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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사막, 분쟁국가, 유대교, 인구 약 1,000만 남짓. 이스라엘을 나타내는 키워드만 보면 스타트업과 전혀 상관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스타트업 국가다. 이스라엘에 있는 스타트업만 무려 6,000개 가까이 되며, 해외로 진출한 업체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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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사막, 분쟁국가, 유대교, 인구 약 1,000만 남짓. 이스라엘을 나타내는 키워드만 보면 스타트업과 전혀 상관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스타트업 국가다. 이스라엘에 있는 스타트업만 무려 6,000개 가까이 되며, 해외로 진출한 업체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도시 텔아비브는 2023년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에서 5위를 차지했다. 1위는 실리콘밸리, 2위는 런던과 뉴욕, 4위는 LA이며, 서울은 12위다.
다만 국가 내 정치적 혼란과 전쟁 이슈로 인해 투자금 규모가 불안정한 상황이다. 거기에 스타트업의 직원들 일부가 예비군으로 불려 가는 등 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내가 자주 연락하는 이스라엘 파트너사의 담당자들도 몇 명은 예비군으로 편성되면서 커뮤니케이션 프로세스를 일부 수정해야 했다.
이스라엘이 앞으로도 스타트업 강국의 위치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스타트업 저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별로 주목하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 이번 글을 통해 간단하게나마 소개하면서 함께 배우고자 한다. 현재 전쟁 중인 국가라 관련 글을 쓰는 게 무척 조심스럽지만, 국가 정세에 관한 의견보다는 스타트업 생태계에 주목해 주시길 바란다.
먼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스타트업에는 어떤 회사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리스트에 올린 기준은 유니콘이거나, 우리나라에서의 지명도 등을 고려해 나열했다. 일부는 본사를 미국으로 옮긴 케이스다.
서비스 이름 | 카테고리 |
---|---|
Wiz | 클라우드 보안 서비스 |
Waze | 자동차 내비게이션 서비스 (구글에 인수되었음) |
monday.com | 생산성 서비스 |
Semperis | 액티브 디렉터리(AD) 보안 서비스 |
Rapyd | 핀테크 서비스 |
Appsflyer | 광고 기술 플랫폼 |
Overwolf | 게임 애드온 개발 플랫폼 |
Papaya Global | 글로벌 인력관리 플랫폼 |
Fiverr | 프리랜서 플랫폼 |
Armis | 사이버보안 서비스 |
리스트 가장 상단에 있는 유니콘 Wiz의 기업가치는 무려 13조 원이며, 이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맞먹는 규모다. 이스라엘에 본거지를 둔 유니콘 스타트업을 세어보면 37개, 이스라엘인이 해외에서 창업한 유니콘까지 합하면 무려 94개다.
유니콘 리스트를 훑어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렇게 많은 스타트업들이 탄생하는 생태계임에도 불구하고 게임 회사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처럼 재미를 추구하는 분야보다는 사이버 보안, 생산성, 핀테크, 헬스테크 등 실용적인 기술 위주의 업체들이 많다. 이는 후술할 징병제, 주변 국가와의 잦은 분쟁, 문화의 영향이 클 것으로 본다.
이스라엘은 징병제 국가다. 만 18세 이상의 시민은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군에 복무해야 한다. 남성은 2년 8개월, 여성은 2년이다. 그렇게 대부분의 이스라엘 성인은 군 복무를 하면서 자국의 국방 시스템을 경험하게 될 기회를 얻는다. '아이언 돔' 등으로 유명한 이스라엘의 국방 기술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이에 복무하는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궤도 예측 알고리즘, 테러리스트 금융 추적 기술 등 다양한 IT 시스템을 공부하게 된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에는 사이버 보안 회사가 많은 것이 눈에 띄는데, 군대만큼 사이버 보안 시스템을 진지하게 마주할 환경이 또 있을까 싶다. 단순히 이론적인 공부가 아닌 실제 분쟁 상황에서의 실전인 만큼 귀중한 노하우가 많이 쌓일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국방부에는 '8200부대'라는, 수천 명의 군인들로 이루어진 정보 부대가 있다. 정보 부대인 만큼 자연히 뛰어난 엔지니어들의 양성소 역할로 자리 잡게 되었다.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8200부대 출신 창업자들의 손에서 태어났다. Wiz의 창업자 아사프 레파포트(Assaf Rappaport) 또한 8200부대 출신이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함께 복무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전역일이 다가오면서 '군대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으로 창업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 때, 같이 도전해 보자고 권유할 수 있는 동료를 찾기 정말로 좋은 환경이다. 함께 복무하며 실력과 신뢰, 둘 다 검증된 동료를 찾을 확률이 비교적 높다는 뜻이다.
