸 올리는데 왜 내가 틀렸다고 하지’, ‘나 잘하는데’, 이런 생각이 많았어요. 그런데 경험이 쌓일수록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오히려 틀린 점을 찾기 위해 공유한다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면서 편안해졌죠.지금은 누가 제 말이 틀렸다 해도 타격감이 별로 없어요.
Q. 그렇게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나요?
리더 경험이 컸던 것 같아요. 처음 리더를 할 때는 리더란 답을 줘야 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팀장은 가장 많이 알고 있어야 하고 늘 가장 좋은 답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렇게 하면 팀 운영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런 경험을 몇 번 하고서 리더십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공부하다 보니, 팀장이 기술적이든 도메인이든 업무 경험에서 충분히 경험과 역량이 있어야 하는 건 맞지만, 항상 모든 걸 잘하고 항상 옳은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아닐 수 있더라고요. 오히려 팀원 중에 그걸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고, 없다면 키워서 위임할 수 있는 게 좋은 리더십이란 걸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나도 틀릴 수 있다, 그게 당연한 거다, 라는 생각이 생겼고, 틀렸다는 사실을 피드백을 통해 알게 되면 오히려 좋은 거라고 관점이 바뀌었어요.
“시니어란 개인의 일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옆 사람, 동료들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에요”
Q. 전체 경력 15년 중에 개발 리더로 약 8년 정도 일하셨죠. 리더십 공부는 어떻게 하신 거예요?
저는 공부할 내용을 지금 겪고 있는 문제로 한정 짓고 파고들어요. 리더십 책을 읽다가도 거기 ‘원온원’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 하면 실제로 그 주 원온원했던 때를 떠올려봐요. 그러면 책에서 ‘하지말라’했던 것 중 한 게 있더라고요. 내 얘기만 많이 했다던가, 팀원의 말을 잘랐다던가, 액션 아이템을 정하지 않아서 다음 미팅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던가 하는 게 떠오르죠. 그러면 그걸 다음 원온원에서는 어떻게 개선할지 액션 아이템을 정해서 메모했어요. 기술적인 학습을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문제가 명확해야 뭘 공부하고 어떻게 써먹을지가 명확해지더라고요.
Q. 팀장, 리더의 자리를 갖는 것과 별개로 스스로 ‘내가 시니어구나’ 느끼고 이전에 해오던 방식과 다르게 역할 정의를 해야겠다고 느끼게 된 순간이 있나요?
배민에서 관리해야 하는 팀원이 많아지고, 매니징해야 하는 영역이 다양해지기 시작하면서 ‘멘붕’이 좀 왔어요. 팀이 작을 때는 제가 개인적으로 뭔가 구현해내는 개인적 성과가 팀에 많이 반영되던 상황이었는데, 규모가 커지면서 달라졌거든요. 그때까지는 스스로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도 사람 관리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팀원들도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어요. 스스로 역량 부족이라고 느꼈죠.
시니어란 게 개인의 일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옆 사람, 동료들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 그리고 그 영향력이 계속 넓어지는 사람인데, 제가 그걸 하나도 못 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욕심도 많아서 밤에 5-6시간씩 야근해가면서 굳이 개발 일도 놓지 않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그러고 있는 게 ‘병목’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개인적 욕심을 내려놓고, 내가 팀장으로서 지금 해야 하는 일, 가장 중요한 일이 뭔지를 생각하면서 우선순위를 정해갔어요.
내가 해야 하는 일 자체를 정리하는 훈련을 스스로 하면서 리더로서 진짜로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고, 그 일은 팀원들이 일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제거해주고,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거였어요. 그렇게 하니 팀이 성과를 더 잘 내더라고요. 팀원들의 만족감도 높아졌고요.
Q. 리더 자리에 있다 보면 후배들의 고민도 많이 들으실 것 같아요. 주로 어떤 고민을 많이 이야기하나요?
주니어 개발자들이 두 가지 포인트를 많이 이야기해요. 하나는 바로 옆에서 기술적인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사수가 없다는 고민. 두 번째는 기술은 어느 정도 다루는 것 같은데, 여기서 더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에요.
