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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은 좋은데 그동안 브랜딩이 잘 안되었던 것 같아서요, 새롭게 한 번 브랜드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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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은 좋은데 그동안 브랜딩이 잘 안되었던 것 같아서요, 새롭게 한 번 브랜드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 사업을 운영하는 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이름, 새로운 포장 디자인, 새로운 상세 페이지를 만들어 다시금 소비자들에게 어필해 보려고 한다고 하시더군요. 물론 이 모든 것들이 브랜딩에 중요한 요소인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지만, 가끔은 우리에게 보다 근본적인 시각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브랜딩을 잘 하고 싶어하고 또 좋은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브랜드의 정립 단계에서부터 반드시 던져봐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저는 '브랜드'라는 단어보다 '정립'이라는 단어에 더 초점을 맞춰보고 싶은데요. 정립(定立)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정하여 세움'이라고 풀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브랜딩을 잘 하고 싶다면 우선 어떤 브랜드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규정과 이 브랜드가 다른 브랜드들과 어떤 의미에서 차별점을 갖게 되는지 그 존재를 바로 세우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정립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질문 몇 가지를 여러분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미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심했는데 '왜 브랜드가 필요하냐'라니 다소 의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브랜딩의 처음과 끝은 물론, 그 중간중간에 발생하는 고민의 고비마다 반드시 던져야 하는 필수 질문입니다.
우리가 브랜드를 만드는 이유는 그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었으니 그에 해당하는 이름과 로고를 달아주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새로운 브랜드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그 브랜드가 앞으로 해야 할 역할을 먼저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이때는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 각각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브랜드를 통해 무엇을 실현하고자 하는가'라는 질문 하나와 '그럼 소비자(혹은 사용자)들은 이 브랜드를 통해서 어떤 가치를 얻을 수 있는가'하는 것이죠. 세상에는 자연발생적으로 브랜드화 되는 것들도 있지만, 적어도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기획되는 브랜드라면 '우리 브랜드가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 정도는 합의하고 출발하는 것이 좋습니다.
브랜딩은 이른바 '존재감 놀이'라고도 불립니다. 어떤 포인트에서 남들과 다른 차별화를 이룰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더 확고히 할 것인지에 대한 싸움이기 때문이죠.
흔히 이 질문을 제품 효용이나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에 대한 물음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 이건 철저히 브랜드적 시각에서의 차별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즉, '우리 브랜드가 활용할 수 있는 유무형의 자산에는 무엇이 있고,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활용해 무엇을 브랜드 가치로 변환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죠.
따라서 브랜드를 정립하는 단계에서는 하나의 제품을 두고 Branded된 상황과 Unbranded된 상황을 가정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브랜딩 요소에 해당하는 것을 모두 걷어내고, 바라본 제품(unbranded)과 브랜딩을 적용한 후의 제품(branded)을 비교한 다음, 이 둘의 차이가 정말 크고 의미 있는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인지를 비교하는 거죠.
브랜드를 만드는 초기 단계에서는 누구나 브랜딩의 대상이 되는 본질을 잘 담아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브랜드란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존재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가는 생명력을 가진 개체죠. 물론 브랜드의 시작 단계에서 앞으로 우리 브랜드가 어떻게 변화할지를 예측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브랜드가 확장성을 가진 브랜드인지 아닌지 정도는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의 브랜드가 버티컬로 파고들며 전문성을 높여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아예 다른 영역으로 뻗어나가 새로운 대상을 다루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럴 땐 또 하나의 브랜드를 새로 론칭하는 게 답일 수도 있고, 기존 브랜드의 자산과 가치를 최대한 활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의 여부도 고민의 대상이 되죠.
따라서 하나의 브랜드를 정립할 땐 이 브랜드가 전혀 다른 영역에서도 동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며, 가급적 브랜딩 초기 단계에서 이 확장성을 미리 예측해 브랜드 로드맵을 그려보는 것이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인터널 브랜딩이란 조직 구성원들이 자신의 고객에게 일관된 가치와 브랜드 정체성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조직 내부 문화를 더 단단히 만들고, 브랜드 사명을 내재화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외부로 전달되는 브랜딩(익스터널 브랜딩)을 위해 안에서부터의 브랜딩에 힘을 쏟는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때때로는 이 인터널 브랜딩과 익스터널 브랜딩을 구분하지 못해서 고객에게 가야 할 가치들이 조직 내부에서만 맴돌기도 하고, 반대로 구성원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개념들이 오로지 마케팅의 최전선에서만 다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브랜드 내부에서부터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가치들이 얼마만큼 실제 브랜딩에 녹아들어 외부의 고객들에게 전달되고 있는지 늘 트래킹 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브랜딩은 시간이 갈수록 바로잡기가 더더 힘들어지는 만큼, 특정 기간을 두거나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수시로 점검하는 것이 유리하죠.
