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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품은 파페치, 제대로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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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BM 톺아보기⑪

 

작년 12월 쿠팡이 갑자기 파페치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쿠팡은 이제 국내 최대 규모의 리테일 기업인 동시에, 네이버, 카카오의 뒤를 잇는 빅테크 기업이기도 한데요. 이처럼 쿠팡의 행보는 여러모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에, 이번 인수 소식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출처: Farfetch>

 

하지만 막상 파페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파페치의 존재 자체를 아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그보다 먼저 네이버가 인수했던 포시마크는 북미 지역 사업자였기에, 대형 인수 건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듣는 회사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반면 파페치의 국내를 포함한 글로벌 1위 명품 커머스 플랫폼이었기에 국내 이용자 규모도 상당했고요. 적어도 이름 정도는 많이 들어봤던 거죠. 그러나 파페치가 어떤 회사고, 어떻게 돈을 버느냐고 물어봤을 때, 이를 명쾌하게 설명할 정도였다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쿠팡 인수 직후에는 이제 로켓 배송으로 명품을 받게 되는 거냐 정도의 피상적인 해석이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파페치라는 서비스에 대해 파헤쳐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첫 탄생부터 어떤 이유로 성장해 왔고, 결국 매각이라는 극약처방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펴보고요. 이를 바탕으로 향후 쿠팡이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까지 간단히 전망해 보겠습니다.

 

패션을 사랑했던 IT 개발자가 만든 서비스

우선 파페치라는 서비스를 이해하려면, 설립자이자 현재 CEO인 호세 네베스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합니다. 네베스는 1974년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태어났는데요. 이미 8살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했고, 결국 그가 사랑에 빠진 분야는 패션이었습니다. 대학에 다니면서 패션 산업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디자인하면서, 패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데요. 그리고 1996년에 소규모 패션 브랜드를 위한 소프트웨어 회사 Platforme을 통해 첫 사업을 시작합니다.

 

<출처: Financial Times>

 

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에만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같은 해, 스웨어(Swear)라는 자신만의 신발 브랜드를 출시합니다. 그리고 2001년에는 런던에서 패션 부티크인 비-스토어(B-Store) 사업도 시작했는데요. 이를 통해 패션 분야의 전문성을 더욱 키워갑니다. 그는 당시의 자신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22살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고, 모든 일에서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나요? 저 역시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신발 디자인, 모두를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파페치는 이러한 그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모여 탄생한 서비스였습니다. 우선 스웨어의 웹사이트를 만들면서 이커머스의 잠재력을 직접 느꼈고요. 비-스토어에서는 충분한 매력을 가졌지만, 자신을 홍보할 방법이 없는 작은 브랜드들이 많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네베스는 이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개발 역량과 패션 업계 경험과 네트워크를 모두 가지고 있었죠. 

 

그렇게 그는 2008년 10월 파리 패션위크에서 부티크 오너이자, 업계의 전설 중 하나였던 마리아 루이자와 공동을 개최했던 파티에서 파페치를 정식으로 론칭합니다. 일반적인 커머스 스타트업에선 볼 수 없던 색다른 출발이었는데요. 그만큼 파페치는 첫 시작부터 남달랐습니다.

 

 

이론상 혁신은 완벽해 보였습니다만

사실 파페치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커머스 플랫폼보다는 솔루션 회사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파페치를 시작할 당시 네베스가 주목했던 건 부티크들이었습니다. 명품 브랜드들은 전통적으로 도매상들을 통해 상품을 유통하는데, 이들을 부티크라고 칭합니다. 전자상거래의 영향력이 점차 확산되었지만, 부티크들은 이에 대처할 자본이나 능력이 없었던 건데요. 이들을 위한 기술, 물류, 그리고 판매까지 모든 솔루션을 제공하는 곳이 바로 파페치였던 거죠.

 

<출처: Farfetch F-1>

 

그래서 상장 신고서에서 파페치의 비전을 ‘소비자와 명품 판매자 모두의 복잡한 요구를 해결할 수 있는 단일한 운영 체제를 만드는 거’라 정의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파페치 마켓 플레이스입니다. 우리가 접하는 이커머스 플랫폼 파페치를 뜻하는데요. 이를 중심으로 물류, 마케팅, 결제, 그리고 오프라인 매장까지 포괄하는 솔루션들을 제공하여 시장을 장악한다는 것이 파페치의 야망이었습니다.

 

파페치는 명품 이커머스 시장에 진입한 초기 플레이어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육스, 네타포르테, 마이테레사 등 경쟁자들과 달리 매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중개하는 마켓 플레이스 모델을 택한 것은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철저히 조력자를 자처하며 부티크들의 마음을 샀고요. 그 덕에 다른 곳보다 더 많은 상품 구색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계 최대의 명품 이커머스 기업으로 성장합니다. 2018년에는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에도 성공했죠.

 

<출처: Farfetch F-1>

 

이들이 돈을 버는 방식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온라인 판매에 최적화된 솔루션과 플랫폼을 제공하는 대신, 일정 부분 수수료를 가져가는 구조였는데요. 부티크들에게는 그들이 가져가는 마진의 일부를 가져갔고, 브랜드들에게 역시 부티크 대비 더 낮은 수수료를 요구했습니다. 그들의 설계대로라면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더욱이 전 세계에 갑자기 불어닥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은 파페치에게 엄청난 기회가 됩니다. 이로 인해 온라인 명품 수요가 급상승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이는 동시에 파페치에 위기의 그림자도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시장이 이렇게 급성장하자, 쇼피파이처럼 IT 솔루션을 공급하는 새로운 경쟁자들이 대거 등장했고요. 무엇보다 명품 브랜드 스스로가 온라인 판매에 직접 나서기 시작한 겁니다.

