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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트의 세계에서 PM/PO로 살아남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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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7년 차 현직 PM이 들려주는 '취준', 그리고 성장 이야기

년차,
어떤 스킬
,
어떤 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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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트의 세계에서 PM/PO로 살아남기 #1

 

취준생의 노력은 그 무엇도 헛되지 않다

취준생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얼마 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PM 직무 취업 강연을 했다. 2021년부터 매년 봄마다 모교의 부탁으로 강연을 하고 있으니 이번이 세 번째 되는 봄이었다. 

 

2023년도에 진행한 강연 자료의 첫 페이지. 150명의 대학생들이 참여했던 규모의 강연이었다. (출처: 작가)

 

3회차 강연을 하고 질문을 받으면서 취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는 ‘교환학생이 스펙이 될까요?’, ‘영어성적은 어느 정도 받으면 될까요?’ 와 같은 질문들이 주를 이루었던 반면, ‘서비스기획자로서 어떤 업무를 맡고 있으신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데이터 애널리스트와 PM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와 같이 직무에 대한 질문이 디테일해졌다. 그중에는 ‘PM으로서 일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와 같이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하게 하는 질문들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과거의 나와 조우하고 있는 것 같은 마음 아팠던 순간들도 있었다. 일과 직업을 진지하게 탐구하기에 앞서 얼른, 빠르게 취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막막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후배들이 보였다. 취업센터 담당자분께서 나를 소개하시면서 선배님처럼 '멋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오히려 후배들의 마음을 더 보채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당시 이직 후 중간 텀이 비어서 해외여행 중이어서 해외에서 온라인 강의를 진행해야 했는데, ‘선배님처럼 나중에 해외로 출장도 가려면 영어도 잘해야 하니까..’라는 이야기가 추가되었다.

 

취업 준비에 앞서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나는 멋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강연을 듣고 있는 후배들보다 조금 더 오랜 시간을 살았고, 지난한 취준 시간을 먼저 지나 지금의 나를 살고 있는 사람일 뿐. 지금 학생들이 시간을 들여야 하는 건 취업센터 담당자님의 말처럼 영어, 자격증과 같은 스펙을 따라잡는 것이 아닌데. 개개인에게 있는 보석을 발견하기 위해 거기에 에너지를 쏟았으면 좋겠는데.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취업, 돈벌이, 그거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게 맞는데, 그러니까 그렇게 중요한 만큼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충분한 고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내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해주고 싶다.

 

취업, 돈벌이, 직업… 그게 뭐길래

성실하게 학교에, 학원에, 야간학습까지 하며 19살까지 청춘을 책상 앞에서 보낸 73.7%의 대한민국 학생들은 대학교에 진학한다(2021년 기준, 교육통계서비스). 고등학교 시절 유일한 목표가 대학 진학이었다면, 대학 진학 후 다시 유일한 목표는 ‘취업’으로 설정된다. 19살까지는 국, 영, 수 점수를 올리기 위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올인했으니, 나의 적성이나 장점에 대해 깊이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탐구하고 실험해보는 시간을 가지기 어려웠다. 그러니 원해서 선택했던 점수에 맞추어 선택했던 ‘전공’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시 원점부터 시작이다. 그마저도 ‘좋은 회사’에 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는 스펙들이 잔뜩이다.

 

원론적인 것부터 들여다보자. 돈벌이는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운 좋게도 이미 부모님이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물려받을 사업이 있다면 감사하게도 그 밑천으로 생존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력을 통해 돈벌이를 쟁취해야 한다. 여기서도 방법이 나뉜다. 1인 사업자로 활동하거나 회사를 창업해 다른 사람들을 고용할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이미 기반을 갖추어놓은 사업장, 즉 회사에 취업하여 일을 할 것인가. 먼저 창업을 해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취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먼저 취업을 하고 난 후 배운 것들을 기반으로 늘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취업의 목표와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출처:UnsplashBrendan Church)

 