Q. 그러면 그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해주시나요?
첫 번째 포인트의 고민을 하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사실 본인이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지에 대한 목표가 구체적이지 않아요. 막연하게 ‘스프링을 잘하고 싶다’ 하는 거죠. 그걸 왜 잘하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하고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해요. 훌륭한 사수를 만나는 사람이 오히려 더 소수예요. 현재 자신이 처한 문제가 뭐고, 그걸 개선할 방법이 뭔지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아요. 그런 게 없다면 아무리 좋은 선배가 옆에 있다 한들 그 선배한테 좋은 걸 배울 수 없어요. 그래서 그런 분들께는 ‘그걸 왜 잘하고 싶은데요’를 먼저 물어봐요.
두 번째 케이스에 대해서는 어떤 특정 지식을 깊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제발 내려놓고, ‘어떻게 하면 일을 잘하지’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라고 해요. 스프링을 정말 잘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어떤 요구사항이 주어지면 그걸 코드로 풀어내는 건 정말 잘했어요. 그런데 요구사항에서 약간 플러스 알파가 생기면 동작하지 않는 코드인 경우가 꽤 있었죠. 이 친구는 요구사항을 확장적으로 이해하지 못 한 거예요. 요구사항이 바뀔 가능성은 없나 고민하고 확장성, 유연성을 생각해서 코드에 녹여야 하는데, 눈앞에 주어진 구현 단계만 생각한 거죠. 그래서 하나를 잘 구현하는 것을 넘어 일의 시작과 끝, 그 전체 프로세스를 넓게 보라는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Q. 어떻게 하면 그렇게 시야를 넓힐 수 있나요?
저는 리뷰를 활용하라고 해요. 지금 팀원들에게도 시도하고 있는 건데요, 우리가 이번주에 해결할 일을 이야기 나눈 뒤, 스스로 이해한 것을 이야기해달라고 해요. 그리고 그게 무엇을 해결하기 위함인지 설명하도록 하죠. 그렇게 해서 그 이해가 저와 비슷한 선상에 있으면 진행하는 거예요.
복잡한 문제는 그걸 코드로 쓰기 전에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거고 통신 구성은 어떻게 할 건지 먼저 리뷰하자고 해요. 거기서 합의가 되면 구현을 해서 코드리뷰를 하는 거죠. 이렇게 반복해서 합을 맞추고 여기에 경험이 쌓이면 그때부터 이런 것까지 리뷰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하겠지라는 신뢰가 쌓이고, 위임할 수 있게 되죠.
“일하는 엄마이지만 아기와 멀어지지 않는 엄마이고도 싶어요.”
Q. 미디엄 블로그에도 써두셨지만, 여성 개발자로서 어려우셨던 점이 있으셨죠. ‘두 배를 일해야 반만 인정받는다’고도 하셨었는데 그게 어떤 건가요?
사실 첫 직장에서 그런 경험이 컸어요. 신입 때 유지보수 프로젝트에 들어갈지 신규 개발 프로젝트에 들어갈지 선택할 수 있었어요. 저는 당연히 개발을 하고 싶었죠. 신규 입사자 교육에서 제가 전체 1등을 하기도 했고, 팀에 상금도 갖다줬어요. 당연히 개발 프로젝트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저의 남자 동료를 개발 프로젝트에 넣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는 심지어 그렇게 원하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팀장님께 “내가 하고 싶다” 했더니 “그 개발 프로젝트는 밤을 많이 새우기 때문에 여자들은 힘들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 밤 되게 잘샌다 어필하면서 겨우겨우 거기 투입됐고요.
거기서도 제가 개발할 거 다 끝내고 시간이 남아서 6개월 선배 개발자 일을 도와주고 그랬어요. 그런데 제가 그분보다 더 낮은 평가를 받더라고요. 그 상황이 납득이 잘 안 됐죠. 주변에서는 ‘네가 여자라서 그래’ 라는 얘기를 많이 했고요. 그래서 그다음 프로젝트에서는 내가 이번에 한 것보다 훨씬 많이 해야겠다 생각해서 밤도 더 많이 새고 더 열심히 개발했어요. 그러다 보니 조금씩 원하던 평가가 나오더라고요.
그 이후에도 “여자 개발자는 처음이다” “여자 개발자 치고 잘하네”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어떤 팀원은 “여자 개발자를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너의 기술적 의사결정을 의심했다. 그걸 사과하고 싶다”라고 털어놓기도 했어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뭘 얼마나 더 해야 ‘개발자’ 앞에 다른 수식어가 빠지는지, 좀 힘이 빠지고는 했죠.
