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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로 묶인 브런치스토리 - 티스토리 - 카카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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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로 묶인 브런치스토리 - 티스토리 - 카카오스토리
오랜만에 브런치(Brunch)에 들어왔더니 로고가 브런치스토리(Brunchstory)로 바뀌어 있었다. 갑자기 브런치스토리라니, 약간 브런치 가게 이름 같은데요?
그리고 이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브런치에 접속하기 위해 '브런치'를 검색했는데 온갖 브런치 메뉴와 식당만 나올 뿐, 카카오가 야심 차게 밀고 있는 플랫폼 브런치는 코빼기도 볼 수 없었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015년 6월, 카카오가 블로그 서비스 ‘브런치’를 오픈했을 때 아무리 베타서비스였다고 하더라도, 대학 마케팅 입문서에도 나올 법한 브랜드 네이밍 3가지 기본 원칙을 몰랐을 리 없다. 브랜드 네임은 첫째 발음하기 쉽고 듣기도 쉬워야 하며, 둘째 짧고 간결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독창적이고 분별력 있어야 한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는 독창적이거나 분별력 있는 이름은 아니었다. 4년간의 베타서비스를 끝내고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도 브런치는 브런치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고유명사화하기 위해 뒤에 ‘스토리’라는 단어를 붙인 걸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카카오가 브런치를 ‘브런치스토리’로 개편하며 생각한 큰 그림은 무엇인지, ChatGPT가 글을 쏟아내고 있는 시대에 콘텐츠 플랫폼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지 살펴보고자 한다.
과거 브런치는 로고에서부터 '글' 좋아하는 사람들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글씨체는 이름하여 세리프(Serif), 한글로는 명조체. 명조체에는 붓의 움직임이 담겨 있다. 세로획은 굵고 가로획은 가늘다. 획의 끝은 돌출된 형태로 뭉툭하게 장식했다. 붓으로 글씨를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힘을 줘 글을 쓰면 붓이 눌려 굵게 획이 그려지고 힘을 빼고 쓰윽 손을 옮길 때는 스쳐 지나온 흔적만 가늘게 남는다. 명조체에는 손글씨의 힘과 움직임이 담겨 있다. 은근하게 멋을 낸 글씨체 덕분에 서정적인 내용의 글에 어울리고,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인 브런치의 핵심 가치와도 걸맞았다.
현재 브런치스토리는 로고 글씨체를 산스(Sans) 고딕체로 선택했다. 획에 삐침이 없고 굵기가 일정하다. 이는 붓으로는 불가능한 네모반듯한 글씨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고딕체는 활판 인쇄와 디지털 서체의 등장과 함께 가능해진 글씨체로 절제된 스타일을 제공해 가독성이 뛰어나며, 단정하고 깔끔한 느낌을 준다.
‘인쇄 매체에서는 명조가, 온라인 매체에서는 고딕이 가독성이 좋다’라는 말이 있다. 브런치가 로고 서체를 명조체에서 고딕체로 바꾼 시도는 연필과 붓의 감성을 내려두고, 글쓰기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에 더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글쓰기’ 플랫폼에서 글쓰기 ‘플랫폼’으로 말이다.
브런치스토리의 로고를 살펴보다 문득 설마?하고 티스토리에 들어가봤는데, 역시나 티스토리 로고도 바뀌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카카오스토리에 들어가 새로워진 로고를 확인하고 나니, 카카오가 꿈꾸고 있는 큰 그림이 무엇인지 더 궁금해졌다.
지난 3월 28일 카카오는 브런치스토리, 티스토리, 카카오스토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스토리 홈’을 만들었다. ‘Story 스토리’라는 이름의 카카오톡 채널도 내놓았다. 스토리라는 컨셉으로 ‘스토리 홈’에서 콘텐츠를 한번에 모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만 아직은 브런치스토리의 서비스명 변경에 대해서만 보도자료를 내고, 스토리 홈에 대해서는 보도자료나 마케팅을 하지 않고 있다. 우선은 시장의 반응을 살펴보며 점진적으로 배포할 계획으로 보인다.