 

 

강력한 차별화가 없을 때 서비스는 결국 무너집니다

파페치 역시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유가 있을 때 미래를 위한 공격적인 투자를 집행합니다. 2019년 오프화이트와 같은 브랜드들을 보유한 뉴가즈그룹을 인수했고, 2022년 4월에는 고급 백화점의 대명사인 니만마커스 그룹에 거액을 투자하기도 합니다.

 

화룡점정으로 같은 해 8월에는 최대 경쟁자였던 육스네타포르테 인수까지 발표합니다. 이들의 노림수는 명확했습니다. 자체 보유한 브랜드로, 혹시 모를 브랜드 이탈을 방지하고요. 투자와 함께 주요 리테일러에 파페치 솔루션을 공급하여, 시장의 표준으로 올라서겠다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효과는 그리 크지 못했습니다. 인수한 브랜드들의 비중은 거래액 대비 5% 정도에 불과했고, 파페치 솔루션들도 의미 있는 점유율과 매출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겁니다.

 

무엇보다 운도 나빴습니다. 엔데믹이 찾아오며, 온라인 명품 수요가 줄어들 거는 어느 정도 예상했을 테지만요. 고물가, 고금리로 인해 경기가 악화되며 소비 시장 전체가 둔화된 것은 치명적이었거든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무리한 투자로 인한 비용 증대는 그대로 손실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파페치의 플랫폼이나 솔루션이 고객들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했다면, 아무리 시장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이렇게 흔들리지 않았을 겁니다. 우선 고객들에게 파페치는 반드시 이용해야 할 서비스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압도적인 구색은 분명 매력적이었지만, 가격이나 편의성 측면은 솔직히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상품 정보도 표준화가 되어 있지 않았고, 배송 경험이 특별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체재가 없을 때야 파페치를 이용했지만, 경쟁자가 늘어나고 오프라인이 다시 열리자 굳이 이를 다시 이용할 이유가 없었던 거죠.

 

<출처: 트렌드라이트>

 

부티크 입장에서도 파페치의 대안은 많았습니다. 쇼피파이 등 손쉽게 자체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솔루션이 넘쳐 났고요. 세계 최대 규모의 플랫폼이라고 하지만, 파페치의 활성 고객 수는 2023년 2분기 기준으로 399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취급하는 카테고리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로컬 사업자인 쿠팡의 활성 고객 수는 무려 2,000만 명에 달합니다. 판매처로써도, 솔루션으로도 대안이 너무도 많았던 겁니다.

 

패션과 테크, 리테일을 엮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겠다는 호세 네베스의 비전은 분명 멋졌습니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세계는 냉혹합니다. 반드시 이를 파페치와 함께할 이유가 없다면, 파트너들은 굳이 의리를 지킬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파페치에는 바로 이러한 고객이든 부티크들을 잡을 수 있는 강력한 차별화 요소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파페치의 패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분명 그가 꿈꿨던 것처럼 언젠가는 럭셔리 시장의 중심축이 다른 산업들처럼 온라인으로 이동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파페치는 분명 그 흐름에서 선두에 서 있었습니다. 네베스처럼 패션 감각과 기술적 이해도를 모두 가진 창업자를 찾기도 어려웠고요. 하지만 확실히 그의 리테일과 비즈니스 역량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꿈꾸던 비전에 비해 파페치가 해온 것들은 생각보다 소박했으니까요.

 

 

쿠팡이 또 해낼 수 있을까?

그런데 오히려 이런 점에서 쿠팡의 파페치 인수는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쿠팡이야말로 바로 그 강력한 차별화를 본인들의 서비스에 녹여내는데 장인이기 때문입니다. 이커머스 시장 내 후발주자였던 쿠팡은 가장 먼저 고객 경험을 개선했습니다. 로켓배송을 통해 고객이 쿠팡을 무조건 써야 하는 이유를 제시했죠.

 

이렇게 고객들이 쿠팡에 묶이게 되자, 판매자들도 쿠팡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쿠팡의 미션이 '어떻게 쿠팡 없이 살았을까?'라고 말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는 건 정말 의미심장합니다.

 

그렇다면 쿠팡은 이후 파페치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까요? 아마 쿠팡은 이후 파페치의 솔루션이든 플랫폼이든 혹은 둘 다이든, 어떻게든 고객과 부티크들이 묶일 수밖에 없는 차별화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할 겁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고객 경험 측면에서 초격차를 만들어 낼지 모릅니다. 상품 구색은 이미 압도적인 만큼, 편의성과 가격 측면에서 일부 개선만 할 수 있어도, 파페치의 플랫폼 경쟁력은 이전과는 달라질 테니까요.

 

아니면 무신사처럼 부티크나 브랜드와의 관계에서 해답을 찾을지도 모릅니다. 무신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능성 있는 브랜드와 동반 성장한다는 파페치와 비슷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생산부터 디자인, 마케팅까지 확실한 실체를 가지고 접근한 덕에, 브랜드들이 다른 곳을 찾아 떠나지 못하게 붙잡을 수 있습니다.

 

다만 명품 시장은 전통적으로 공급자인 브랜드가 절대적인 갑의 지위에 있는 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앞으로 쿠팡과 파페치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장벽 역시, 굳이 아쉬울 것 없는 럭셔리 브랜드들을 설득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일 텐데요. 과연 쿠팡이 파페치 서비스의 차별화를 통해 이를 극복해 낼 수 있을지, 앞으로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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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고 파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https://bit.ly/3GivERH)를 운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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