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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중고차의 아마존, '카바나'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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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BM 톺아보기 ⑧

 

중고차 카바나
<출처: Getty Images>

 

혹시 레몬 마켓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레몬 마켓은 경제학 용어로, 정보 비대칭성이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을 나타냅니다. 이를 처음 제시한 조지 애컬로프가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요. 상품 품질에 대한 정보량 격차가 크면 결국 전체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레몬 마켓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레몬 마켓의 대표 격인 것이 바로 중고차 시장입니다. 실제 조지 애컬로프가 논문에서 사례로 든 것도 중고차 시장이었고요. 판매하는 차량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오직 판매자만 알고 있기 때문에, 구매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제안하게 됩니다. 결국 좋은 차량은 제 값을 받지 못해 시장을 떠나게 되고, 나쁜 차량만 남게 되고요. 중고차 시장에는 불량품만 남아, 시장 전반적인 거래량 자체가 감소하게 됩니다. 근데 여기 하나 함정이 있습니다. 조지 애컬로프가 논문을 발표한 건, 1960년대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려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중고차 시장은 여전히 레몬 마켓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중고차 시장이 레몬 마켓인 이유

오늘 주로 이야기 나눌 미국의 중고차 시장은 신차 대비 4.5배나 되는 차량이 팔릴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시장에서 행복한 이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미국인들의 81%는 중고차 구매 프로세스를 좋아하지 않으며, 자동차 판매원들을 신뢰한다는 의견 고작 9%에 불과했거든요.

 

중고차 레몬마켓
<출처: Carvana>

 

이렇게 시장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이었던 건, 미국 중고차 시장이 철저하게 파편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딜러 브랜드의 점유율이 고작 1.8%였고요. 상위 100개 중고차 소매 업체까지 이를 확대해도 8.6%에 불과했습니다. 미 전역에 43,000개 이상의 중고차 딜러점이 시장을 나눠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표준화된 서비스도,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고자 하는 플레이어도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정보가 제한적이었기에, 중고차 딜러에게 무조건 의지를 해야 했고요. 차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도 직접 방문하는 것 밖에 없는 등 구매 과정 역시 불편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중고차 레몬마켓
<출처: technavio>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중고차 시장을 주목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일단 시장 규모는 크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영세하여 경쟁 강도가 세지 않았고요.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는 시장은 분명 아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장하는 시장이긴 했습니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390만 대 정도 늘어난다는 건 결코 작은 파이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기회를 노리고, 레몬 마켓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등장한 것이 바로 오늘 이야기 나눌 카바나였습니다.

 

 

자동차 ‘자판기’를 만든 카바나의 파격적 혁신

카바나는 2012년에 설립된 중고차 판매 업체입니다. 카바나는 첫 등장부터 디지털 전환을 무기로 삼아 정말 파격적인 혁신을 연이어 선보였습니다. 가장 먼저 진행한 건 역시, 불편했던 구매 경험을 개선시키는 거였습니다. 이들은 기술 및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집 안에서 편리하게 차량을 확인하고, 상품을 배송받을 수 있도록 하여 고객의 시간과 비용을 절약시켜 주었습니다.

 

일단 차량 실물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특허받은 360도 이미징 기술로 간편하게 이를 확인할 수 있게 했고요. 앱 또는 웹에서 자동차를 검색하고 기능과 결함 등 상세한 스펙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미국 내 300개 이상 도시에서 익일 배송 서비스를 시행하여 고객의 편의성을 극대화시켰고요.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던 신뢰도 이슈는 7일 이내 환불 정책을 도입하여 해결했습니다.* 기존에는 시승 정도를 해보고 구매를 결정해야 했지만요. 이제는 무려 7일까지 직접 사용 후 최종 구매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정확히 6일 차에 고객 응대 전화를 통해 구매 확정 여부 등을 한번 더 체크하며 세심하게 챙기는 프로세스를 마련하기도 했고요.

 

*참고 : 미국 온라인 중고차 플랫폼 카바나 성공요인 7가지

 

중고차 카바나
<출처: Business Wire>

 

그리고 카바나가 2015년 첫 선을 보인 세계 최초의 자동차 자동판매기는 이러한 혁신을 대표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고객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차량 구매를 결정하면 자동판매기를 통해 수령할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을 방문하여, 실제 자판기를 이용하듯이 미리 받은 토큰을 슬롯에 삽입하면 차량을 수령하는 형태인데요. 카바나는 자동차 픽업을 원하는 고객에게 최대 200 달러를 지급하는 등 이를 장려했다고 합니다. 차량 자동판매기는 배송 비용을 절감하면서, 동시에 고객에게 흥미로운 경험을 주는 장치였던 겁니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매력적인 장면들은 미디어의 주목을 이끌어내는 데도 성공했고요. 이후 카바나는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카바나의 규모가 커질수록 카바나만의 경쟁력은 더욱 강화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존 중고차 시장에는 대형 플레이어가 희소했고요. 반면 카바나는 기존 딜러점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차량 구색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더 많은 상품은 당연히 더 많은 고객을 불러오고, 이는 또다시 새로운 상품들을 카바나로 유입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 겁니다.

