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점’찍은 카피라이팅

때로는 잘 짜인 카피라이팅 한 줄이 이미지나 제품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머릿속에 더욱 강하게 기억됩니다. 카피라이팅으로 유명한 많은 브랜드가 있지만, 빼놓을 수 없는 카피라이팅의 강자는 애플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플은 항상 훌륭한 카피라이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애플의 카피라이팅 텍스트를 보고 있으면 한가지 특별한 점이 눈에 띕니다. 바로 모든 문장에 ‘마침표’가 찍혀 있다는 것인데요. 심지어는 문장이 아닌 어절 단위에도 마침표가 찍히기도 합니다. 텍스트의 형태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애플의 마침표, 대체 애플은 왜 마침표를 사랑하는 걸까요?

마침표는 감성이다?

사실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애플의 마침표가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내는지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플의 마침표는 단호함, 전문성, 브랜드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줍니다. 애플의 사례가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마침표가 이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인데요. 마침표의 이런 인상,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요?

마침표의 시작

이러한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이야기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애플의 광고 이미지와 텍스트의 구성은 1959년의 폭스바겐 지면광고와 닮아 있습니다. 폭스바겐 광고의 특징은 완성도 높은 제품의 이미지 한 장, 그리고 마침표를 동반한 아주 짧은 헤드라인입니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자면 크게 놀랍지 않을 수 있지만, 등장한 배경을 살펴보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1950년, 제품은 행복이다

1960년 이전의 광고시장은 지위와 행복에 기대어 제품을 선전했습니다. 종전 후 경제가 회복되면서 여유로운 생활방식을 적극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더 많은 소비와 생산을 유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행복한 가족, 성공한 인생, 화려한 풍경, 그리고 그 곁에 놓여 있는 상품의 모습을 보여줬고, 이를 통해 제품과 행복을 직접적으로 연결 지어 구매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대중의 눈길을 끌 수는 있었지만, 제품과 브랜드의 목소리는 연신 행복만을 외쳤고 단순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광고시장 속에서 폭스바겐의 광고가 세상에 등장합니다.

1959년, 제품은 제품이다

화려한 색채도, 성공한 삶의 모습도 보여주지 않은 이 지면광고는 ‘Think small.’이라는 짧고 강력한 카피라이팅으로 승부수를 던집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차량이었던 폭스바겐의 비틀은 다른 화려한 자동차들과 대비되었던 작은 자동차의 모습을 더욱 강조해 보여주고, 카피를 통해 제품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 광고는 20세기 영향력 있는 광고들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혁신적인 광고였습니다.

그리고 이 광고의 헤드라인에 마침표를 찍은 것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한 글도 있습니다.

텍스트를 ‘발화’로 바꾸는 마침표

마침표는 영어로 ‘Full stop’입니다. 이야기하던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멈춘다는 의미죠. 마침표(풀 스톱)를 사용하면 텍스트를 읽는 사람은 머릿속에서 잠깐의 정지된 시간을 만들어냅니다. 일반적인 텍스트가 한눈에 들어오는 평면적인 정보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면, 마침표는 텍스트를 읽는 사람을 의도적으로 멈추게 만듦으로써 시간의 성질을 가진 ‘발화’로 인식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렇게 텍스트가 발화로 바뀌는 순간 읽는 사람은 목소리, 톤, 뉘앙스를 상상하게 됩니다. 애플과 폭스바겐의 마침표가 걸린 짧은 텍스트들은 단순히 읽어야 하는 숙제처럼 보이지 않고, 이렇게 우리에게 말하는 듯하죠. “당신을 괴롭히는 복잡한 생각들은 멈추고, 우리의 말을 들어보세요.”

말을 걸기 시작한 랜딩 페이지

애플의 감성 있는 카피라이팅 스타일이 대중들에게 익숙해지고, 브랜드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만큼 이제 여러 브랜드의 랜딩 페이지도 마침표를 통해 독자들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확실히 텍스트를 통해 말을 거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니 브랜드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침표를 활용하는 사이트들을 살펴보고 있으니, 한 가지 눈에 들어오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마침표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구어체, 광고 문구, 유도 문구에 찍었다가도 같은 종류의 다른 텍스트에서는 돌연 마침표가 없어지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정말 모든 텍스트에 마침표가 찍혀 있어서, 페이지를 스크롤해서 내릴 때마다 계속해서 흐름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마침표의 존재를 인식하고, 보이스를 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이러한 부분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이를테면 발화자가 계속 바뀌는 발표를 듣고 있는 느낌이죠.

그렇다면 과연 적절한 마침표의 활용 예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국내에서 UX 라이팅이 일관적이기로 소문난 토스의 랜딩 페이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당연하다고 해야할 지, 토스의 기준은 외부인이 보고 판단하기에도 명확하고 예외가 없었습니다.

이 글이나 토스의 사례를 통해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찍지 않아야 한다는 답을 내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마침표의 사용 여부가 텍스트를 쓰는 사람에 의해 매번 다르게 결정되거나, 기준이 혼동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브랜드는 일정한 목소리를 잃을 것이고,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마침표를 넣었다 뺐다 해보며 어떤 것이 더 나은지 토론하느라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마침표에도 의도와 규칙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마침표가 활용된 사례들을 찾아보면서 반성했습니다. 혹시 단순히 애플처럼 보이기 위한 장식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었나? 내가 지금까지 찍었던 마침표들은 어떤 의도가 있었을까? 어떤 규칙을 따른 걸까?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유 없는 마침표를 주의하고, 정확한 의도와 기준으로 마침표를 사용해보기로 다짐합니다. 폭스바겐이 소비자의 생각을 잠시 멈추게 하고자 마침표를 활용했던 것처럼, 그리고 토스가 완벽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보이스를 통합하는 것처럼, 누군가 이 마침표가 꼭 필요한지 물었을 때 내세울 수 있는 각자의 근거가 있다면 마지막 한 ‘점’까지 챙기는, 더 설득력 있는 디자인이 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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