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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취향이 아닌 논리로 기획하기

 

기획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많은 디자이너 지망생과 현업 사용자 경험(UX) 디자이너가 더 좋은 서비스와 사용자 경험을 위해 다양한 역량을 개발한다. 아쉬운 점은 이들 대부분이 눈에 보이는 영역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나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는데, 학사 시절에 모델링 수업은 있었어도,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라는 과목이 따로 있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디자인 사고라는 능력은 디자인 작업을 여러 번 진행할 때 동반 성장하는 스킬로 이해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많은 기획자와 디자이너들이 본인에게 당연히 디자인 사고가 내재하여 있다고 여기거나, 디자인 사고보다 툴 활용 능력을 습득하는 데 매진한다. 그런데 실제로 이 디자인 사고라는 역량은, 소프트 스킬처럼 자연스레 성장하지는 않는다. 시니어 기획자임에도 사고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지만, 주니어임에도 뛰어난 분석 능력을 바탕으로 디자인 사고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디자인 사고 능력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는 바로 개인적인 느낌이나 취향이 아닌, 논리를 바탕으로 기획과 디자인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디자인 사고를 발달시킬 수 있는 세 가지 형태의 형식 논리학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디자인 사고와 관련이 깊은 가추법(abduction)을 실제 인터뷰 상황을 예로 들어 알아보고자 한다.

 

논리적 기획 가추법(abduction)
<출처: Lidiia Nemyrova on Unsplash >

 

 

논리적으로 문제 정의하기: 귀납, 연역, 가추

기획자로서 우리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여러 현상을 수집한다. 관찰을 통해 사람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발견하고, 그 너머에 있는 문제를 추론해 정의한다. 이 문제 정의를 위해, 귀납, 연역, 가추라는 논리학의 세 가지 추론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귀납 Induction

귀납은 특정한 현상에서 일반적인 전제를 추출하는 방법이다. 관찰을 통해 여러 사례를 비교하고, 사례에서 나타난 유사한 특정 속성들을 일반화하여 정의한다. 아래는 커피를 주문하는 앱의 사용자들을 관찰하여 귀납적으로 결론, 즉 여기서는 ‘문제’를 도출한 예다. 

 

고객 A는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여 커피를 주문하는 데 52초 걸렸다. (현상-사례1)

고객 B는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여 커피를 주문하는 데 50초 걸렸다. (현상-사례2)

고객 C는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여 커피를 주문하는 데 62초 걸렸다. (현상- 사례3)

고객 D는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여 커피를 주문하는 데 57초 걸렸다. (현상- 사례4)

 

∴ 고객들이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여 커피를 주문하는 데에는 50초 이상 걸린다. (결론)

 

이 경우 고객들이 커피를 주문하는 데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을 문제로 정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30초 이내로 커피를 주문할 수 있게 UX를 개선한다’는 등의 목표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연역 Deduction

연역은 일반적인 전제에서 특정 결론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연역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전제가 참이라면 결론은 필연적으로 참이다"라는 것이다. 귀납적 추론을 통해서는 새로운 지식을 제안할 수 있는 반면, 연역은 이미 전제에 함의되어 있던 정보를 반복한다는 차이가 있다.

 

연역적 사고는 제품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문제 상황을 명시적으로 짚고 넘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연역적으로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현상 속에 들어 있던 ‘사실’이 사람들이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언어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래의 예시를 보자. 

 

서비스가 제공하는 편익이 명확하지 않으면, 사용자는 서비스에서 이탈한다. (전제1)

우리 서비스는 리텐션이 낮다. (전제2)

∴ 우리 서비스는 사용자에게 명확한 편익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결론)

 

전제1과 전제2가 참이라면 결론이 참이다. 결국 기획자로서 인지하고 있던 현상(전제)이 이미 ‘우리 서비스는 사용자에게 명확한 편익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논리적으로는 전혀 새로운 정보가 아니다. 하지만 문제를 인지하기 쉽게 구체적으로 명문화한다. 그래서 기획을 해 나감에 있어 이해관계자들 간에 컨센서스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추 Abduction

가추는 어떤 현상이 다른 사실을 암시하고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안한다. 가추법은 귀납법과 연역법에 비해 결론의 신뢰성이 떨어진다. 전제들이 참이더라도 결과(가설)가 꼭 참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의 현상에 대해 가설이 무궁무진하게 다양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 많은 가설 중에서 가장 현상을 설명하는 데 적합할 것으로 보이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현상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진리를 탐구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 서비스의 데이터 통계에서 다음과 같은 현상이 관찰되었다고 해 보자.

 

금요일마다 20대 사용자의 배달 주문율이 극단적으로 떨어진다. (전제1)

 

기획자로서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이러한 현상을 유발할 것으로 추측되는 사례 몇 가지를 추려볼 수 있을 것이다.