카카오는 현재 브런치스토리, 티스토리, 카카오스토리라는 각기 다른 글쓰기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 타깃 그룹과 플랫폼 방향성은 다르지만 글쓰는 사람이 콘텐츠를 만들고, 사용자들이 구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 플랫폼이 고민하는 지점은 비슷하다. 콘텐츠 창작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통계 자료, 사용자가 더 오랜 시간 콘텐츠를 읽게 하기 위한 전략 등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카카오 내에서 브런치팀, 티스토리팀, 카카오스토리 팀으로 나눠 플랫폼을 운영하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다. 보다 효율적인 데이터베이스 관리와 운영을 위해 ‘스토리 홈’이라는 통합 플랫폼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는 주로 영상을 볼 때 유튜브에 들어간다. 유튜브에는 짧고 자극적인 영상 쇼츠나, 긴 클립의 정보성 영상을 볼 수 있고 나아가 영화도 구매해 볼 수 있다. 뭘 볼지는 몰라도 일단 유튜브에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무엇을 읽을지 고민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플랫폼은 어딜까? 사실 어느 한곳을 고르기보다는 트위터,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 등을 헤매는 편이다.
글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하는 사용자로서 나의 콘텐츠 경험 여정을 공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처럼 ‘글 콘텐츠를 브라우징 한다’는 목적을 가진 사용자가 바로 접속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플랫폼이 없고, 특히 카카오 서비스 내에서도 브런치나 티스토리로 트래픽이 흩어지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인식했을 수 있다. 만약 카카오의 통합 콘텐츠 플랫폼이 있다면 브런치에서 스타트업 경험담을 읽던 사람이 인사이트가 많은 티스토리 테크 블로그에 유입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구독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도 더욱 넓게 확장할 수 있다.
카카오가 꿈꾸는 큰 그림대로 된다면 좋겠지만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각각의 플랫폼이 제공하는 경험이 다른데, 통합 플랫폼으로 나아가는 데 큰 함정이 되지 않을까?
단적인 예시로 ‘시어머니와 밥 먹고 왔어요!’라는 주제로 글을 쓴다고 가정해 보자. 브런치스토리에서는 "어느 날 시어머니가 밥을 먹자고 했다", 카카오스토리에서는 “시어머니가 밥 먹자고 하네요~^^”, 티스토리에서는 배너광고를 20개쯤 곁들인 "시어머니와 갈 만한 맛집 Top 5”라는 콘텐츠가 나오지 않을까? 이처럼 각 플랫폼의 차이점은 타깃, 비즈니스 전략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작품이 되는 이야기’라는 카피에서도 느껴지듯 브런치스토리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글쓰기 창작 플랫폼에 가깝다. 아무나 글을 쓸 수 없고, 글을 써 제출하고 심사에 통과해야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글에 꽤나 진심인 사람들이 모였고, 다른 블로그 플랫폼보다는 양질의 글이 올라온다는 기대감도 있다. 브런치스토리는 광고 수익보단 1년에 한 번 진행하는 ‘작가 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글쓰기에 대한 원동력을 제공한다. 예컨대 ‘오늘 날씨가 어떤지 알아볼까요? 그럼 다음에 알아보겠습니다!’ 같은 낚시성 콘텐츠가 거의 없는 편이다.