돈벌이 방법으로 취업하기를 택했다면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간혹 큰 고민 과정 없이 취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일을 하면서도 고민의 과정을 거쳐 다른 직무로 이직하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분명한 건 취업에 앞서 원하는 방향성을 정했는지가 합격률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인지 명확히 알고 방향성을 정한다면 이력서와 서류 합격률이 0%에서 80%이상으로 올라간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산업군과 회사들이, 그 안에도 정말 다양한 직업들이 있다. 심지어 같은 회사 안에서도 어떤 직군으로 일하느냐에 따라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는 천지차이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면 일을 하면서도 성과를 내고 인정받으며 좋은 커리어를 쌓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방향을 정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취준 기간이 스펙이 되는 방법

직무의 방향성을 찾기 위해 한 활동은 반짝이는 스펙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독자 스스로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일’을 고민해보았고 그 결과 ‘PM’이라는 직무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일을 할 것이다.

 

1) 정보를 찾는다

지금 요즘 IT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것과 같이 현직 PM들이 쓴 글을 읽어보기도 하고, PM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고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또 그 역량을 쌓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할지 등 관련 정보를 찾게 될 것이다.

 

2) 필요한 사람들을 만난다

강연을 듣거나, 멘토링을 받거나, 커뮤니티를 활용하게 된다. 예비 PM들을 위한 강연을 찾아듣고, 직접 현직자를 만나서 멘토링을 받아보거나, 혼자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면 비슷하게 PM 직무로 취업을 희망하는 취준생들을 만나 공부를 하고 사이드프로젝트를 진행해보기도 할 것이다.

 

3) 인턴 등 조직 생활을 경험한다

PM 직무가 내가 원하는 직업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인턴으로 지원해 조직 내에서 실제로 직무 경험을 해보게 될 것이다.

 

위 1, 2, 3번의 활동 모두 결국에는 PM 직무로 취업을 하는 데 가장 좋은 스펙이 된다.  해외에서 어학연수를 한 번 더 했는지, 다른 사람보다 토익점수가 100점 더 높은지는 정말 원하는 직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쌓아온 경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하고 방향성을 정하는 게 좋은 취업 전략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이런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잘못된 우물만 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들 때도 있을 거다. 취준시절에 일명 취업스터디라고 불리는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하는 스터디에 참여해본 적이 있다. 공고가 뜬 대기업을 매번 분석하고, 그중에 그나마 자격 조건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영업, 마케팅 직무에 닥치고 이력서를 넣었다. 나의 직무 발견에는 방향성이 전혀 맞지 않은 스터디였지만 지금까지도 회사와 경제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주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니 지금 잘못된 우물을 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모든 것은 언젠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다만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 때는 고개를 들어 내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을 보자. 이 방향이 정말 내가 원하는 방향이 맞을지를 고민하고, 고민의 결과에 따라 또다시 나아가면 된다.

 

 

현직 PM도 한 때는 취준생이었다

취직이 죽기보다 싫었던 사람의 첫 직장

그런 학생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열심히 공모전에도 나가고, 인턴도 하고 취업준비를 하니까 나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회사에 취직하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사람. 그게 나다. 대학교 3학년 때에는 결국 학교 내 심리상담 센터를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회사에 취업을 한다고 생각하면 회색 건물 속 천편일률적인 모습의 사람들이 피곤해하는 모습만 떠올랐다.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다.

 

대학 생활 동안 직업을 탐구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통역사가 되고 싶어서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고 외부 통역 활동도 실제로 나가봤는데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중요한 일을 한다기 보다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외교관이라면 다를까 싶어서 현직 선배를 만나봤는데, 하는 일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가치 있는 일, 그런 꿈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해외로 나가면 무언가 발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유럽으로 교환학생도 가봤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4학년이 되어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휴학도 해봤다. 하지만 휴학 기간 동안 특별히 추구하는 방향이 없었기에 의미 없이 4학년 2학기를 마치고 덜컥 졸업을 해버렸다.

