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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어쨌든 디자인 툴을 배우는 게 좋을까요?

나 디자인 툴 좀 알려줄래?

 

나는 원래 디자인 비전공자였다. 문과 계열 학과를 다니다가 운이 좋게 복수전공으로 디자인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디자인 비전공자들이 전공자들보다 훨씬 많다.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나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다루는 것 좀 알려 줄래?' 혹은 '어디서 그런 거 배웠어?' 같은 질문이다.

 

이 글은 디자인 툴을 배우려고 마음먹은 대표님들께 하고 싶은 말을 담은 글이다. 시간이 곧 자산인 때에,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게끔 도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말 많은 분들이 고민하는 디자인 공부

사회로 나와 프리랜서 일을 하다 보니 이런 종류의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언젠가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길 꿈꾸는 분들부터, 당장 작은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 소상공인 분들까지. 나 역시 디자인을 배우기까지 막막했던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어째서 디자인 툴을 배우려고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 부딪쳤을 것이다.

 

1) 디자인 작업물을 맡기기 전에 느끼는 막막함

어떻게 디자이너와 대화하는지 모르는 경우다. 정확히 얘기하면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말이다. 혹시 놓치는 것이 있을까? 싶은 두려움.

 

2) 디자인 작업물을 맡겨보고 나서의 아쉬움

막상 디자이너를 찾고 나서 작업물을 맡겼지만, 디자인 퀄리티에서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다. 디자이너와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작업자의 역량 부족일 수도 있다.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이 드는 경우다.

 

3) 초기 사업에 부담되는 시간과 비용에 대한 부담감

사업을 시작하려는 초기, 돈을 아끼고 싶은 경우다. 디자인이 자잘하게 많이 들어간다든가, 디자인을 맡기고 나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답답해서라든가. 여러 디자인을 테스트해보고 싶은데 비용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포함된다. 내가 직접 하면 비용을 아낄 수 있으니 좋은 것 아닐까? 싶어 고민하는 것이다.

 

나 역시 위와 같은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 그리고 모르는 분야의 외주를 남에게 맡겨본 경험도 있다. 다만,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는 정답 같은 얘기는 아니다.

 

 

그래서, 배우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결론적으론, 디자인 툴을 배우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만히 넋 놓고 있어야 된다는 뜻은 아니다. 글 하단에 다른 방법을 적어 놓았다.

 

사실 디자인 툴을 알려달라는 부탁이나, 어디서 배워야 하는지, 뭐부터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들은 많이 받아왔다. 그래서 그분들께 자주 말씀드리는 예시가 있다.

 

디자인 툴

 

연필을 잘 잡는다고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정말이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성인들은 글을 쓸 줄 안다. 연필을 손으로 잡고 글자를 적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잘 쓸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여기서 하고 싶은 얘기는 디자인 '툴'을 안다고 해서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좋은 글을 쓰고 싶으면 연필로 수없이 많은 글들을 써야만 한다. 더 좋은 글이 뭔지 고민할 줄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쓴 글도 무수히 읽어야 한다.

 

사실 디자인 툴을 배우는 것은 일주일 정도면 가능하다. 몸에 익숙하게 만들려면 시간이 더 걸릴 수는 있다. 하지만 어도비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와 같이 툴의 원리는 서로 닮아있기에 ‘툴’을 다루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진짜 문제는 디자인 툴 배우기에서 끝나지 않음에 있다. 결국 디자인 '툴'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좋은 '디자인'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디자인 툴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면, 내가 배운 그 툴로 '무엇'을 만들어낼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오랫동안 배우는 이유는 툴 자체가 아니라,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지 배워야 함에 있다.

 

 

디자인을 배우면 문제가 해결될까?

여기서 한 가지 전제할 내용이 있다. 나에게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요'라고 질문하는 분들은 보통 개인 사업을 준비하거나, 진행하고 있는 분들이다. 즉, 디자인 외에도 해야 할 것이 엄청나게 많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떤 일에 부딪치면 당장 그 일이 가장 중요하고, 그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막상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디자인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문제의 원인은 마케팅이나 기획, 유통에 있을 수도 있다. 광고 효율이 안 나오는 이유에는 적절하지 않은 채널을 선택한 것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디자인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디자인을 잘할 수 있을까?

디자인 시야를 넓히라는 얘기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문장을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대표님들께 추천드리는 건, '이거'랑 '저거'를 비교하는 기술을 얻으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일까? 아주 쉬운 예시를 가져왔다.

 

디자인 로고

 

어떤 사람은 여기 있는 로고들을 보고 '레트로'라고 뭉뚱그려 말할 것이다. 실제로도 'Retro Logo'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이 3가지를 분리시켜 본다.