이렇듯 브런치스토리는 서비스 이용의 허들(작가 심사 과정)을 두고, 글쓰기에만 집중하게 한다. 또한 단순하고 폐쇄적인 UI, 책 출판 기회 제공 등은 브런치스토리 사용자가 계속해서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기능한다. 덕분에 콘텐츠 양과 트래픽으로 승부하는 다른 플랫폼과 달리 차별점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티스토리는 브런치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플랫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좀 아는 블로거들의 유용한 이야기’라는 새로운 카피가 붙었는데, 유용한 이야기도 있겠지만 주로 광고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블로거들이 자리 잡고 있다. 티스토리는 HTML, CSS를 이용해 홈 화면의 폰트 크기, 이미지 등을 수정할 수 있게 열려있고, 구글 애널리틱스 등 외부 툴을 붙일 수 있어 자신의 입맛에 맞는 블로그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덕분에 구글, 카카오 등 광고 역시 원하는 대로 붙일 수 있어 이것이 블로거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블로거는 구독자를 꾸준히 모으려는 목적보다는 유입을 목적으로 콘텐츠를 작성한다. 종종 콘텐츠보다 배너 광고가 더 많은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대로의 일상 이야기’를 지향하는 카카오스토리는 앞서 살펴본 브런치스토리, 티스토리와는 또 다른 성격을 가졌다. 정보 제공이 목적인 블로그와 달리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소식을 공유하는 SNS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트위터보다 많은 글자 수를 쓸 수 있고, 인스타그램보다 많은 사진과 영상을 올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카오스토리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카카오스토리만이 제공할 수 있는 엣지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 카카오스토리 MAU(월 실사용자)는 1172만 명에서 917만 명으로 약 30% 줄었다. 40~50대의 절반 이상이 카카오스토리를 이용하고 있으나, 10~20대 사용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기업이나 관공서 등에서 쓸 수 있는 고객 소통 채널로 확장 중이지만, 카카오톡에 가입한 유저 수가 많다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SNS 플랫폼과 큰 차별점은 없다.
이렇듯 세 플랫폼은 타깃도 비즈니스 모델도 다르다. 따라서 스토리 홈의 등장은 내부 관리 측면의 효율 면에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성격이 다른 유저를 한곳에 묶어 두려는 어려운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카카오가 플랫폼 통합을 시작으로, 콘텐츠 구독이나 유료화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 중이라면 각 플랫폼의 콘텐츠 경험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유저를 한곳에 모아둘 수 있는 더욱 근본적인 고민과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콘텐츠 플랫폼에 대한 카카오의 노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 ‘카카오뷰’ 탭을 내놓으면서 커뮤니티, 카페, 유튜브, 뉴스 콘텐츠 등을 모두 통합해 보여주려는 시도를 꾀하기도 했다. 사용자가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직접 발행하고 구독하는 양방향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카카오뷰는 카카오톡 하단 내비게이션 탭 바에서 정중앙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뚜렷한 출구를 찾지 못했고, 단순 광고 수익을 노리는 콘텐츠가 자리를 채우며 결국 출시 약 1년 반 만에 위치를 변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스토리 홈’이라는 새로운 카드로 콘텐츠 플랫폼 구축에 진심을 드러낸 카카오, 하지만 ChatGPT의 등장과 함께 카카오뿐 아니라 많은 콘텐츠 플랫폼의 고민은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바로 콘텐츠의 품질 때문이다. 실시간 핫이슈에 AI가 쓴 글을 자동 발행해 주는 매크로 프로그램이 ‘꿀팁’으로 공유되고, AI가 작성한 듯한 수상한 포스팅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자동 발행 글로 유입되는 트래픽을 기반으로 광고 수익을 노리는 허위 콘텐츠가 많아진 것이다.
앞으로 ChatGPT가 쏟아내는 콘텐츠 홍수 속에서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결국 ‘양질의 콘텐츠’다. 트래픽 모으기를 위한 플랫폼 통합보다, 어떻게 하면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카카오가 플랫폼을 통합하려는 동안, 누군가는 오히려 주제에 따라 타깃 대상을 좁히는 니치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핀테크 플랫폼 토스는 ‘콘텐츠도 토스가 만들면 다릅니다’라는 슬로건으로 토스피드를 운영하며 자체적인 경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또한 IT 아웃소싱 플랫폼 위시켓에선 이 글이 발행된 ‘요즘IT’를 운영하고 있다. 특정 주제와 타깃 대상에 따라 세분화된 플랫폼에서는 더욱 양질의 콘텐츠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카카오의 ‘통합 콘텐츠 플랫폼’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스토리’라는 단어 위에 그어진 굵은 선처럼 콘텐츠 업계의 큰 획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시간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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