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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사용자는 바보가 아니야, 기만적인 기획과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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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들을 교육시킬 때 늘 항상 제일 먼저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사용자는 바보가 아니야. 어설프게 속이려고 하지 마. 회사(서비스) 이미지만 나빠져”

 

저 역시 윤리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가끔 차가 없으면 무단횡단도 하고 운전할 때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제한속도를 마구마구 어기다가 카메라 앞에서만 속도를 줄이는 이 시대의 평범한 소시민 입죠.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늘 한 가지 마음속으로 되뇌는 게 있습니다.

 

직업적인 윤리의식은 잃지 말자.

사람들 속이면서까지 돈 벌 정도로 궁핍하진 않잖아.

 

제가 뭐 대단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기획자이기에 앞서 저 역시도 이용자이자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서비스의 이미지마저 망치는 그런 얄팍한 속임수를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죠. 순간의 매출 상승을 위해 벌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눈속임이 고객 입장에서 얼마나 많은 이미지 손상을 가져오는지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요.

 

오늘은 얄팍한 속임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상대를 깎아내리기

기만적인 기획과 마케팅

 

위 이미지는 모 BNPL 업체의 서비스 소개 페이지 중 일부입니다. 신용카드와 자사 BNPL 서비스를 비교하는 페이지인데요. 2021년에 본 문구 중 가장 저질입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요.


BNPL은 Buy Now Pay Late의 약자로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하면 BNPL 업체가 물건값을 먼저 지불하고 소비자는 물건을 받은 후 BNPL 업체에 물건값을 일정 기간 할부로 갚는 디지털 외상 서비스입니다. 주로 금융거래가 없고 신용점수가 낮아 카드 발급이 어려운 주부, 사회초년생, 학생 등 신파일러(Thin Filer)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서비스죠.

 

이 업체는 신용카드를 거의 악의 축 수준으로 묘사하고 있는데요. 신용카드의 리볼빙, 현금서비스, 카드론이 과소비를 조장하며 BNPL은 필요한 만큼만 합리적인 소비가 가능하다는 게 업체의 설명입니다. 정말일까요?

 

기만적인 기획과 마케팅

 

결제수단별 연체율을 비교해보면 신용카드가 0.9%로 연체율이 가장 낮고 유사 BNPL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 후불결제의 연체율이 1.49%,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후불결제를 지원하는 하이브리드 카드의 연체율이 3.53%로 신용카드보다 높습니다. 네이버 후불결제가 구매이력이 많은 우량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고 하이브리드 카드의 후불결제 시스템이 BNPL과 유사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BNPL은 무조건 신용카드보다 연체율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BNPL이 발달한 영국에서는 BNPL 이용자 중 41%가 지출 통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용자 3명 중 1명은 연체를 경험(20년 11월, Money and Mentel Health) 호주에서는 이용자의 약 21%가 BNPL 대금을 연체한 경험(20년 12월, 호주증권투자위원회)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신용카드는 과거 금융거래나 신용점수를 기반으로 카드를 발급하고 한도를 조절하기 때문에 연체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BNPL은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운 저신용자가 주요 타깃이기 때문에 연체율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업체가 주장하는 신용카드보다 과소비 걱정이 없다는 홍보 문구는 거짓말이죠.

 

그리고 이 업체의 BNPL 서비스가 신용카드보다 나을 것이 없는 게 신용카드는 수수료를 가맹점에게 청구하는 것에 비해 이 업체는 이용자가 결제 시 별도의 주문 수수료(2.69%)를 내야 합니다. 

 

이 업체의 소개 문구가 악질인 것은 금융 경험이나 지식이 없는 학생과 저신용자들에게 신용카드는 나쁜 것이며 우리 BNPL 서비스는 좋은 거야 라는 잘못된 정보를 주입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올바른 금융지식을 전달하고 과소비를 경고해도 모자랄 판에 업체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에게 신용카드의 나쁜 이미지를 주입시켜 BNPL로 선택을 유도하는 넛지효과와 대비효과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아주 나쁜 예죠.

 

 

최대의 함정

 

~80% 세일!

최대 80% 세일

UP TO 80%

 

하루에도 수십 개씩 날아오는 카카오톡의 광고 메시지

홀린 듯이 80%의 할인율에 이끌려 링크를 클릭하는 서점군

서점군은 정말 80% 할인율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을까요?

 

할인율 마케팅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 서점군이 모 쇼핑몰의 키워드 마케팅 업무를 할 때 일입니다. 저의 교육을 담당하셨던 사수분은 저에게 놀랄만한 팁을 하나 전수해주셨죠.

 

사수님 曰

서점아. 랜딩 페이지를 걸 때 해당 페이지에서 가장 높은 할인율을 찾은 다음 제목에 최대 00% 세일이라던가 UP To 00%를 걸면 클릭률이 높아진단다. 상품중에 하나라도 그 할인율에 해당하면 법적으로 안 걸려. 잘 활용하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최대 80% / ~80% / Up To 80%이라는 쇼핑몰의 광고 문구가 마케터들 사이에서는 10년 전부터 성행하던 마케팅 비법이라는 사실.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최대 80% 할인이라는 문구에 현혹되어 해당 페이지에 접속했지만 변변치 않은 할인율을 보고 좌절했던 기억. 누구나 한 번쯤은 가지고 있을 겁니다. 상품 중 제일 높은 할인율을 모든 상품이 할인하는 것처럼 표시해 소비자를 기만하려는 마케터의 술수에 놀아난 거죠.