 

 

하지만 물 들어올 때 무리하게 노 저었습니다

카바나 최대 영광의 순간은 역시나 뉴욕 시장에 입성한 2017년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한동안 카바나의 호시절은 계속됩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중교통을 꺼리게 된 소비자들이 자동차 구매에 몰리면서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년 상반기부터 카바나에게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카바나의 성공을 본 후 많은 경쟁 업체들이 새로이 시장에 진입했고요. 공급난 위기를 겪고 난 후 완성차 업체들은 신차를 공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금리가 인상되면서 중고차 수요가 갑자기 급감했고요. 이렇게 되자, 작년 5월 중고차 경매 업체 아데사를 인수한 것도 패착이 되고 맙니다. 재무 상황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거든요.

 

중고차 카바나
<출처: 한국경제>

 

급기야 카바나의 주가가 1달러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기 시작합니다. 모건스탠리의 아담 조나스가 “매출 감소와 비용 증가, 현금 고갈 등 3중고를 겪고 있다”며 “최악의 경우 카바나 주가는 10센트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한 건데요. 이렇게 한때 중고차 딜러계의 아마존이라 불렸던 카바나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하지만 카바나의 경영진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비용 절감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우선 작년 5월 1차로 전체 인력의 12%인 2,500여 명을, 그리고 11월에는 8%인 1,500여 명을 감원하였고요. 동시에 광고 비용도 줄이고, 재고를 감소시켜 수익성을 개선하는 노력을 병행하였습니다. 이렇게 비용 절감 목표를 차근차근해나가자, 시장이 바라보는 시선도 변하기 시작했는데요. 모건스탠리의 아담 조나스는 지난 5월, 6개월 만에 다시 평가 보고서를 내면서, 비용 절감 노력을 통해 카바나가 최악의 혼란기를 통과했다며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올해 1분기 실적엔 이러한 카바나의 노력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잘 드러나 있습니다. 비록 매출액은 25% 감소하며 예상치를 하회했지만, 매출 총이익이 전년 대비 52%나 급증하며 역대 최고 수준으로 집계되었고요. 경영진은 2분기에 조정 EBITDA 기준으로 흑자 전환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까지 내놓았습니다. 특히 성장보다는 수익을 중점으로, 규모는 작더라도 더 내실 있는 비즈니스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카바나의 실적에 대해 좋게 평가하고 있고요.

 

중고차 카바나
<출처: Mlive.com>

 

여기서 재밌는 점은 카바나의 실적 개선에 재무 상황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끼쳤던 아데사 인수가 도움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미국 내 56개 지점이 추가되면서, 도매 판매 대당 200 달러, 그리고 소매 판매 대당 90달러나 되는 운송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 들어올 때 저었던 노가 다 헛된 것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물론 여전히 카바나가 정말 기사회생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많이 존재합니다. 아직 완전한 흑자 전환까지 이르러면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여전히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기 때문인데요. 디지털 전환을 무기로 전통 시장을 혁신하여 상장까지 이르고, 다시금 거시적 상황으로 인해 위기를 맞이했지만, 바로 쓰러지지 않고 다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간다는 그 여정 자체는, 최종적인 성공 유무와 상관없이 많은 교훈을 주는 것 같습니다.

 

 

국내에 주는 시사점은?

중고차 시장은 국내에서도 여전히 레몬 마켓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동시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스타트업들의 도전은 국내에서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우리에겐 감각적인 TV 광고로 익숙한 헤이딜러 등이 대표적인 플레이어라 할 수 있습니다.

중고차 카바나
<출처: 헤이딜러>

 

국내 중고차 스타트업이 카바나처럼 정말 시장을 뒤흔들려면, 정보의 비대칭성뿐 아니라, 자동판매기로 대표되는 구매 여정까지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걸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물류 및 기술 역량을 갖춰야만 장기적으로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거고요. 또한 동시에 카바나처럼 성장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개별 프로세스 고도화 및 효율화에도 미리미리 투자하여, 외부 환경이 급변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카바나가 주는 교훈을 거름 삼아, 국내에서도 중고차를 편하게 사고팔 수 있는 세상이 찾아오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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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고 파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https://bit.ly/3GivERH)를 운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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