 

첫 지푸라기가 되어주었던 것은 ‘취업사이트’였다. 그간 내가 했던 활동들을 나열해보고 그 중에 내가 관심이 가는 단어를 취업사이트에 입력해봤다. 첫 단어는 ‘기획’이었다. 뭘 기획할지는 모르겠는데 무언가를 만들고 기획해보는 일에 끌렸다. 그렇게 발견하게 된 첫 취업 자리는 공기업 해외전시기획팀의 비정규직 일자리였다. 6개월간 업무를 하는 동안 공기업 업무는 나에게 ‘싫은 일’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해외 전시를 ‘기획’하는 창의적인 일은 사기업이 했고, 공기업의 역할은 그런 사기업들을 선정하기 위해 RFP를 작성하고 심사를 진행하는 등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제반 업무를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기획을 하는 사기업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우연히 발견한 ‘서비스기획’에 꽂혀 합격률 80%되기까지 

본격적으로 내가 일하고자 하는 ‘분야’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기획이라고 다 같은 기획이 아니었다. 어떤 산업군에서 기획을 하고 싶은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교육 분야를 알아보았다. 대학시절 장애아동들과 함께 활동을 하는 동아리,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활동도 했었기에 자신이 있기도 했다.

 

새롭게 떠오르는 교육 스타트업 회사의 신사업기획팀 인턴으로 들어갔다. 회사 PR을 잘 했던 곳이었기 때문에 기대가 컸었고 그만큼 실망도 컸다. 정직원 전환형 인턴이었는데, 아직 기반이 갖추어지지 않은 회사일뿐더러 나에게 던져지는 업무를 내 윗 사람들조차 처음 해보는 것들이라 명확한 가이드와 좋은 결과물에 대한 기준조차 없었다. 정직원으로 입사하고 싶어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창의적이지 못하다, 넌 기획하면 안되겠다’ 등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정규직으로는 전환되지 못한 채 다시 사회 밖으로 내던져졌다.

 

그 후로 8개월간 내 생에 가장 힘들었던 취준생활을 보내게 된다. 취준생이 힘든 이유는,  나라는 존재를 빨리 사회 속에서 어떤 직업의 이름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드는 동시에 계속해서 사회에서 내팽개쳐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때의 나는 내가 어떤 보석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니까. 그저 피어날 때를 기다리며 계속해서 시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아직 방향성을 잡지 못하던 시기에 냈던 모든 이력서는 합격률이 0%에 수렴했다. 서류 결과가 날 때마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무한 굴레였다.

 

다행히도 다시금 취업사이트에서 다음 지푸라기를 찾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기획’이라고 검색하고 결과로 나온 여러 공고 중 ‘서비스기획’이라는 직무를 처음 발견했다. 직무 설명에 올라온 내용을 보면서 먼저 흥미를 느꼈고, 한 IT 기업에서 올려둔 과제를 해보면서 이 일을 정말 해보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앱 서비스 1개를 분석해보고, 새롭게 해보면 좋을 서비스를 제안해보세요’라는 과제였는데, 기존 서비스를 분석해보고 새로운 서비스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때부터 이 직무를 파기 시작했다. 이런 직무를 뽑는 회사는 어떤 회사가 있는지, 어떤 일을 하는 직무인지, 어떤 역량을 필요로 하는지, 내가 지금까지 했던 업무 경험과 어떻게 연결시켜서 나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지. 놀랍게도 원하는 직무가 무엇인지 그 방향성만 잡았을 뿐인데 지금까지 했던 경험 중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전부 의미 있는 경험으로 재구성됐다. 통역을 하러 나갔을 때 왜 그 컨퍼런스를 기획하는 사람이 돋보인다 느껴졌는지 스스로 이해하게 됐고, 학교 과제를 할 때에 나서서 발표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 교육 스타트업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잠시 앱/웹 서비스 기획을 해볼 경험이 있었다는 것 또한 좋은 스펙이 되어서 돌아왔다. 이렇게 방향성을 잡고 나의 강점을 당당하게 쓸 수 있게 되니 서류 합격률이 80% 이상으로 뛰었다. 여러 번 면접을 보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신입을 뽑지 않는 직무에 신입으로 입사하기

서비스기획(PM) 직무로 취업을 하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나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신입을 잘 뽑지 않는 직군이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PM 직군은 경력직을 더 선호한다. 취준생 입장에서 가장 한탄스러운 부분이다. ‘다 경력직만 뽑는다면 나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으라는 걸까.’ 하는 생각을 나도 했었다. 하지만 PM의 업무 특성상 경력이 없는 신입을 뽑아서 맡기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전공과 성적으로 업무를 잘 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가 없는 직무니까.