 

금요일 저녁에 식당가를 돌아다니면 20대 손님들이 많다. (현상-사례1)

금요일에 호캉스를 떠나는 20대가 많다. (현상-사례2)

금요일에 부모님 댁에 내려가는 20대 대학생과 사회초년생들이 많다. (현상-사례3)

 

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울 수 있다.

 

∴ 20대 사용자들은 금요일 저녁에는 배달 음식보다 식당에서 식사하기를 좋아한다. (가설1)

∴ 20대 사용자들은 금요일에는 배달 음식보다 호텔 식당에서 식사하기를 좋아한다. (가설2)

∴ 20대 사용자들은 금요일 저녁에는 배달 음식보다 식당에서 식사하기를 좋아한다. (가설3)

 

가추법(abduction)
<출처 : Firmbee.com on Unsplash>

 

연역은 무언가가 있음을 강하게 증명하고, 귀납은 무언가가 실제로 작용함을 보여 주고, 가추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제안한다.


찰스 샌더스 퍼스 Charles Sanders Peirce

 

 

실제 업무에서 가추법 활용하기

사용성 테스트에서 가설 만들기

사용자 인터뷰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하고자 하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대놓고 물어볼 수 없다는 것이다. 편향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겠지만, 엄격한 형식을 취하고자 한다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아주 단순한 예를 들어 보자. 좌측 하단에 있는 저장하기 버튼이 눈에 잘 띄는지 궁금하면, "좌측 하단에 있는 저장하기 버튼이 눈에 잘 띄나요?"라고 물어서는 절대 안 된다. 저장하기 버튼 주변에 있는 것들에 대해 질문하거나, "이 텍스트를 저장해보세요."처럼 행동을 유도해 간접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사용자의 행동을 다 관찰하고 나서, 마무리로 저장 버튼을 찾기 어려웠는지 직접 물어 확인하는 것이 편향을 줄이는 데 좋다. 이 시나리오로 가추의 예를 든다면 다음과 같을 수 있다.

 

시나리오(사례 관찰하기)

 

나: "방금 작성하신 이 텍스트를 저장해보세요."

사용자: (화면 오른쪽 위를 쳐다본다.)

나: '저장하기 버튼이 오른쪽 위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네.'

사용자: (다음으로 왼쪽 위를 쳐다본다.)

나: '저장하기 버튼은 기본적으로 상단에 배치된다고 생각하는구나.'

사용자: (가운데 텍스트 영역을 잠시 바라본다. 손가락으로 좌측 하단의 취소하기 버튼을 누르려다가 우측의 저장하기 버튼을 누른다.)

나: '취소하기 버튼이 혼란을 주고 있군.'

 

기획자로서 사용자에게 지시어를 던지기 전에 염두에 두고 있던 심리학 규칙은 다음과 같다.

 

[규칙 1] 사용자는 버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버튼이 있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이다. : 멘탈 모델

[규칙 2] 버튼이 눈에 잘 띄면 사용자는 버튼을 바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시각적 위계

 

앞서 관찰한 사례와 기획자로서 기존에 알고 있는 규칙을 함께 따져보고, 다음과 같은 가설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가설 1] 저장하기 버튼의 위치가 사용자의 멘탈 모델에 적합하지 않다.

[가설 2] 저장하기 버튼과 취소하기 버튼의 시각 위계가 잘못되어 있다.

 

이러한 추측은 물론 틀릴 확률이 낮지 않다. 그럴 땐 먼저 충분히 관찰을 한 뒤에 인터뷰 마지막쯤에 조심스럽게 물어봐서 이를 확인하면 된다. 아니면 다른 시안을 통해 사용자에게 한 번 더 테스트해서 알아보는 것도 매우 좋을 것이다.

 

데이터 분석 툴에서 가설 만들기

가추적 사고는 인터뷰 상황에서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사용자를 마주하지 않은 다른 상황에서도 우리는 가추적으로 가설을 설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팀이 어떤 운동 앱을 서비스하고 있다고 하자. 최근에 팀에서 기능을 업데이트했는데, 업데이트한 뒤 며칠 후부터 앱의 다운로드 수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원인을 명확하게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업데이트 이후 우리 앱의 신규 다운로드 수가 약 20% 늘었다. (전제)

 

왜 다운로드 수가 올랐을까? 팀원들끼리 논의한 결과, 다운로드 수 상승에 영향을 줬을 법한 요인은 다음과 같았다.

 

(1) 얼마 전에, 한 방송에서 우연히 연예인 A씨가 운동 앱을 썼을 때의 효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2) 최근 인스타그램 광고를 시작했다.

(3) 업데이트한 기능이 각종 SNS에서 조금씩 공유되고 있었다.

 

이를 토대로 세울 수 있는 가설은 다음과 같다.

 

[가설 1] 연예인 A씨의 언급으로 운동 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했다.

