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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0년 혹은 그 이상을 개발자로 살고 싶은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 경험을 3회차의 연재 글로 풀어볼 겁니다. 지난 1편, 2편에 이어 마지막 글입니다.
80억 인구가 80억 가지 인생을 살게 되므로 제 이야기가 여러분께, 혹은 지금 시기에 딱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능하면 시간이 지나도 살아있는 콘텐츠가 전달되게 핵심에 집중했습니다. 개발자 여러분께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30년 커리어패스의 마지막 10년에 필요한 비즈니스 역량은 총 3가지입니다.
인사 시스템은 6가지로 나뉩니다. 바로 채용, 직급, 평가, 교육, 보상, 복지입니다. 먼저 채용 제도와 직급을 정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급을 1~8까지 나눕니다. 블리자드는 어시스턴트, 어소시언트, 소프트웨어, 시니어, 리드 등으로 직급을 나눕니다. 직급이 있다면 직급별 역할도 있어야 합니다.
인사 평가가 제대로 동작하려면 퍼포먼스 리뷰 방식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회사가 성장하길 원한다면 직원을 성장시켜야 하므로 교육도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보상과 복지를 제공해야 합니다. 급여 시스템은 어떻게 되어 있고, 보너스는 어떻게 주는지가 여기에 해당하죠. 회사를 계속 발전시키고 싶다면 회사를 매력적으로 만들어 지속해서 인재를 채용하고, 교육을 제공해 직원을 성장시키고, 팀에 직원이 딱 밀착되는 인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비즈니스 관리 영역에는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Lead People, Manage Business.’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리드’하고, 비즈니스를 철저하게 ‘관리’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업을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돈이 얼마나 벌리고 얼마나 쓰이는지 파악해 사업을 더욱 철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단순히 개발만 하고 만다면 상관없지만, 더 높은 직급을 원한다면 비즈니스 전체 그림을 봐야 합니다. 매출은 어디서 나오는지, 매출을 어떻게 내는지, 비즈니스가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등을 알아야 합니다.
최근에는 환경적인지,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회사의 지배 구조는 좋은지에 대한 ESG*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결국 비즈니스는 일 자체, 사회와의 관계, 매출 등을 모두 봐야 합니다. 조금 깊이 들어가면 회사의 역량, 전략, 작전, 재정, 마케팅을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20년 개발만 한 개발자가 잘하는 분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30년 커리어패스를 꿈꾼다면 기회가 될 때마다 경제, 경영 공부(투자)를 해둬야 합니다.
MBA 같은 곳에서 이런 공부를 합니다. MBA를 밟으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MBA를 극찬하지만 세계 3대 투자자인 짐 로저스는 낭비의 극치라며 혐오합니다. MBA 효용성 논쟁과는 상관없이 개발자라도 비즈니스 책을 읽어보거나 다른 직무의 사람과 대화를 하며 지식의 영역을 확장해야 합니다. 회사의 재정, 매출, 채용 계획 등을 파악할 정도의 능력은 갖춰야 합니다. 나중에 개발 실장이 되거나 CTO가 돼서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마시고, 프로액티브하게 비즈니스 공부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ESG: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아우르는 개념
밸런스드 스코어카드(Balanced Scorecard)는 회사를 4가지 관점에서 점검합니다. 바로 ➊ 재정 안정성, ➋ 고객의 제품 만족도, ➌ 내부 프로세스, ➍ 교육과 성장입니다. 굉장히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평가 방법입니다. 회사가 5년 후에도 살아남을지, 나는 그때도 다니고 있을지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누구나 활용 가능한 점검 방법입니다.