 

1번과 2번 그림은 레트로 중에서도 미국식 레트로에 가깝다. 3번은 북유럽 느낌의 레트로라고 부를 수 있다. 여기까진 쉽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자. 1번과 2번은 어떻게 다를까? 1번과 2번은 공통적으로 미국 빈티지 카툰 그림체에서 따왔다. 하지만 유행했던 시기가 다르다. 1번은 무성 애니메이션이 성행했던 1920년대, 2번은 70-80년대에 유행했던 그림 체다. 이때의 애니메이션 특징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쉬운 설명을 위해 다소 편집된 내용이 있다. 정식 표현은 아니다.)

 

자, '미국 만화 같은 로고'를 만들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작업자에게 '미국 만화 같은 로고'를 요청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 만화라고 해도 이렇게 특징이 달라질 수 있기에, 1번과 2번 중에서 뭐가 더 가까운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더 자세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위 3개의 로고를 레트로라고 뭉뚱그려서 표현하는 사람과, 더 자세히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의 작업 퀄리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픽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어도비 폰트는 디자이너가 이용할 수 있는 폰트를 제공한다. 어도비 폰트에서는 폰트를 잘 검색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구분해서 표현했다.

 

어도비 폰트 홈페이지
어도비 폰트 홈페이지 캡처

 

내가 썼으면 하는 그 폰트를 '무슨' 스타일이라고 하는지 태그를 붙여놨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이름 붙이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땐 도움이 된다.) 이렇게 여러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비교할 수 있어야 분류할 수 있다.

 

이 기술을 키우는 일은 어렵지 않다.

1) 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일단 많이 모은다.

2) 모아놓은 디자인에 이름을 붙인다. 왜 마음에 드는지,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를 적어둔다.

3) 단어가 자주 겹치는 디자인을 한 폴더에 넣어둔다.

4) 폴더들에 이름을 다시 붙인다.

 

나누는 것이 어렵다면, 처음엔 형태처럼 눈에 띄는 것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선으로 되어 있는지, 면으로 되어 있는지. 장식이 많은지 적은지.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디자인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것이다. 디자인을 찾다 보면 적당한 이름(뭔가 있어 보이는)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름을 붙여도 괜찮다. 내가 왜 카테고리를 나눠서 넣었는지만 잘 표현될 수 있으면 된다.

 

이 비교하는 기술이 늘면 디자인 취향을 섬세하게 분류할 수 있어진다. 드디어 내 취향이 생기기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면, 내 취향을 발견하게 된다. 둥둥 떠다니던 이미지들이 어떤 패턴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된다.

 

요즘에는 미리 캔버스/망고 보드와 같이 전문 디자인 툴을 대체하는 서비스도 많아지고 있다. 검색만 하면, 누끼를 따는 사이트부터 목업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사이트까지, 검색만 해도 방대한 양의 사이트들이 주르륵 나온다. 내 브랜드 스타일에 맞는 디자인만 선택하면 된다.

 

이 서비스들로 만족되지 않는다면 디자이너를 구해도 좋다. 하지만 분류하는 기술을 익히기 전의 상황과는 다르다. 다른 사람에게 원하는 디자인을 잘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도 고객이 원하는 것을 잘 전달받을 수 있다. 그럼 엉뚱한 결과물을 받을 확률이 줄어들게 된다.

 

그뿐이 아니다.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어떤 스타일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우리 모두 완벽한 디자이너가 아니라 내 작업물을 잘 디자인할 디자이너를 찾고 있지 않았는가? 이제 포트폴리오를 보고 찾을 수 있게 된다.

 

또, 브랜드 디자인을 어렴풋이 그릴 수 있게 된다. 내가 완성하려고 하는 브랜드가 어떤 형태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브랜딩은 단순히 디자인의 형태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머릿속에서 어떤 '형태'인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기획력은 완전히 다르다.

 

 

하고자 하는 사업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

결론적으로 디자인 툴을 배우는 것 자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대신 디자인을 비교하는 기술을 연습하는 것을 추천한다. (디자인을 업으로 하고 있는 본인도 매번 연습한다.)

 

툴을 절대 배워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말 필요한 분들이 배웠으면 좋겠다. 디자인의 유행은 정말 짧다. 툴도 자주 바뀐다. 매년 업데이트하는 내용들, 업계에서 주로 쓰이는 툴도 바뀌곤 한다. 일정 기간 이상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금방 뒤처진다. 사용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그리고 사업을 진행할수록 그에 필요한 디자인 툴도 다양해질 것이다. 처음엔 그래픽에만 집중해왔지만, 유튜브에 진출하게 된다든가, 서비스 업그레이드를 위해 UI를 리뉴얼해야 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새롭게 배울 순 없다. 모든 일을 단독으로 해낼 수 없다.

 

사업을 진행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능력은 바로 기획이다. 대표는 가장 중요한 일에 힘을 쏟을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은 유한하다.

 

다른 일에 신경 쓰느라 다른 부분에 쓸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디자인은 사업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것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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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

스타트업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배운 일을 바탕으로 프리랜서 독립하였습니다. 브런치(brunch.co.kr/@designmydesign)에서 1인 기업으로서 겪은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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