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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상식사전] 메타버스의 원조, 세컨드라이프

‘IT 상식사전’ 시리즈에선 언론과 비즈니스 현장에 자주 등장하는 IT 용어와 개념들을 소개합니다. 대신 입문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익숙한 인문학적 내용을 접목해 풀어갈 예정입니다. 오늘은 메타버스 서비스의 원조, 세컨드라이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본격적인 상용 웹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가 출시된 것이 1994년 말이니, 아직 인터넷이 보편화되기도 전인 1992년 한 권의 SF 소설이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닐 스티븐슨이라는 미국 작가가 쓴 <스노 크래시(Snow Crach)>라는 작품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히로 프로타고니스트는 피자 배달부인데, 한편으로는 뛰어난 프로그래머이자 해커이기도 합니다.

 

스노 크래시(Snow Crach)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가상공간에서 퍼지는 스노 크래시라는 바이러스가 실제 인간의 뇌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된 히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노 크래시의 실체를 현실과 가상공간을 오가면서 추적해나갑니다. 그 과정에서 현실 미디어 그룹의 거대한 음모를 밝혀내게 된다는 내용이 이 책의 주요한 줄거리입니다.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드는 이 소설은 많은 IT업계,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가상 세계의 캐릭터에 해당하는 아바타는 2009년에 개봉된 동명의 영화인 <아바타>의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이 만든 가상세계의 이름인 메타버스(metaverse)는 현재 IT업계의 가장 핫한 키워드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스노 크래시>는 2005년 타임지에서 선정한, 꼭 읽어야 할 100대 영문소설에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소설을 보면 당시의 기준으로 미래의 인류가 얼마나 가상세계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며, 그것은 점차 우리에게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메타버스 열풍에 합류한 마크 저커버그

메타버스 마크 저커버그
출처: 페이스북

 

많은 미디어에서 이야기하듯 메타버스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을 결합한 온라인 가상세계입니다. 그리고 2021년 10월 28일 페이스북의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다소 충격적인 발표를 했습니다. 그것은 사명을 페이스북에서 ‘메타’라는 이름으로 바꾼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자신의 회사명인 페이스북이 하나의 제품에 한정되어, 미래는 물론이고 현재 자신들의 사업도 온전히 대표하거나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회사가 앞으로 메타버스 기업으로 보이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1시간 30분 동안 저커버그는 메타버스 관련 사업 구상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선보였을 때처럼 저커버그 혼자서 적극적인 시연을 했는데, 가상공간에서 펜싱 게임을 하기도 하고, 기자들의 질문에도 직접 답변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비판도 따랐습니다. 회사명 변경에 대한 공표 시점이 페이스북의 직원 내부 폭로로 여러 가지 비판이 따르던 시점이었기에 이미지 세탁용이라는 의견이 나온 것이죠. 또한 아직 사업이 명확하게 수익을 내고 있는 상황도 아닌데, 대부분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기존 사업을 부정하고 새로운 이름으로 바꾼다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편 2015년 구글이 자사의 이름을 알파벳으로 바꾸었지만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 데는 실패했다는 사례도 거론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부분은 메타버스가 미래를 지향하는 유망한 사업이라는 비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IT 전문 온라인 매체 디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은 2025년까지 메타버스의 시장규모가 약 82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한화로 100조 원에 가까운 규모인데, 저커버그는 이러한 예측을 넘어 앞으로 10년 안에 수조 달러의 메타버스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메타버스 시장의 성장세를 감안한다면, 이 시장을 선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2010년대 소셜 네트워크 사업으로 누구보다 큰 성공을 거둔 마크 저커버그는 세기말 1990년대 후반 인터넷 혁명이 일어났듯이, 다음 혁명은 메타버스 혁명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차세대 인터넷이 메타버스라고 역설한 것입니다.

 

 

세컨드라이프의 흥망성쇠

세컨드라이프
출처: 세컨드라이프

 

그렇다면 이 메타버스는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일까요? 웹 등장 이전에 PC 통신 서비스가 있었듯이 메타버스에도 원조가 있었습니다. 현재 메타버스 서비스의 원형이 되는 서비스로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세컨드라이프입니다. 이 세컨드라이프를 살펴봄으로써 메타버스를 좀 더 잘 이해하고, 가상세계 서비스에 대한 미래의 향방을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필립 로즈데일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 가상세계에 관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1999년 린든 리서치를 설립하였고 2003년 6월 23일 세컨드라이프 서비스를 출시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필립 로즈데일이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영감을 받아서 세컨드라이프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했지만, 로즈데일은 스노 크래시가 나오기 전에 이미 가상세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고 주장했습니다.

 

필립 로즈데일은 3D 환경에서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VR(가상현실)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이 소프트웨어가 린든 월드이며 곧 세컨드라이프의 핵심적인 기술이 되었습니다. 세컨드라이프에서는 자체적인 경제 시스템을 갖고 있는데, 여기서 사용되는 가상화폐를 린든 달러라고 합니다. 린든 달러는 현실의 화폐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283 린든 달러는 실제 금액 1달러에 해당합니다.