첫 번째, 재정 안정성은 매출과 지출 규모를 파악하면 알 수 있죠. 두 번째, 고객의 제품 만족도를 얻을 수 있는 곳은 많습니다. 온라인 쇼핑몰 후기만 봐도 바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객을 생각하며 제품을 개발해야 합니다. 외부 고객만 고객이 아닙니다. 회사 내부에 있는 모든 직원이 고객입니다. 직원 모두가 제품을 쓰고 좋아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내부 프로세스는 조직원이면 바로 압니다. 일이 체계적으로 돌아가는지 주먹구구로 돌아가는지 말이죠. 주먹구구식으로 일이 진행된다면 오늘 성공을 내일 반복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교육과 성장은 그간 많이 이야기했죠? “교육을 제공해 직원을 성장시켜야 회사도 성장한다! 회사가 성장하지 않으면 시장과 함께 성장할 수 없다.”
4가지 중 하나라도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면 회사의 미래가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미래가 있는 회사라면 돈을 잘 벌고, 고객을 만족시키고, 프로세스가 정립되어 있고, 교육해 직원과 회사를 성장시켜야 합니다. 여러분이 30년 커리어패스의 마지막 10년에 해당한다면 직접 미래가 있는 회사를 책임감 있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제가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것은 ‘변화’입니다. ‘체인지 매니지먼트’라고도 부르는데요, 결론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회사는 변화하지 않으면 망한다. 둘째, 하지만 변화는 어렵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관리해야 된다. 무엇인가를 성사시키려고 철저하게 챙긴다는 의미로 매니지먼트, 즉 관리를 이해합시다.
체인지 매니지먼트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 자체가, 회사에 변화를 주기는 어렵지만 변화는 중요하므로 꼭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조직은 지속적으로 변화해야 살아남습니다.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변화를 만들고 어떻게 받아들이게 할지 연구하며 변화를 이끌어야 합니다. 변화는 비즈니스 매니지먼트라는 큰 그림 안에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속한 조직이 꾸준히 변화하는지, 변화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앞으로 시장에 서 필요한 만큼의 변화를 하는지, 여러분은 거기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보면 좋습니다.
블리자드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성공으로 잘 나가고 있었습니다만, 많은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특히나 인원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회사의 중심을 잡는데 많은 노력이 들었습니다. 제품 측면에서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배틀넷 데스크톱 앱이라는 플랫폼을 만들었고, 한국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로 퍼진 과금제도인 Free to Play*를 적용해 모바일 게임 <하스스톤>을 출시했습니다(이전까지 블리자드는 패키지 판매 방식 게임만 있음).
이 두 가지 프로젝트에서 모두 일을 하면서 제품, 기술, 조직, 프로세스 등의 다양한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변화는 결국 한 군데에서 시작하지만 모든 분야에 퍼져나간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변화가 무뎌질 때 조직에 어려움이 온다는 사실도 체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생물학에서 조직은 살아있는 세포들로 구성됩니다. 살아있다는 뜻은 성장하고 변화하고 늙는다는 겁니다. 결국 회사도 성장하고 변화하고 늙습니다. 성장을 멈추면, 즉 변화를 멈추면 죽음이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다음은 제가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쓰는 항목입니다.
*Free to Play: 게임 플레이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게임 내 유료 아이템을 판매해 수익을 얻는 방식
첫 번째는 사업성입니다. 진짜로 사업성이 있느냐, 이미 시장이 존재하는지, 만드는 제품이 시장과 잘 맞는지 살핍니다. 두 번째는 혁신성입니다. 다른 회사와 다른 뭔가 특별한 혁신적인 점이 있는지 봅니다. 특허, 기획, 기술, 속도 등을 봅니다. 진입장벽이 너무 낮은 시장은 좋지 못합니다. 시장성이 있더라도 다른 회사가 넘지 못할 진입장벽이 있어야 합니다. 그 장벽이 혁신성입니다. 세 번째는 개발 역량입니다. 개발자들에게 실제로 능력이 있고, 프로세스가 잘 만들어져 있는지 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글로벌 확장성입니다. 세계 무대로 확장해도 통할 비즈니스인지를 보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초기 스타트업을 평가하는 항목입니다. 아직은 자리잡지 못한 시기이므로 현재 돈을 얼마나 잘 버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온전히 성장성에 집중한 항목입니다. 스타트업 종사자라면 스스로의 회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활용해 보기 바랍니다.