[가설 2] 인스타그램 광고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가설 3] SNS에서 공유되고 있는 내용이 다운로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실 데이터 분석 툴로 현상을 이해하고자 할 때에는,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함을 깨닫는 것조차도 목적이 될 수 있다. 마케터라면 광고 때문에 다운로드 수가 올랐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개발자라면 기능 추가 때문에 올랐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사람이기에, 우리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하나의 변수로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하나의 원인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행동은 가설을 깨끗하게 검증하는 데 적절하지 않다. 

 

그러면 이렇게 도출된 가설을 가지고 다음으로는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만약 연예인 때문에 다운로드 수가 증가했다면,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다른 앱들의 다운로드 수도 비슷한 비율로 같이 올랐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기능 업데이트가 원인이라면, AB 테스트를 통해 이를 확인해볼 수도 있다. 이와 같이 가설은 한 번 세우고 방치하는 것이 아닌, 다음 테스트로의 디딤돌 역할을 했을 때 그 의미가 있다.

 

 

기획자와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크레타섬에서 미노타우루스를 죽인 고대 영웅 테세우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프로크루테스를 무찌르는 테세우스
프로크루테스를 무찌르는 테세우스 <출처 : 위키백과>

 

테세우스는 영웅이 되기 위해 아테네로 여행을 하던 중 프로크루스테스라는 강도를 만난다. 처음에 이 강도는 길 가는 나그네를 아무런 대가 없이 하룻밤 재워 주는 인심 좋은 사람처럼 등장한다. 그런데 나그네가 깊은 잠에 빠지면, 그는 자기가 가진 침대에 나그네를 꽁꽁 묶고 금품을 갈취한다. 그런 뒤에 나그네가 침대보다 키가 작으면 침대에 맞게 늘려 죽이고, 침대보다 키가 크면 튀어나온 발을 도끼로 잘라 죽이는 기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프로크루스테스는 자기가 사람들을 살해한 방법과 동일한 수법으로 테세우스에게 최후를 맞는다.

 

오늘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하나의 관용구처럼 쓰인다. 상대방의 의견이 본인이 가진 생각에 맞지 않으면 억지로 고집을 부려서라도 본인의 의사를 관철하려는 행동을 말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기획자들 사이에도 숨어있다. 그들은 자기가 가진 프레임 안에서 데이터를 해석하려고 하며, 종종 데이터를 자신의 주장에 맞도록 사실과 다르게 짜깁기하기도 한다. 그들은 디자인 커뮤니케이션에서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고, 어떠한 근거나 논리도 없이 고집을 부린다. 데이터를 자기가 가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억지로 욱여넣는 것이다.

 

컴포트 존(comfort zone)
프로크루테스의 강아지 <출처 : 시바견 카보스 블로그>

 

심리학에서 개인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행동 영역을 ‘컴포트 존(comfort zone)’이라고 한다. 우리는 편안하게 컴포트 존에 머무르는 것을 선호하지만,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라면 그곳에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논리학의 개념을 가볍게라도 이해해 보는 것이 기획자의 성장에 효과적일 수 있다. 논리라는 것은 기존에 우리에게 익숙한 생각 회로와는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려 보면 내가 가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부수고, 컴포트 존의 문밖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기획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신기하게도, 기획과 디자인에 문외한일수록 이 분야가 창의력과 감각,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우리가 기획을 할 때에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

 

"그래? 그건 네 생각이고, 내 생각은 달라. 우리 모두 각자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거야. 우리 서로를 인정해 주자. 하하."

 

친구들끼리 정치나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참으로 적합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남의 인생관에 합당한 자격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덕트에 대해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너도 맞고, 나도 맞다"라는 태도는 방만하다. 어느 시점에서는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실과 논리에 입각하지 않고 개인의 취향을 가지고 적당히 타협하는 경우,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느라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기능을 만드는 등 극악의 선택지로 치닫는 경우도 종종 있다.

 

논리적 기획
아무도 양보할 생각이 없으면 벌어지는 일 <출처럼블 바이럴 유튜브 캡처>

 

다른 의견을 만났을 때 어찌할 바를 몰라 회피하는 이런 태도는 논리적인 토론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자주 관찰된다. 프로크루스테스 같은 기획자들끼리 서로 만나면 어떻게 될까? 자신은 양보할 생각이 없고, 다른 이들을 컴포트 존에서 끄집어내기도 어려우니, 설득을 포기하고 충돌을 피하기 위해 그냥 서로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기 쉽다.

 

이런 행동은 좋은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객관적으로 현상을 이해하고, 서로 다른 의견들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으면 이를 통해 뾰족한 가설을 설계할 수 있다. 논리적인 세 명의 기획자가, 논리적이지 않은 열 사람 몫의 아웃풋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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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사용자 경험과 인지과학을 이야기합니다.
UX 리서처와 기획자로 일했고, 지금은 스타트업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https://brunch.co.kr/@malco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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