PM에게 필요한 역량 (출처: 작가)

 

PM에게 필요한 역량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협업/커뮤니케이션, 분석, 논리적인 기획력을 주로 꼽을 수 있다. 디자이너라면 앞서 했던 디자인 결과물이라도 볼 수 있을 테고, 개발자라면 어떤 언어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코딩 테스트라도 볼 수 있을 텐데. PM의 역량은 이전 경력이 없다면 이력서와 면접을 통해 가늠하기는 어렵다.

 

커뮤니케이션 역량은 최소 디자이너, 개발자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조직 내에서만 경험하고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기획력과 분석력 또한 마찬가지이다. 경력직이라면 이력을 토대로 이 사람이 어떤 사고의 흐름과 논리력을 바탕으로 기획을 진행했는지, 성과가 어땠는지 알 수 있지만 그런 경력이 전혀 없다면 이 사람이 좋은 역량을 가진 PM인지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특히 주니어 PM을 뽑을 땐 프로젝트 시작부터 끝까지의 한 사이클을 겪어 보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서비스기획자로서 경력이 전무했었기에 일단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WWW이라는 네이버 카페에 가입해서 실제 현직 서비스기획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들여다 보았다. 몇몇 사람들이 강연을 연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서비스기획자라면 작성해야 하는 기획서인 스토리보드 작성 강연, 포트폴리오 만드는 강연 등을 닥치는 대로 들었다. 그중 스토리보드 강연을 하셨던 강사님이 소규모 ‘번개’를 연다는 말에 강남으로 뛰쳐나갔다. 도서관에서 취업준비를 하다가 집으로 달려가 씻고, 화장을 하고 면접을 보는 마음으로 모임에 나갔던 기억이 난다. 신입으로서 어떻게 취업을 할 수 있는지를 열심히 질문했었는데 그로부터 며칠 뒤 강사님께 다시 연락이 왔다. 본인이 팀장으로 있는 서비스기획팀에서 신입을 뽑으니 지원을 해보라는 문자였다. 마침 그간 경력을 쌓았던 교육 분야의 IT 서비스기획을 할 수 있는 자리였고 그렇게 원하는 직무에 취업을 하게 된다.

 

사람과의 연결은 무언가 일을 도모하고자 할 때에 강력한 무기가 된다. 취업을 했던 당시에는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팀장님을 우연히 만났고 기회를 얻은 거라고. 그 뒤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앞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보고 느끼고 경험해왔다. 무언가 하고 싶은 직무가 생긴다면 반드시 현직자들과 관계를 맺고 커뮤니티에 속해있으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현재 ‘프로덕트의 세계’라는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다. IT 프로덕트에 관심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만들어 갈 때마다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음의 힘을 느낀다. 바로 커뮤니티에 속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는다면 멘토링을 통해서, 강연을 통해서 나의 장점을 어필해두면 분명 빛을 발할 때가 있을 것이다. 정말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에게는 그를 도와주고자 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노력해 성취한 경험, 인생을 영원히 뒤바꾸다

고된 취업 기간 끝에 남은 성취 경험

되짚어 생각해보면 취준생의 경험은 나의 노력의 결과로 원하는 직무를 찾고, 취업을 한 성취를 남겼다. 인생을 통틀어서 나 스스로 쟁취한 ‘성취’였다. 취업준비생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것을 꼽으라면 주변 사람들의 조언 아닌 조언이었다. 스타트업 인턴 시절, 기획을 해본 적 없는 나의 상사가 ‘넌 기획에 안 맞아. 공무원을 생각해보는 게 어때’라는 잔인한 말을 했었다는 것. 차라리 그 상사는 나에게 의미 없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다. 더 속이 상했던 건 언제나 나를 믿어주었던 부모님의 말씀이었다. 엄마는 늘 내가 원하는 대로 해보라고 격려해주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엄마조차 길어지는 나의 취준 기간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는 않아. 그냥 적당한 일을 찾아서 취업을 하는 게 어떨까’라고 이야기하셨었다.