문화에서는 비전, 목표가 선봉의 기치입니다. 예를 들어 목표에는 회사 목표, 팀 목표, 개인 목표가 있습니다. 이게 다 별개면 안 됩니다. 회사 목표가 ‘좋은 제품 만들자’인데, 팀은 ‘좋은 기술을 만들자’, 직원은 ‘돈을 많이 벌자’이면 목표가 어긋나기 때문에 회사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각 목표는 어떻게든 연결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회사 목표가 ‘좋은 게임을 만들자’이면 팀은 ‘좋은 기술을 만들어서 좋은 게임을 만들자’, 개인은 ‘좋은 기술로 좋은 게임을 만들어서 부자가 되자’ 이렇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가는 방향, 팀이 가는 방향, 개인이 가는 방향, 비전, 목표가 연결되어야 합니다.
블리자드 비전은 ‘Dedicated to creating the most epic entertainment experiences…ever.’입니다. ‘최고로 재밌는 게임 경험을 제공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정도로 의역할 수 있습니다. 블리자드는 이 목표를 크게 새겨서 회사 캠퍼스 가운데에 거대한 오크상과 함께 세워놓았습니다. 그만큼 좋은 게임을 만드는 데 목숨을 거는 겁니다. 비전이 정립되어 있으니 회사가 하나로 뭉쳐 비전 안에서 문화가 탄생합니다. 그래서 외부의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뛰어나고 재미있는 게임이 아니면 신작 발표를 주저 없이 연기하거나 완전히 폐기합니다. <스타크래프트 : 고스트>나 <워크래프트 어드벤처>는 출시 예정일까지 잡았지만 출시 대신 개발 중단을 선언했죠. 비전 없이 오직 돈을 벌겠다는 일념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결정입니다.
비전이 큰 목표라면 그 아래 세세한 가이드나 사상을 핵심 가치(core value)라고 부릅니다. 회사의 모든 사람이 가장 높게 생각하는 가치를 말합니다. 블리자드는 8가지 핵심 가치를 두고 판단 기준으로 삼습니다.
블리자드는 핵심 가치에 적합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핵심 가치를 정하고 지키면 조직 문화가 만들어집니다. 일은 핵심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서 진행하면 잘됩니다. 예를 들어, ‘게임이 좀 덜 만들어졌는데, 그냥 출시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럼 안 돼, 우리는 품질이 최선인데’라는 판단이 가능해집니다. ‘이 기술이 재밌는 것 같으니까 써 볼까? 그러면 게임이 재미 없어지는데. 재미가 더 중요하잖아?’ 이런 생각이 가능합니다. 성장하는 게 핵심 가치이므로 아무리 바빠도 배우고 내부 기술 세미나를 꾸준히 진행하게 됩니다.
문화는 미리 세워진 가치와 정책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먼저 비전과 가치가 결정이 되어야 그 뒤에 문화가 따라갑니다. 회사의 문화를 결정하는 데 비전과 가치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블리자드의 비전과 핵심 가치는 한 달 동안 직원들이 열심히 토론해서 정한 겁니다. 회사 초창기에 만든 것인데, 제가 봐도 정말 멋졌습니다. 이 가치를 바탕으로 블리자드는 계속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조직 문화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일하는 방식입니다. ‘찻길에서는 신호등을 따른다’ 이런 게 문화입니다. 문화는 제품, 기술, 프로세스 바깥 영역에서 돌아갑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해야 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결정해 주는 큰 개념입니다. 제품, 기술, 프로세스가 결과에 가깝다면 조직 문화는 모두를 아우르는 운영체제에 가깝습니다. 운영체제에 따라서 프로세스가 나오고 프로세스에 따라서 모든 일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조직 문화는 중요하고 회사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조직 문화는 비전과 핵심 가치를 조절해 만들고 수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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