Q. 후배 여성 개발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많이 털어놓나요?
제가 예전에 경험했던 것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 같기는 해요. 그래도 반 정도는 그런 고충을 털어놓아요. 여성 개발자가 조직에서 유일하거나 회사에서 소수이다 보니 의사결정에서 소외받는다는 느낌을 갖는다고요. 그런데 결국 결정되는 걸 보면 자기가 이야기했던 건데, 그 얘기를 자기가 아닌 다른 남성 동료가 한 것처럼 되어버린다는 케이스가 좀 있었어요.
Q. 그런 소외감 느끼는 여성 개발자들에게 어떻게 조언하시나요?
예전 같았으면 ‘극복해라’ ‘잘한다는 걸 보여줘라’ 라고 했을 텐데, 지금은 ‘애쓰지 말라’고 해요. 혼자 애써도 그런 분위기가 많이 바뀌지 않을 거고, 그럴수록 더 힘들어져요. 오히려 그 문제에서 애써야 하는 건 주니어 개발자가 아니라 경력이 많은 선배들이죠. 그런 구조적인 걸 바꾸는 건 그걸 바꿀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게 맞아요.
Q. 현재는 16개월짜리 아기를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하죠. 일과 육아 병행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저는 원래 일에 절대적인 시간을 많이 쓰던 사람인데, 지금은 5시 이후로는 업무에 신경쓰지 않는 훈련을 많이 하고 있어요. 업무 이후에는 아이에게 집중하고 싶거든요. 일하는 엄마이지만 아기와 멀어지지 않는 엄마이고도 싶어요.
그래서 열심히 훈련중인데, 아직 이질감이 있기는 해요. 내가 이래도 되나 싶죠. 그래도 6시에 일을 시작해서 5시에 무조건 끝내려고 해요. 아기가 자는 시간 중에 고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인지 몇 번 테스트해보니, 아침 6시부터 오후 5시까지더라고요. 그동안은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죠. 그래서 웬만한 장애가 터지지 않는 이상 5시 이후 핸드폰도 안 보고 노트북 켜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데 일을 이정도만 해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아직 있어요. 이 부분은 제가 극복해야죠. 아기가 더 중요하니까요.
“커리어 패스는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반영된 결과예요.”
Q. 계속해서 그다음 단계로 성장하려고 여러 노력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게 꾸준히 움직이는 원동력이 있나요?
예전에는 그냥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자기 효능감을 많이 느끼고 싶어하던 사람이었고요. 나를 증명하고 싶었죠. 나 이런 거 할 수 있어, 할 줄 알아, 라는 게 커리어 초반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은 많이 없어졌어요. 지금은 오히려 내가 월급을 받는 만큼 회사에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를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팀원들에게도 항상 기술에 국한된 의사결정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본인이 선택한 기술, 본인이 작성한 코드가 결국 회사에서 무엇을 해결해주기 위해 한 선택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하죠.
Q. 커리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를 찾는 일 같아요. 커리어 패스는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반영된 결과예요. 엄마로 아기를 보며 지내든, 실무를 하든, 팀장을 하든 내가 선택한 삶이 반영되죠. 내가 그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커리어를 돌아보면 알 수 있어요.
Q. 개발자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다지기 위해 필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개발을 놓을 줄 아는 게 아닐까 해요. 개발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가장 위험하다고 봐요. 김범준 전 대표가 EO 영상에서 개발자가 개발만 자기 일로 생각하는 순간 회사에서 기여 가치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을 하셨어요. 내가 쓰는 기술, 내가 만드는 코드가 최종적으로 무엇을 제공하는지 생각해야 해요.
Q. 무엇이 성공한 개발자인가요?
저는 제가 나름대로 성공한 개발자라고 생각해요. 돈을 받고 일하는 데 부끄럼이 없거든요. 내가 경험하고 싶고 쓰고 싶은 기술에 국한되기보다 회사를 위해 일하고, 회사가 만든 서비스를 위해 일해요. 또 동료들이 종종 연락해 “영감을 얻었다”는 메시지를 주는 걸 보면, 동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서 뿌듯해요.
Q.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세요?
모르겠어요. 이전보다 큰 그림을 보고 더 큰 범위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팀 단위를 매니징하지만 저의 리더인 실장님을 보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지금 단계에서 한 단계 위의 리더십은 뭘까를 요즘 많이 고민하는 것 같아요.
어쨌든 혼자 잘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 같이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생각을 해요. 영향력 범위가 넓어지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제가 관리하는 팀원,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많이 관찰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어디에 어려움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어떻게 같이 해결할 수 있는지 많이 이야기 나누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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