 

이러한 마케팅 기법이 사용자 유입이나 단기간 매출 상승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회사나 서비스 이미지에 악영향을 줍니다. 몇 번 클릭해서 속아보면 다시는 그 회사의 푸시 메시지를 누르고 싶지 않거든요. 실제로 저 같은 경우 최대나 UPTO를 남발하는 서비스나 쇼핑몰의 푸시 메시지는 전부 차단을 걸었고 몇몇 서비스는 이미지가 너무 안 좋아져서 앱 자체를 지우기도 했습니다.

 

마케팅 용어로는 이를 기대치 위반 효과라고 합니다. 80%의 할인율을 기대하고 왔는데 정작 할인율은 10~20% 밖에 되지 않을 경우 고객은 실망하게 되고 이 실망이 반복되면 브랜드 이미지 저하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게 심해지면 나중에는 양치기 소년처럼 그 브랜드에서 하는 말과 행동은 모조리 믿지 않게 되죠.

 

요즘 고객들은 멍청하지 않습니다.

고객을 속이는 이런 마케팅 문구.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과대포장, 의도적 사실 왜곡

과대포장 사실 왜곡

 

얼마 전 인터넷상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한 광고. 이 광고가 논란이 된 이유는 네거티브한 메시지를 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사의 상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데이터를 왜곡하고 기존 업체들을 적폐로 취급하는 선 넘은 마케팅이었기 때문이죠.

 

후발주자들은 때때로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네거티브 마케팅을 벌입니다. 문제는 이런 마케팅들이 가끔 수위조절이 안돼 사회적인 논란을 일으킨다는데 있는데요. 스타트업이라고 해서 윤리와 사회적 책무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스타트업일수록 오히려 대기업보다 엄격하고 까다로운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합니다.

 

쟤네보다 신선해요가 언제까지 소비자에게 먹힐 수 있을까요? 저희는 신선해요와 같이 타사와 비교하기보다 자사의 강점을 홍보하는 게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기업의 자세 아닐까요.

 

 

고객을 기만하기

토스는 얼마 전 마이데이터 시행을 위한 오픈 API를 적용했는데 이 과정에서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아 논란이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편해서 넣었는데…" 토스, 마이데이터 규정 위배 논란

 

논란이 된 부분은 인증 동의인데요. 토스에서 타 금융기관의 정보를 불러오기 위해선 각 금융기관마다 정보를 불러온다는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은행과 국민은행의 금융정보를 불러오기 위해서는 우리은행 한번, 국민은행 한번 각각 따로따로 사용자의 동의를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토스는 모든 금융정보를 한 번에 불러올 수 있도록 일괄 정보 불러오기 기능을 제공했습니다. 사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엄연히 마이데이터 가이드라인 위반입니다.

 

이 부분이 왜 약관 위반 소지가 있냐면 토스가 기존 고객의 금융정보를 연동하는 방식은 스크래핑(페이지에 있는 정보를 솔루션이 인식하여 자동으로 불러오는 기술)이었는데, API 기반의 마이데이터 연동방식을 이용하려면 연동하는 금융기관마다 사용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업체가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해 자산화하려는 의도를 막는 금융위원회의 안전장치이자 고객이 원하는 정보만 업체에 선별적으로 제공하게 하겠다는 취지인데요. 토스는 스크래핑 사용자를 API로 전환하기 위해 사용자가 일일이 금융사마다 동의를 받는 방식이 아닌 가이드라인에 허용하지 않는 일괄 동의 기능을 제공했습니다. 서비스의 편의성이라는 말을 방패막이 삼아 스리슬쩍 고객 동의를 받은겁니다.

 

이러한 끼워팔기는 사실 고객정보를 수집하는 금융업체나 이커머스 업체에 만연한 문화입니다. 약관 동의 페이지의 마케팅 정보 수신 동의나 제삼자 정보 동의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죠. (자세한 내용은 실전UI/UX – 약관 동의를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할 것들 참조)

 

마케팅 정보 수신 동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윤리적인 기획과 마케팅이 대접받는 세상

ESG가 주목받는 세상. 인터넷 기업들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성장만이 미덕이었고 유일한 가치였던 과거,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기업들은 아직도 기업의 사회적 책무나 윤리의식은 무시한 채 성장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성장과 고객 편의를 명분으로 사회적 책무나 윤리의식을 무시하는 기업이 얼마나 더 고객에게 용인받을 수 있을까요?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윤리적인 기업이 살아남고 대접받는 세상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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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예제로 알아보는 서점직원의 실전 UI/UX> 저자

현재 브런치에서 실전 UI/UX (https://brunch.co.kr/@fbrudtjr1)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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