내가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가장 크게 느낀 특징은 바로 돌직구 화법이다. 동방예의지국 출신으로서 처음에는 이들의 솔직함이 조금 무례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렇게 느끼는 게 비단 우리나라 사람뿐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위 그림은 <When Cultures Collide>라는 책에서 나온 도식으로, 비즈니스 협상 시 나타나는 문화권별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미국부터 살펴보자. 커뮤니케이션은 모든 패를 확인(All the cards on the table)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상대방의 패와 내 패를 까는 것을 반복하면서 합의에 이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협상 도중에 약간의 농담이 섞이고 목소리가 커질 때도 있다. 왠지 미드에서 많이 본 것 같은 장면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단 가벼운 대화로 밝게 시작하다가 협상 이야기로 들어가는 순간 심각해진다. 그리고 '상대적 진실', '좋은 정보만 공유하기' 등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다가, 일단 한 번 거절했다가 다시 합의하는 형태다. 아무래도 서로에 대한 예의와 체면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스라엘 커뮤니케이션 도식은 생긴 것부터 일직선이다. 시작부터 '직설적(direct)' '투명(clear)'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하며, 끝에서는 '실용적인 결론(pragmatic conclusions)'로 마무리된다. '다소 감정이 섞인 합리성(rationality mixed with some emotion)'이라는 부분을 보면 그래도 로봇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솔직하고 투명한 커뮤니케이션 덕분에 빠른 실행이 가능할 수 있다.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 딱 필요한 스타일이다. 우리나라 스타트업에서도 솔직하고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추구하지만, 나타나는 형태가 조금 다른 것 같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이스라엘 동료들의 소통 스타일을 보면 역시 직설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이스라엘의 공식 언어는 히브리어이며 영어는 공식 언어가 아니다. 하지만 영어 노출도가 높아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사회이기도 하다. 영어는 초등학교 때부터 필수 과목에 포함된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도 영어 때문에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기억은 없다. BBC 등 해외 뉴스에 나오는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유심히 들어보면 통역사 없이 직접 영어로 소통하는 인터뷰가 대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이스라엘인들이 영어를 잘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영어권 미디어의 노출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TV와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영어 콘텐츠를 접하면서 귀가 트이는 흐름이다.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생활에 침투한 지금 시대에 그 영향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또한 이스라엘 창업자가 해외에서 성공한 선례들이 많아, 처음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글로벌 서비스를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공유한 이스라엘 유니콘 리스트를 다시 살펴보자. 이스라엘에 본사를 두고 있는 경우보다 뉴욕과 실리콘밸리에 있는 회사들이 훨씬 많다. '영어는 필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의 인구 피라미드는 젊은 사람 비율이 아래를 탄탄히 받쳐주는 모습을 하고 있다.
스타트업은 속도 중심으로 돌아가고,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혈기 왕성하고 실패해도 젊음이라는 무기가 있으며, 뭔가를 이뤄내고 싶은 욕구가 큰 청년층이 이 조건에 딱 맞아 들어간다. 물론 젊을수록 반드시 성취욕이 많고, 나이가 많다고 무기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젊을수록 새로운 도전에 임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청년층 비율과 스타트업이 등장할 확률은 비례할 수밖에 없다.
인구 구조뿐만 아니라 출생률도 3.0 가까운 수치를 보여주어 0.7~0.8을 기록하는 최하위권인 우리나라는 물론, 1.5~2.0 사이의 미국이나 독일보다도 훨씬 높다. Statista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현재 이스라엘의 추정 인구수는 9,810만 명이며, 5년 후인 2028년에는 1,074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인구수가 늘면서 경제 구조, 생태계, 출생률 등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스타트업 생태계와 궁합이 잘 맞는다.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한번 정리해 보자.
정리한 내용만 보면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전도유망함 그 자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정치적 혼란과 주변국들과의 분쟁은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수 있는 리스크다. 예시로, 올해 여름 이스라엘 정부가 사법부 무력화 법안을 가결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시위하는 사건이 있었다. 시위자 중에는 기업가치가 10조 원 가까이 되는 유명 핀테크 스타트업 티팔티(Tipalti)의 대표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후 티팔티는 직원의 15%를 이스라엘에서 해외 지사로 옮기는 계획을 시작했다.
또한 이스라엘 스타트업에 이루어지는 투자 규모가 2023년 3분기 기준으로 7분기 연속 하락했다. 2023년 1~3분기 수치는 2022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63%나 떨어졌다. 현재 진행되는 전쟁으로 인해 더 악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이스라엘 스타트업 생태계가 상승세로 돌아설 수 있을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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