브랜드를 정립하는 단계에서 가장 애를 먹는 포인트 중 하나는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릴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특히 브랜드를 탄생시키는 초기에는 막대한 양의 자료와 레퍼런스 예시들을 흡수하기 때문에, 각자가 저마다의 형태로 정보 과포화를 이루고 있기도 하죠. '정리가 안 된다', '하나로 묶어지지 않는다', '관통하는 무엇인가가 없다' 등의 아쉬움을 토로하게 되는 순간도 바로 이 순간입니다.
이런 함정들에 빠지지 않고 브랜딩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선 처음부터 브랜드 페르소나를 정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브랜드 페르소나란 브랜드가 가지는 하나의 인격으로서 사람들이 우리 브랜드를 특별한 무엇인가로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가장 기본적인 창구이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브랜드들이 우리의 위협요소로 다가올 때도 이 브랜드 페르소나를 기반으로 우리만 할 수 있는 이야기와 활동들을 풀어낼 때 브랜드 로열티가 더 증가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브랜드를 정립할 때는 우리 브랜드를 사람으로 비유한다면 누구와 닮아있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존재로 만들어갈 수 있는지, 누구의 화법과 누구의 메시지에 부합하는지 등을 그리며 체계화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때는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 모두가 잘 알고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레퍼런스로 잡는 게 좋고, 그 캐릭터의 속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인물을 정하는 것이 합의를 이끌어가기에도 더 쉽습니다.
사실 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은 희망찬 미래를 그리는 작업만은 아닙니다. 누구나 자기 브랜드가 세상 사람 모두가 아는 브랜드가 되길 바라고, 남다른 존재감으로 독보적인 평가를 얻길 바라며, 동시에 많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브랜드로 유지되길 바랍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희망일 뿐 브랜드 정립을 위한 계획이자 기획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훨씬 현실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죠.
가장 근본적으로 던져봐야 할 질문은 '이 브랜드는 어떤 경우에 치명타를 입거나 생명력을 상실하게 되는가?'하는 것입니다. 브랜드를 유지함에 있어 가장 큰 리스크가 될 법한 것들을 미리 예상해 보는 거죠. 이때도 역시 제품 및 서비스와 분리해 브랜드 그 자체의 리스크를 상상해야 합니다.
단순하게는 비슷한 브랜드들이 난립했을 때 적절하게 방어할 브랜드 자산이 부족한 걸 직시해 볼 수도 있고, 우리가 제시하고 있는 브랜드 가치에 고객들이 더 이상 공감하지 못하는 트렌드 변화를 예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평판 이슈나 윤리 문제에 휘말릴 수 있는 위협 요소가 없을지를 감안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서로 으쌰으쌰하며 시작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부정적인 것까지 상상해야 하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는데요. 사실 이런 질문 속에서 우리 브랜드를 더 뾰족하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장치들이 발굴되는 법입니다. 그러니 때로는 불편한 질문도 날카롭게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았습니다. 브랜드의 본질이자 영원한 숙제와도 같은 이 질문은 어쩌면 브랜딩의 전 과정을 압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브랜드를 만드는 단계에서는 다른 브랜드들을 더 많이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경쟁 브랜드들보다 무엇 하나라도 더 나은 차별점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초점은 우리 자신을 향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다른 대상들과 구분하기 위해 우리 브랜드를 갖춰나가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를 우리답다고 만들어주는 것들은 무엇일지'에 대한 탐구와 확신이 훨씬 중요하다는 얘기죠.
그렇다고 웹사이트에 담길 수준의 멋들어진 문구를 고민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사무실 한편에 자리한 화이트보드 위에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며, 어떤 브랜드를 만들어 세상에 어떤 가치를 던지고자 하는가'를 써놓고 계속 업데이트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브랜드를 정립해 가다 보면 그동안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선명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철석같이 확신했던 것들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도 합니다. 그래서 화려한 홍보성 미션이나 비전보다는 실제로 우리를 집중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진솔한 단어로의 정의가 절실히 필요하죠. 그리고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부터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지, 늘 확인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글 초반에 '정립'이라는 단어에 대한 뜻을 잠깐 소개했었는데요, 사실 '정립'이란 말을 영어로 바꿔 생각하면 그 의미와 뉘앙스가 더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흔히 정립은 found, establish, set up 이 세 가지 단어로 표현되는데요. 브랜딩의 과정에 비춰봐도 새로운 브랜드 하나를 정립한다는 것은 '무엇에 기반을 둘 것인가(found)', 더불어 '무엇을 중심으로 뼈대를 갖추고 이를 공고히 할 것인가(establish)', 마지막으로 '어떤 형태로 존재하며, 어떤 상태로 사람들과 만날 것인가(set up)'에 대한 질문을 주고받는 과정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브랜딩이란 게 자료조사에만 열을 올리다가,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를 쫓아, 시각적인 결과물만 내놓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대목이기도 하죠. 그러니 여러분 역시 새로운 브랜드 하나를 준비하고 있다면 적어도 위에서 소개한 질문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또 아무리 어려워도 세상엔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필수적인 것들이 있는 법이니까요. 이제 브랜드를 만들고 단단히 다져가는 과정 속에서 결코 생략할 수 없는 단계임을 명심하고, 작은 질문부터 하나씩 스스로를 향해 던져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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