 

일은 누군가에게는 적당한 돈벌이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자아실현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적당한 돈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회사 밖 여가시간을 진짜 인생이라 생각하고 지내기도 한다. 나를 더 잘 알게 된 지금, 나는 일을 그저 수단만으로 볼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그렇게 내가 취준시절에 직무를 대충 정하지 못하고 고군분투했음을 지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주변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서비스기획이라는 직무를 찾은 후에도 그랬다. 자주 이력서, 자기소개서 상담을 받으러 갔던 학교 취업센터 선생님이 계셨다. 원하는 직무를 발견하고 날아갈 것 같이 기뻐서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들었던 대답은 참담했다. ‘이미 졸업도 하고 나이도 들어가는데, 이제 와서 직무를 바꾸면 언제 취업 할래?’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혼자 멍해졌던 기억이 난다.

 

성취의 경험은 나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서비스기획 직무로 취업을 하고, 보란 듯이 원했던 직무로 돈을 벌게 되면서 ‘내가 원하는 데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 나의 답은 나만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이가 조언은 해줄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이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결국 매일 그 일을 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무엇을 하더라도 내가 결정하고 내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선택한 것이 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그 힘들었던 8개월의 시간을 겪지 않고 쉽게 취업을 했다면, 교육 스타트업에서 바로 정직원이 되었더라면 이런 성장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하는 길을 찾는 여정에 만난 대기업 

취업 후 일을 하면서도 더 큰 기업에서 인정받으면서 일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다. 대학 시절 해내야 하는 태스크인 ‘취업’에서 최고의 성과로 인정받는 건 대기업 취업일 것이다. 누구나 아는, 열망하는 대기업에서 당당하게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일하는 삶. 첫 취업했던 곳은 중견기업 규모의 회사였고, IT로 돈을 버는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기획한 결과를 바로 고객 방문, 매출의 지표로 확인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특히 이왕이면 많은 고객들이 이용하는 대기업의 서비스를 기획하는 기획자가 되어보고 싶었다.

 

이직을 생각하면서 일했기 때문에 늘 준비된 자세였다. 회사 외부에서 기획자들이 모여있는 독서모임에 참여했고, 회사 내에서도 같이 파이썬 등 개발 언어를 공부하거나, 데이터 분석을 해보는 등 나만의 역량을 쌓고자 노력했다. 같이 일하는 개발자의 지인 중에 대기업 IT회사에서 일하는 기획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탁해서 따로 질문을 하고 멘토링을 받기도 했었다. 그렇게 준비를 하는 동안 기회가 왔다. 평소에 가고 싶었던 커머스 대기업에 마침 3년차 기획자 공고가 난 것이다.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최종 합격 통지를 받기까지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최선을 다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열심히 해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력서 제출 기간까지 1주일 정도 남았던 시점에서 공고를 발견해 더 달려야 했다. 그간 했던 모든 업무 이력들을 뽑아보고 채용공고와 직무 설명(Job Description)을 인쇄해서 줄을 쳐가며 내가 어필할 수 있는 역량과 경험들을 써내려갔다. 커머스 도메인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브런치, 유투브를 뒤져가며 커머스 서비스기획에서는 어떤 업무를 하는지 공부했다. JD 분석한 내용,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내가 강조해야 할 경력과 나의 강점을 뽑고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퇴고를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이력서 중에 내 것이 뽑힐 수 있게 하는 ‘화룡점정’의 방법을 고민하다가, ‘기획계의 관종’이라는 단어를 넣었다. 한눈에 들면서도 스토리를 잘 풀어갈 수 있을 만한 키워드라고 생각했다.

 

결론은 성공이었다. 1차 면접에서 면접관이 왜 기획계의 관종이라고 썼는지를 물으셨고 준비했던 대로 답변을 할 수 있었다. 2차 면접에 들어가기 전에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뒷조사를 했다. 2차 면접은 보통 임원들이 들어오는데, 어떤 사람이 들어오게 될지 몰라서 ‘잇다’와 같은 멘토링 플랫폼에서 지원한 회사에 다니는 현직자분을 찾아 질문했다. 다행히도 멘토분이 성심성의껏 답변을 주셔서 나름대로 면접에 올 분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다음엔 그 분이 했던 인터뷰, 강연 등을 검색했다. 그분이 어떤 시선을 가지고 서비스를 바라보는지를 체득하고 나만의 언어로 재구성했다. 실제로 면접에서 그간 공부했던 커머스 기획에 대한 지식과 만들고자 하는 서비스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셨고 최종 합격을 할 수 있었다.