 

세컨드라이프는 200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성공적인 서비스로 성장해갔습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세컨드라이프에 참여했습니다. 자신들의 상품을 사전 테스트하는 무대로 삼고, 고객들의 피드백을 받는 목적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고객과 직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회의를 하는 미팅 장소로 사용됐고, 세컨드라이프에 매장을 열어 실제 물건을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프로그래밍 언어 자바(java)로 유명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는 세컨드라이프에 직원들을 위한 섬을 만들어,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아이디어를 나누는 장소로 삼았습니다. 미국 암 학회에서도 세컨드라이프에 자신들의 사업을 홍보하는 공간을 만들어, 20만 달러(한화 약 2억 3,798만 원) 이상의 현실 자금을 모집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아바타를 사람, 동물, 심지어 사물로 만들어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선 각 지역을 그리드로 나누었는데 걷거나 뛰고 때로는 순간 이동을 할 수 있었고, 다양한 물건을 만들어내거나 창의적인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세컨드라이프를 통해서 한 개인이 부자가 되는 성공적인 모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린든랩
출처: 린든랩

 

세컨드라이프에선 매달 9.95달러(한화 약 1만 1,839원)를 지불하면 소규모의 토지를 가진 지주가 될 수 있는데요. 에일린 그레이프(Ailin Graef)라는 중국 여성은 9.95달러로 땅을 산 후, 각종 건축물을 짓고 재판매하거나 임대하는 방식으로 부동산 사업을 해서 엄청난 시세차익을 거두었습니다. 에일린은 앤쉬 정(Anshe Chung)이라는 아바타를 통해 2년 6개월 만에 현실 돈으로 수십억 원을 벌어들였고, 나중에는 직원이 60명이 넘는 실제 오프라인 회사를 설립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화들을 통해 세컨드라이프는 당대 최고의 가상세계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0년대 후반 절정기에는 2천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했고, 세컨드라이프에 1억 달러(한화 약 1,189억 9,000만 원)가 넘는 돈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2009년 이후 세컨드라이프는 조금씩 침체되었습니다.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여러 소셜 커뮤니티 서비스가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의 네트워크 환경으로는 3D 이미지가 원활하게 구동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컨드라이프가 남긴 교훈

세컨드라이프는 숱하게 명멸했던 여러 커뮤니티 서비스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세컨드라이프는 한국의 싸이월드와 마찬가지로, IT 선진국인 미국에서 시작된 하나의 훌륭한 실험이었습니다. 세컨드라이프가 제시한 가상세계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기는 했지만 당시 이미 3D 서비스였다는 점도 선도적이었고, 그 이전의 서비스와 분명히 다른 차별점을 보여주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게임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가상세계는 그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던 가상 게임과 흡사해 보입니다. 하지만 가상세계는 기존의 가상 게임과 명확하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가상 게임 역시 온라인 세계에서 서로 협력하고 비현실적인 세계를 즐긴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전쟁에서 이기고 특정한 미션을 달성한다는 명확한 목적이 있고, 가상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 세계를 모방한 환경에 참여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사업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하는 선구적인 소셜 네트워킹의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블룸버그, 로블록스
출처: 블룸버그, 로블록스 제공

 

세컨드라이프는 여전히 서비스를 지속하고 있지만, 예전의 명성에 비하면 엄청나게 쇠락한 것은 분명합니다. 2021년 기준 대표적인 메타버스 서비스인 로블록스의 경우 동시 사용자가 570만 명에 이르는 반면, 세컨드라이프는 10만 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네이버의 제페토 역시 2억 명 이상의 가입자를 모았습니다.

 

그렇다면 업계를 선도하는 모델을 제시한 세컨드라이프는 왜 저물었을까요? 우선 세컨드라이프를 이용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었고,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범죄도 문제였습니다. 린든 달러를 이용한 폰지 사기나 가상세계에서의 폭동, 극단적으로는 아동 성범죄물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반면, 현재 메타버스는 기본적으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많습니다. 또한 아주 적은 비용으로도 많은 아이템을 구매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즐길 수 있습니다. 더불어 가상세계라고 할지라도 적절한 규제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것을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메타버스는 15년 만에 다시 불어온 가상세계 열풍입니다. 그리고 이 열풍은 하나의 바람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를 크게 변화시킬 것입니다.

 

2000년대 중반에 비해, 현대에는 5G의 등장과 같이 네트워크 환경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다양한 VR, AR, 즉 가상현실, 증강현실 기술이 발전하여 가상세계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또한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형 클라우드 업체의 참여로 기술적 한계가 거의 없어졌다는 점도 현재의 메타버스가 이전과 비교해 더욱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근거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세컨드라이프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서비스였다는 점이 대단하면서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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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닷컴 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뉴밀레니엄 시기, IT 벤처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한때 IT 콘텐츠 업체를 창업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최고의 콘텐츠를 찾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출판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 IT와 출판 분야에서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출판 콘텐츠와 온라인 네트워크의 결합에 대해 깊이 고민 중이다. 저서로 SNS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대안을 제시한 <소셜네트워크, 야만의 광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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