 

이직이라는 성취를 계기로 어떤 일이든 노력을 들여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대기업에서 업무를 해본 경험은 내 전체 커리어 패스를 통틀어 한 단계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고, 노력을 통해 얻어낸 결과였다. ‘나의 답은 나에게만 있다.’ , ‘무엇인가 노력을 들이면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나니 그 후에 조금 더 과감한 도전도 나 자신을 믿고 해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대기업을 퇴사하고 유망한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설령 그게 누군가에게는 틀린 선택이라 하더라도 나에게는 옳은 선택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도전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좋아하는 지인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아이를 낳게 된다면 가장 해주고 싶은 건 노력을 통해 성취를 이뤄보는 작고 큰 경험들이라고. 본인 또한 성취를 해보고 난 전과 후의 자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고. 크게 공감되는 말이었다. 그 노력이 크면 클수록 그 결과로 얻은 성취는 나를 더욱더 성장하게 한다.

 

여러분의 말씀은 그저 그런 참고사항일 뿐입니다(feat. 이무진)

싱어송라이터 이무진의 ‘참고사항’ 뮤직비디오 티저 (출처: 빅플래닛메이드)

 

타인의 조언은 결국 그 사람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이무진의 첫 미니앨범 타이틀곡인 <참고사항>을 좋아한다. '당당히 하나 말씀드리자면은 우리 마음 하나하나 다 소중한 거예요. 존중받아야 해요. (중략) 그리 말씀하셔도, 화를 내셔도 저는 그게 싫어요. 여러분의 말씀은 그저 그런 참고사항 뿐입니다.' 결국 내 인생의 결정을 하는 건 나 자신이다. 이무진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이제 와서 직무를 바꾸지 말라고 했던 취업센터 선생님은 IT 산업에 대해서, 서비스기획이라는 직무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리고 나만큼 내가 그 일에 잘 맞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때로는 전문가의 조언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취업 성공을 도와주셨던 첫 팀장님은 IT 회사들이 처음 설립되던 시절부터 기획 일을 하셨던, 업계에서 꽤나 알아주는 분이셨다. 항상 존경하던 분이었지만 그분 또한 자신의 경험 내에서 조언을 해주셨다. 커머스 업계로 이직을 하고 싶다고 고민상담을 했을 때, '교육과 커머스는 다르니 커머스로 가면 지금의 3년 커리어를 버리는 것'이라고, '교육업계에 왔으니 교육에 계속 있는 게 낫다'고 이야기해주셨다. 그 말을 듣고 더 고민이 깊어졌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결국 원하는 대로 커머스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고 다시 돌이켜보아도 나에게는 잘한 결정이었다. 아무리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크고 멋있어 보이는 사람이라 해도, 결국엔 그 사람 또한 자신의 경험의 틀 안에서만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님도 이 글이 결국 글 쓰는 이의 경험 안에서만 쓰였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아직 나만의 보석을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다

내가 무슨 색을 가진 사람이고 어떻게 더 빛날 수 있는 사람인지는 오직 나만 알고 있다. 아직 표면에 떠오르지 않아서 나조차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가장 명확한 답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카피라이터 김민철 작가의 <모든 요일의 여행>에 독일 시골에서 프랑스까지 건너와 노래를 부르던 한 소녀의 일화가 있다. 마치 CD를 틀어둔 것처럼 매력적인 노래를 부르던 그 소녀는 부끄러워하며, ‘음악은 좋은데 사람들 앞에서 노래부를 자신이 없어서 아무래도 음악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며 김민철 작가는 ‘정말로 자기가 가진 보석을 모르는 표정이었다. 이십 대의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던 표정’이라고 회고한다.

 

우리는 개개인 마다 각자의 보석을 가지고 있다. 그저 아직 어떤 보석인지 발견하지 못했을 뿐. 현재의 노력이 고통스럽다 생각해도 내가 정말 맞다고 생각하는 길이라면 포기하지 않고 해내보길, 그리고 노력에 따라 성취하고 성장해나가면서 인생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응원해본다.

<출처 : 프로덕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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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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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2024.03.27. 오후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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